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기 싫은 말은 상대방도 듣기 싫을 텐데!
올해 추석 연휴는 작년과 달리 조용했다. 모여야 할 친척들이 모이지 않고, 가족들끼리 모여 조촐한 제사를 지내고 밥을 먹었다. 밥을 먹는 중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젊은 친구들이 친척 어른들 잔소리를 듣기 싫어한다는데, 난 이해가 안 간다.
"관심의 표현으로 근황을 물어보는 건데, 그걸 잔소리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아. 그리고 친척에게 안부를 묻는 건데, 그게 그렇게 잔소리처럼 들리니?"
밥을 먹던 나와 형, 그리고 동생이 동시에 잔소리처럼 들린다고 답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추석 때 오랜만에 친척을 만났는데, 뭐라고 대화를 건네야 하니?"
어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씀이었다. 실제로 '추석 잔소리'는 이제는 너무나 뻔한 추석의 친척 간 갈등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래서 집에서 왜 특히 최근 들어 추석에 친척 간 갈등이 많아지고, 잔소리로 인한 추석을 기피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는지를 '청년' 입장에서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친척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대한민국은 대표적인 유교 문화권의 나라다. 이전에는 친척끼리 대가족을 형성하고 사는 집안도 있었고, 따라서 친척은 곧 다른 의미로 가족이기도 했다. 우리가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모두 배웠듯이, 대한민국은 점점 더 핵가족화되었고 도시로 이주하는 가구가 많아지며 친척은 점점 명절과 같은 특별한 경조사 때만 만나는 존재가 되었다.
2017년의 통계자료이다. 친척을 사교적 관계로 생각하는 사람보다 명절이나 제사와 같은 가족 행사 때만 보는 의례적인 관계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졌다는 자료이다.
두 번째, 우리는 사이가 먼 사람으로부터의 조언이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한다.
이게 아마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는 우리와 사이가 먼 사람으로부터의 잔소리에 낯설다. 그래서 친척 어르신이 우리에게 '애인은 있니?', '그 회사 계속 다닐 거니?', '얘좀 봐라, 벌써부터 머리에 탈모가 생기네', '그래서 결혼은 하겠니'라고 잔소리를 할 때마다 우리의 뇌에서는 과부하가 걸린다.
자녀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생활하는 부모님이 내 진로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많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 1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도 서먹한 친척에게 갑자기 나의 오랜 고민인 취업 얘기를 하려니 뇌에는 과부하가 걸린다.
[속보] 최 모 씨, "스타트업에서 퍼포먼스 마케터가 되고 싶다"라고 밝혀
뇌의 과부하를 리셋하고 용기를 내서 다음과 같은 속보를 내면 여론의 반응은 안타깝게도 대게 다음과 같다.
[속보] 고모부, "그런 거 말고 회계사 같은 전문 직종을 해야 한다"
[종합] 친척 일동, "안정적인 대기업을 가는 것이 최고다"
[속보] 최 모 씨 부모 일동, "우리 애가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는다"
이러니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진 적도 없으면서 일 년에 한두 번 집에 와서 '대기업을 가야 한다', '전문 직종에 종사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짜증이 나고, 기성세대는 나름 조카가 걱정이 돼서 잘 되라고 조언을 해준 것인데 돌아오는 것은 짜증이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럼 우린 계속 싸워야만 할까...?
어찌 됐든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앞으로도 추석과 설은 계속 있을 것이고, 우리는 친척들과 모이기 때문에 싸우지 않으면서도 화목한 가정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는 대화 어젠다가 필요하다. 그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사실 나도 해답은 모른다. 다만 나뿐만 아니라 이런 현상이 계속 일어나기에 글을 작성해 봤다. 인터넷에 도는 짤처럼 '추석 잔소리 메뉴판'을 만들어 잔소리마다 돈을 걷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친척과 만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내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면 조금은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 글을 써본다.
잔소리 대신, 덕담은 어떨까
잘은 모르지만, 00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네가 가장 고민이 많겠지
우선 우리 아버지 세대 분들에게는 잔소리보다는 덕담을 먼저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덕담은 상대방과 관계를 구축하고 경계심을 푸는 것에 효과가 있다.
고민이 많았는데, 얘기를 하고 나니 좀 홀가분해지네요
반면 나를 포함한 청년 세대에게는 다음과 같은 자세로 나오는 것을 권해본다. 우리야 나쁜 말로 잔소리라고 하지만, 그 본질을 찾아보면 사실은 진심 어린 걱정에서 나오는 말이다. 비록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친척일지라도 말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른이 하는 이야기의 진심을 보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우리 모두의 숙제가 아닐까
한쪽만 잘못한 싸움이 없듯이, 모든 갈등에는 양측 당사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먼저 말을 건네는 기성세대 분들도, 그리고 말을 듣는 청년 세대 모두 상대방을 조금 더 배려한다면 진정한 '추석'의 의미에 맞는 풍성한 한가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