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모와 흰머리
시작은 탈모였다. 두 살 어린 동생이 모발피부과에서 약을 타다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1000만 탈모인들의 성지’라나. 한, 두 번 듣고 흘리다 곧 솔깃해졌다. 할아버지 대머리, 아빠 대머리, 엄마 탈모… 유전력을 보아하니 나에게도 탈모가 닥칠 확률이 높았다. 모아서 가발을 만들어도 될 만큼 화장실 바닥에 수북이 쌓이는 머리카락을 보며 병원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평균 대기 시간이 한, 두 시간을 넘고 길게는 3~4시간까지도 잡아야 한다는 그곳에는 의외로 적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운이 무척 좋으시다는 간호사의 덕담을 받으며 진료실에 들어섰다. 인터넷 후기에서 ‘(의사 쌤의 적나라한 진단에) 울 각오를 하고 가야 한다’는 글을 보고 온 터라 퍽 긴장됐다. “이만하면 아직 괜찮”다는 의사 쌤의 평가를 받고 뛸 듯이 기뻤다. 간호사에게 A4용지 4장을 빼곡히 채운 설명서를 건네받고 약국에 가서 종이 가방 가득 약을 사왔다. 6개월 치가 50여만 원. 한 달에 8만원 정도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다 싶었다. 그렇게 나의 탈모 치료가 시작됐다.
결코 쉽지 않았다. 매 끼니마다 약을 챙겨 먹어야 했고, 이틀마다 먹어야 하는 약, 일주일마다 먹어야 하는 약이 따로 있었다. 매일 한 움큼씩 약을 먹다 보니 부작용도 걱정됐다. 발에 생긴 굳은살 때문에,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갈 때마다 탈모약을 함께 복용해도 되는 건지 걱정돼 의사와 약사에게 물어보는 일도 좀 민망했다. 약을 거르는 횟수가 늘었다. 결정적인 건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두 달 간 약을 복용해야 했을 때였다. 하루에 삼켜야 할 알약의 수가 너무 많아져 탈모약을 잠시 중단하기로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머리카락 아주 빼곡”하다는 남편의 말이 결심을 더욱 부추겼다.
탈모의 걱정에서 조금 해방되자 흰머리가 눈에 거슬렸다. 얼굴은 그럭저럭 아직 동안인데 흰머리가 나이를 들어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뿌리 염색을 시작했다. 세 달에 한 번이던 염색 주기가 두 달에 한 번으로 짧아질 즈음, 두피에 심한 가려움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며칠 전 했던 뿌리 염색 때문인 것 같았다. 염색약이 독한 걸까? 미용실을 바꿔야 하나?
고민 끝에 남편의 지인이 하는 다른 미용실을 찾았다. 이번에는 눈알이 빠질 듯 아팠다. 미용실 원장은 알레르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후에 남편을 통해 “흰 머리카락을 녹여서 뿌리 염색약이 들어가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멀쩡한 다른 머리카락도 심하게 손상된다. 그러다 결국 탈모가 일어난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전해왔다. 흰머리가 될지언정 머리카락 수를 유지할 것인가, 검은 머리카락으로 살되 탈모인이 될 것인가. 흰머리도 싫지만 탈모는 더 싫었다. 미용실을 다시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관리를 하지 않다 보니 흰머리는 더욱 늘어만 갔다. 샴푸만 해도 머리카락이 검어진다는 ○다○다 샴푸를 구입했다. 오! 일주일쯤 쓰니 효과가 보였다. 흰 머리카락이 희미하게 갈색이 되더니 하루하루 지날수록 색이 짙어졌다. 문제는 그 과정이 손톱에도 고스란히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때가 낀 것처럼 검어진 손톱을 보니 이건 또 아니다 싶었다.
밖에 나갈 때만이라도 흰머리를 커버해 보자 싶어 새치 마스카라를 샀다. 주로 앞머리에 흰머리가 집중적으로 나 있어서 발라보니 어느 정도 가려졌다. 단점은 앞머리가 젤을 쳐 바른 듯 꾸덕꾸덕해진다는 것. 별다른 방안이 없어 우선 이렇게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을 볼 때 정수리와 앞머리를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야유, 저 사람은 정수리가 아주 빼곡하네.’, ‘저 사람은 나이에 비해 머리가 새까만데 염색한 건가?’ 첫 인상을 머리카락의 수와 흰 머리카락의 유무로 매긴다. 소복한 흰머리가 매력적으로 보일 만큼의 나이가 되면 머리카락 콤플렉스에서 좀 해방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