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일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2)
전편: 돈이 많으면 일하지 않아도 행복할까? 에서는 해석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권태와 고통이 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고통을 견디는 의미가 될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이제 삶의 일부인 일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대한 고민을 적습니다.
삶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업무 시간을 돈벌이, 자아실현, 성장과 성공 등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삶의 의미를 획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시간을 보내도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이죠. 어차피 같은 일인데 그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삶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는 삶은 먹고 마시며 그저 많은 경험을 소비하기에 급급한 동물의 삶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삶에서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경험을 소비하는 것에서 끝나고 어떤 이들은 그 경험을 통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갑니다. 업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업무 시간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는지는 순전히 삶을 누릴 수 있는 능력치에 달린 문제입니다.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지만 의미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삶을 사는 것 자체가 큰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이 지겹고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 삶도 다를 바 없습니다.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에는 인생에 대한 나름의 통찰이 녹아져 있습니다. 즐거운 것만 하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지만, 어떤 쾌락도 지속된다면 고통이 됩니다. 더 큰 쾌락, 더 많은 돈, 더 편안한 삶, 더 많은 휴식 또한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겨운 일상 속에서 짊어져야 하는 과업이란, 삶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매일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말이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말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수면과 인생의 균형', '식사 시간과 내 삶을 구별하기'와 같은 표현이 이상한 것과 같습니다. 일을 하는 시간은 마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처럼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영역의 하나입니다.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행위인 셈이죠. 워라밸이라는 말로 업무를 내 삶과는 다른 영역으로 분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라이프 밸런스입니다. 식사량이나 수면량을 조절하듯 적절한 업무로 삶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죠. 운동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운동을 하고 나서 균형 잡힌 식사로 영양을 보충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 선수들은 그 모든 과정이 운동이라고 표현합니다. 삶 역시 그렇습니다. 일과 운동, 공부와 독서, 산책과 휴식, 여가와 문화, 식사와 수면 등 많은 요소들이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삶은 긴장과 이완의 균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긴장과 이완 둘 중 무엇이든 과하면 삶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과다한 업무가 아니라 과다한 수면이나 과다한 식사 또한 라이프 밸런스를 깨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일은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일하는 그 고된 시간 또한 사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이란 삶과 별개가 아니며 일하는 그 시간들 역시 내 소중한 삶이라는 사실은 분명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지겹고 힘든 시간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워커홀릭이 아니고서야 그게 가능할까요?
저는 직장에서의 시간과 집에서의 시간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의 자아와 집에서의 자아를 구분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물론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한 탐색과 노력의 시간들이 지금의 행복한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글을 쓴 것은 직장에서의 자아실현과 성취로 인해 삶이 풍성해짐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글은 그보다 본질적인, 어쩌면 삶 자체에 대한 고민에 가깝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일하는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일은 단순한 과업이 아니라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무너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축이기 때문입니다.
돈 많이 벌고 은퇴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지. 굳이 고된 직장 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업무에서 의미를 찾아보려 해도 의미 있는 구석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많은 시간이 내게 선사할 수 있는 의미들을 그대로 두는 것은 정말 아까운 일입니다.
일을 하면서 충분한 의미를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삶과 내 일의 의미가 일치한다면 그 둘을 굳이 구별할 이유도 없습니다. 저는 삶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일에서도 제 삶과 동일한 의미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과 쉼, 운동과 여가 등 제 삶의 모든 요소들은 제가 지향하는 단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입니다. 인생 전체를 보아도 그렇지만 오늘이라는 작은 단위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처리하는 업무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들. 이 모든 것들은 어쩌면 내게 특별한 의미가 될지도 모를 가능성으로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나날들을 돌아보면 이 많은 가능성들은 다 사용되지 못한 채 버려지곤 합니다. 사람이 인생에서 매일같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사용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 훗날 아무리 많은 눈물을 흘린다 해도 지금이 아니면 무의미한 눈물이 있습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후회 없이 잘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제게 가장 중요한 과업이 됩니다.
삶을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해 볼까요. 괴테가 말했던 가장 고귀한 열정은 평범한 문장을 시적인 표현으로 만들고, 시간과 에너지를 녹여 특별한 의미를 만듭니다.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재료 삼아 매일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삶을 녹여내어 유의미한 조각을 만들고자 싶습니다. 설사 그것이 미완성으로 마무리될지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매일 충만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그런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일에서도 그렇습니다.
언젠가 직장 생활을 그만두게 될 그 시점을 생각해 볼까요. 나이는 80. 일하기엔 몸도 불편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는 그 시기에 균형 잡힌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죽음을 가까이 인식하는 그 시기에는 인생의 뿌리 깊은 곳에서 자라나는 공허함을 매일 마주하게 됩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그 공허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무언가에 열심히 몰입하며 인생을 사용했던 젊은 시절에는 그런 공허함을 느낄 겨를이 거의 없었겠죠.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다 보니 삶은 돌아볼 겨를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을 테니까요. 어느덧 일을 그만두고 나니 이제 어떤 일에서 의미를 구해야 할지가 문제가 됩니다.
일이 단순히 직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은퇴를 하고 작은 텃밭에서 상추를 기르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아주 사소해 보일지라도 인생의 덧없는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대기업 회장의 업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매 순간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일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밥을 잘 챙겨 먹고 잠을 잘 자는 것처럼 일을 잘해야 합니다. 내가 일에서 느끼는 의미가 내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직장에서 자아를 실현하고 일을 통해 성장하는 즐거움을 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의 의미란 성공한 사업가, 대기업 회장이 된다고 해서 당연히 따라오는 보상이 아닙니다. 그들이 누리는 진정한 의미는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방법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노력으로 획득된 것입니다.
일하는 동안에 얻게 되는 삶의 의미. 그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성취나 조건에 의한 보상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내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어야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 소중한 삶을 무슨 일을 통해 사용할 것인지. 어쩌면 사소하고 괴로운 이 행위 속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일이 지겹고 고된가요? 물론이겠지요. 그렇지만 일이 고된 것이 아닙니다. 삶 또한 그렇습니다. 일을 그만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삶의 과업이므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지속될 것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지겹고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지금과는 다른 행복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도착한 곳에서 그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일상의 고통입니다. 삶이 지닌 근본적인 무게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여행이 설레고 즐거운 이유는 비일상적인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행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되는 순간 그 역시 지겹고 힘든 업무와 다를 것 없습니다. 일상이 힘들다는 이유로 일상에서 먼 행복을 꿈꾸면서, 어쩌면 더 없는 의미가 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그것 또한 삶이라면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겠지요.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