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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레논 Oct 04. 2023

물에 빠진 물고기


대한민국의 수많은 음식점 중에

미역국 전문점에 들어서면

미역국의 뻔뻔한 자신감에

약간의 당혹스러움마저 느껴진다


식사 한 켠에 그냥 '국'으로 존재하던

미역국이 메인이 되어버린 이 곳에서는

미역국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이 곳에서 12,000원을 지불하면

미역국이 포함된 정식이 아닌

12,000원어치의 거대한 양의 미역국이 나온다.


생일도 아닌데 산후조리를 해야할 몸도 아닌데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다고

그 풍덩한 양의 미역국이 생각났다.

적은 양의 국을 먹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몸의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뜨끈해지는 느낌이 그리웠다.


가자미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있는 미역국이 나오자,

습관적으로 폰카메라를 들이댔다.

산신령 연못에서 나오는듯

과장되게 펄펄 끓어오르는 김 때문에

사진첩에는 미역국이 아니라

그냥 뿌연 연기만이 담겼다.


미역과 가자미 한마리가 담겨있는

돌솥을 보고있자니

지구온난화(warming)의 시대가 끝나고 도래한

'끓는 지구(boiling)' 시대의 바닷속 같다


시원한 바다를 헤엄쳐야할 가자미가

자유롭게 이리저리 흔들려야할 미역이

공기밥에 말기 딱 좋게 익어있다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누군가는 '물에 빠진 물고기'를

괴식으로 여긴다고 한다

구운생선과 밥에 뜨거운 차를 부어먹는

일본에서 흔히들먹는 오차즈케라는 음식이 있다면

한국에는 가자미 미역국이 있다.

난 물에 빠진 물고기를 먹는 걸 꽤 즐기는 편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긴...

물고기를 굳이

불에 구운 후

물에 담궈 먹는다니


물에 빠져 죽은 물고기가

당황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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