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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kwangsu May 01. 2024

분노가 필요한 순간

우리의 삶에서 겪는 부당함을 마주하는 바람직한 자세







친한 후배가 직장 상사에게 대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것도 선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아주 당차게 따졌다고. 그 말을 듣자니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듯했다. 잠깐 참고 넘어가면 될 일을. 화를 참지 못한 대가로 들이닥칠 후폭풍이 눈에 선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한참 윗사람한테 무례하게 뭐 하자는 거야, 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나 싶어 그 후배를 따로 만났다. 그런데 막상 전후 상황을 다 듣고 나니 그 친구의 행동에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그 상사의 말은 정말 부당했고 가혹했다. 단 한 가지 잘못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리를 가볍게 내두를 수 있는 권력자라는 점뿐이었다. 후배는 내게 폐를 끼친 것이 정말 죄송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연신 사과했다. 참았어야 했는데 듣다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할 말을 다 해버리고 말았다는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망이 부끄러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라면 그렇게 소신껏 말할 수 있었을까.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권위적인 상사에게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나는 침묵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언제부터 나는 그렇게 예의를 중요시했으며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했었고 나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보는 일을 주의해 왔던가. 단지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 앞에서 비겁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친구의 용기를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끝까지 어설픈 훈계를 하려 들었다. 옳지 않은 것을 목도하고도 때에 따라 상대에 따라 얼마든지 외면하고 침묵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당함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 부당함에 동의하는 것과 다를 게 무언가.





부당함에 침묵하지 말자. 마땅히 분노하자.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었다 해도 규범에 반항하지 말라는 세상의 질타와 입막음하려 드는 손에 다시금 입을 다물기 쉽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점차 분노하는 법을 잊어간다. 사회 규범에 충실하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기성품이 되어간다. 대게 분노라고 하면 이성을 마비시키는 부정적인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분노는 언제든 사회 규범과 충돌할 수 있는 위협적인 것, 그래서 언제나 참아야 하며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분노에는 관습처럼 행해지는 옳지 못한 일을 멈추는 힘이 있다. 올바른 분노는 내 감정을 해소하는 수단이 아닌,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는 힘으로 작용해야 한다.


부당한 것을 목도하고도 외면하는 태도는 내 삶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에 순응할수록 내 삶 또한 부당함으로 가득하게 된다. 당장 내게 닥친 일이 아니라 해도 오늘의 침묵은 장래에 내게 닥칠 부당함에 대한 동의가 될 것이다. 우습게도 정작 권력 앞에서는 침묵하던 이들이 자신보다 힘없는 자들에게는 분노를 쏟고 목청을 높인다. 마땅히 분노해야 할 방향으로 표출되지 못한 분노는 진정한 의미의 분노가 아니다. 무차별적인 학살이며 신경질적인 폭력일 뿐이다. 우리 삶에 어떤 유의미한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감정의 배설에 불과한 것이다.


때때로 세상은 우리에게 부당함조차 긍정할 것을 종용한다. 부당함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든 비겁해지기 쉽다. 하지만 부당함에 순응할 것이냐 아니면 부당함에 맞설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순응한다면 어떤 충돌도 없겠지만 또한 어떤 유의미한 변화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삶이 여전히 부당함으로 가득한 이유는 우리가 부당함에 대해 침묵을 선택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긍정할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서있는 삶의 자리에서, 부당한 것들은 조금씩 바로잡아야 한다.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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