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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눈별 Oct 16. 2021

나는 그녀를 첫눈에 알아봤다.

나의 레즈비언 애인

안녕하세요. 파랑파랑 파랑이예요.

파랑을 처음 본 순간 알았다. 이 사람하고 평생 함께 하게 될 것임을.

    

파랑은 내가 다닌 첫 직장에서 교육을 담당하던 활동가였다. 으레 그렇듯 ‘교육’이란 외향적인 사람에게 맞았다. 처음 본 사람들과 서로 인터뷰를 해야 하고, 게임을 해야 하고, 자신에 대해 키워드로 설명해야 하기도 했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처음 본 사람하고는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저 사람의 인생에 대한 키워드가 궁금하지 않았고, 나의 키워드를 공유하고 싶지도 않았다. 파랑은 그걸 참여자들에게 시켜 놓고 주위를 살피며 나중에 발표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발표하는 건 죽어도 싫다. 나는 파랑의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있으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게임을 시켰다. 봉황 게임이라는 것이었는데, 모두가 처음엔 알로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과 무작위로 가위바위보를 한 뒤 이기면 병아리가 되고 또 이기면 봉황이 되는 게임이었다. 봉황이 되었다가도 다시 가위바위보에 지면 병아리로 돌아간다. 끝을 알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계속 가위바위보를 해야 했다. 나는 승부욕이 없지만 이상하게 게임을 하면 이기는 스타일인데 그날도 당연히 나는 봉황이 되었다. 파랑은 게임이 끝나자 봉황이 된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왠지 나가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봉황이 아닌 척했다. 파랑은 앞에 나온 봉황들에게 노래를 시켰다. 나는 봉황이 아닌 척하기로 한 결정이 그해 들어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라니?    

 

나는 이 이상한 것들을 시키는 진행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는데, 그는 이상한 것을 시켜서 그렇지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일주일 남짓한 교육이 그렇게 끝났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일주일 동안 당연히 파랑과 친해지지 못했다. 매일매일 파랑에게 전화할 궁리만 하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파랑 주소를 서울로 옮겨도 되나요?” 드디어 나는 파랑에게 전화할 만한 핑계를 만들었다. 나의 직장은 경기도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었다. 당연히 경기도에 거주하는 청년이 대상이었다. 알고 있었다. 나도. 하지만 나는 구태여 파랑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어느 날은 둥근달을 보라고 전화하기도 했다. 아직 파랑과 친하지 않아서 전화하면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일단 전화하면 파랑이 어떤 말이든 했고, 나는 그걸 가만히 듣다 끊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파랑과 친해지지 못한 채 일을 그만두었다.      


그해 겨울 함께 일하던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 밥을 먹고 카페를 가려고 하는데, 파랑을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파랑이 카페에 있다고 했다. 나는 당장 그 카페로 가자고 친구를 재촉했다. 파랑과 파랑 동생 열무, 내 친구 연두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둘러앉았다. “드링크” 파랑은 뜬금없이 스터디 모임을 만들자며 이상한 모임 이름을 말해주었다. 서로를 연결한다는 뜻을 가졌다고 했다. 드링크라니, 박카스도 아니고. 뜬금없는 모임 제안에 나는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나는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할 거 같아. 모임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파랑과 함께 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 모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친해질 듯 친해지지 않는 파랑과의 관계가 어려웠다. 얼른 친해져야 사귈 텐데.

    

결혼한 사람들이 상대를 보자마자 결혼하게 될 거란 걸 느꼈다는 말을 할 때, 나는 믿지 않았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만히 두고 봐야 알게 되는데, 결혼하게 될 것이란 걸 어떻게 바로 알게 된다는 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파랑을 보자마자 알았다. 저 사람하고 결혼해서 평생 함께 살 거라는 걸. 친해지지 못하고 연락이 뜸해질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절대 저 사람과 연락이 끊기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직감이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우린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하지만 아주 확실하게 서로를 연결시켰다. 드링크, 아주 느긋한 드링크였다. 연결되기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연결되고 나니 자동 페어링 되듯 빠르게 연결되었다. 외국에 출장 가서도 인터넷전화로 밤새 통화를 했다. 매일 그렇게 통화를 하다가 작은 방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함께 이사를 결심하고 좀 더 큰 집으로 왔으며, 말썽쟁이 강아지를 함께 돌본다.      


그렇다, 나는 파랑과 평생 함께 살 게 될 것이다. 내 직감은 절대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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