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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눈별 Oct 14. 2021

눈총, 눈초리

가발 쓰고 학교 다녔습니다.

“너는 뭔데 모자를 쓰고 학교에 와?” 교문 앞에서 등교 지도하던 학생부 선생님이 나무 회초리로 내 머리를 치며 이야기했다. “항암치료해서요” 작은 목소리로 내 사정을 설명하고서야 교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선생님은 미안하단 말 조차 없었다.


나는 17살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니 2학년이 되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진급은 되는구나 싶었다. 항암치료하며 살이 15kg 넘게 빠져, 교복을 입으니 마치 허수아비가 옷을 입은 거 같았다. 머리카락도 전부 빠져 민머리였는데 엄마는 가발을 사주지 않았다. 돈이 없다고 했다. 나는 허수아비 같은 교복과 털모자를 쓰고 학교에 다녔다.


“주영아 주영아 이거 써봐”  어느 날 친구들은 내게 가발을 내밀었다. “민혁이가 여장했을 때 썼던 가발 너 준대” 작년 체육대회에서 여장 대회했을 때 사용한 거라고 했다. 항암치료를 하기 전 나는 유난히 머리숱이 많고, 길었다. 이제 그 머리카락이 없구나 새삼 깨달았다.


가발이 내키지 않았던 나는 어색하게 가발을 썼다. 친구들은 이상하다며 가발을 매만져주었다. 그러다 실수로 가발을 뒤로 당겨 마치 변발한 사람처럼 가발이 정수리쯤에 걸쳐졌다. 아차 할 틈도 없이 친구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씁쓸하게 나도 따라 웃었다.


새까만 단발 기장의 가발은 싸구려였다. 칫솔모 같은 가발이 목과 귀를 찔러 염증이 났다. 쉽게 빠지고 엉켜 군데군데 뭉쳐있었다. 그 가발은 누가 봐도 이상해 보였다. 나는 그 싫은 가발을 쓰고 학교에 다녔다. 교문 담담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매번 “너는 왜 가발을 쓰고 학교에 오냐”고 물었고 나는 사정을 이야기해야만 교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해 모르는 학생들은 뒤에서 수군수군 대기도 했다. “쟤 머리 가발 같지 않아?” “네가 한 번 벗겨봐” 학생들은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여름이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가발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가발에 쓸려 귀에 염증도 생겼다. 그래도 어느새 가발에 적응한  같았다. 그날 급식에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샐러드가 나와 신이 났다.  친구가 고구마 샐러드를 남겨 내가 야금야금 뺏어 먹었다. 그때 갑자기 뒤가 시끄러워지더니 누군가  가발을  낚아채갔다.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모든 이목이 나에게 쏠렸다. 누구는 웃고 있었고 누구는 무표정이 었지만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가발을 벗겨간 무리들은 자기네들끼리 가발을 주고받으며 신나 했다. 나는 가발을 달라는 말도  하고 울면서 급식실을 나왔다.


다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삶을 살게끔 되어있는 고등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보이면 학생들은 귀신같이 그 점을 파고들었다.

눈총, 눈초리.

나는 매일 총을 맞았다. 나는 매일 눈초리가 회초리보다 더 아프다는 걸 느껴야 했다. 가발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지 아플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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