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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Jul 08. 2023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나는 항상 행복을 선택한다.

    한때 대표 주말예능 자리를 지켰던 <무한도전>에서 Yes or No 특집을 진행한 적이 있다. 각 상황에 제작진이 제시한 2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멤버들이 고르고 그 선택에 따라 이후 상황이 바뀌는 구조였다. 짜장과 짬뽕이라는 아주 간단한 메뉴 선택으로 시작했던 녹화각자의 선택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른 결말을 맞았다. 호텔 디저트를 즐기고 일찌감치 퇴근한 멤버가 있는가 하면, 다음 날까지 녹화를 하고도 원하는 음식을 얻지 못한 멤버도 있었다. 하나하나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짙은 웃음과 함께 보여주는 편이었다. 그 특집의 시작에 장 폴 사르트르의 명언이 언급되었는데 의미뿐만 아니라 형식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아 쉽게 잊히지 않는 문장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연속적인 알파벳을 이용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문장 구조가 탁월하다는  부정할 수 없다. 만약 'B와 D 사이의 C'라는 문장을 보여주지 않고 단순하게 의미를 풀어썼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까지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자주 떠올렸던 건 비단 형식뿐만 아니라 담아낸 의미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나에게도 이 문장이 다시 되살아나던 순간, '선택'이 삶에 큰 변화를 준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의 방법을 알려준 교육


    만 14년이 넘도록 회사를 다녔고, 특히 처음 10년은 교육이 많기로 유명한 회사에 다녔다. 직무도 몇 번 바뀌었고, 조직도 많이 옮기다 보니 여러 내용의 교육이나 세미나에 참여했다. 그중에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상 깊었던 교육이 하나 있었다. 좀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준 교육.


     보통 회사에서 교육을 듣는다고 하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그러니까 뭔가를 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교육은 반대로 나를 비우는 법, 정확하게는 나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것들을 덜어내는 방법을 알려줬다. 비우고 빼는 것이 필요한 이유,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로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까지.

     교육과정은 어디서나 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내용의 교육과정은 본 일이 없다. 당시 교육 담당자들은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콘텐츠를 구성하기 위해 수십 권의 책을 읽으면서 준비했다.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준비하고 열게 된 과정이라고 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들에게 유용한 깨달음을 준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구성원들에게 유용하고 필요할 것 같아서 해보기로 했다는 가치가 더 크게 느껴졌다. 참석자들에게 정말 가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교육 담당자 진행자인 두 분의 마음이 느껴져서 완전히 프로그램의 의도에 나를 맡길 수 있었다.


    요즘 흔히 언급되는 '마음 챙김'이 그 교육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다. 특히 그중에서 삶에 가장 큰 변화를 주었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선택의 영향을 확인한 시간이 가장 의미 있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각자 지난 한 주간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불행하다고 느낀 순간을 떠올린다. 그 후에는 그 행복과 불행의 순간이 나에게 일어난 이유 그때의 감정을 작성한다. 교육 내용을 전달하기 이전에 각자가 작성한 내용을 먼저 한번 공유했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의 순간의 이유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행복하게 느꼈던 상황과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로, 반대로 불행하다고 느낀 순간은 하필이면 나에게 찾아온 일이라고 느꼈다. 다른 사람보다 긍정적인 편이라고 자신하던 나 역시 비슷했다.


    행복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사고방식을 정반대로 바꾸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기에 찾아온 일이다.
나는 충분히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불행한 사건이나 상황은 모든 사람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우연히 그게 이번에는 나에게 발생한 것이다.


     짝을 지어서 지난주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사고방식을 정반대로 바꿔서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내 짝은 지난 한 주 전세난으로 겪은 짜증 나는 상황에 대해 시작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그냥 내가 운이 없는 건데'라고 말했지만 몇 차례 대화가 오간 뒤 생각을 바꿨다. 내가 아니라 누구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겪은 행복과 불행도 그랬다. 나에게 닥친 안 좋은 사건들은 사실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겪은 기분 좋고 행복했던 순간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또는 내가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생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동안 반대로 생각해 왔다는 걸 깨닫고 놀란 모습이었다.



행복을 선택한다는 것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나 운명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나쁜 일을, 마치 나를 따라다니는 운명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들이 불행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받아들이며 산다면 불행할 운명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행복한 일이 생겨도 '어쩌다 한번'이라고 받아들이면 그 행복을 충분히 즐기기 어렵다. 행복은 작게, 불행은 당연하게 느끼는 삶이 일상이 될 것이다.

     이미 상황 벌어져 있다. 거기서 행복을 발견할지 불행을 발견할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행복이나 불행이 나를 선택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내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셈이다. 이 깨달음이 나를 바꿨다. 아니 내 일상의 행복의 수준을 전과 다르게 높였다.


    1시간 남짓의, 행복과 불행을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의 의미와 그 연습은 이틀 간의 교육 중 가장 인상 깊은 시간이었다. 나아가 그 회사에 다녔던 3년 반의 시간 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내 전체 삶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중요했던 시간이다. 내 선택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배운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교육과정에서 배운 것처럼, 나는 이런 과정이 내가 재직 중인 기간에 열렸다는 데 감사했다. 또 내가 그 교육 신청을 발견하고 의미 있게 소화하게 된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나에게 특별히 찾아온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 덕분에 교육의 모든 순간과 그 과정에서 만나고 대화한 모든 사람, 인연이 더 특별해졌다.



다시 사르트르로,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생이 삶과 죽음 사이 선택이라, 계속 무언가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의미다.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내 결정이 더 나은 선택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정답을 알고 있다면 어려울 리 없다. 일부러 틀린 답을 고르고 싶은 게 아닐 테니까. 미래를 보고 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선택 앞에서 우리는 늘 고민한다. 아마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지금, 가장 좋은 선택을 하고 싶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B(Birth)에서 D(Death)를 향하는 인생에서는 언제나 정답이 정해져 있는 선택도 있다. 그 선택은 바로 '행복'하는 것이다. 인생이 시험은 아니지만 그에 비유하자면, 지난 교육은 내게 정말 중요한 힌트를 알려준 셈이다. 내 성격에 신기하고 좋은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을 리 없으니 주위에도 많이 알렸다. 말하는 것 이상으로 행복을 선택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삶에서 느끼는 행복감과 태도의 변화 자체가 그 힘을 보여주는 증거였을 거라고 믿는다.

     언젠가부터 '속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잘 흔들리지 않고, 항상 자신을 믿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언제나 나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무엇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이 글은 70% 정도를 빠르게 써 내려갔지만, 완성을 하지 못하고 작년부터 계속 미완성의 서랍 속에 있었다. 그 이유는 나름대로 행복의 완전한 방법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내 경험과 의견만으로 글을 마무리해도 설득력이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 책을 만났다. 베스트셀러로도 익숙한 칼 필레머의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다.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 노인들을 만나서 대화하면서 얻은 인생의 지혜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가 '인생의 현자들'이라고 부르는 인터뷰이들로부터 얻은 내용을 8개의 장으로 나눠 정리했는데, 그중 7번째 장의 제목은 "행복은 선택일 뿐"이다. 수많은 선택을 반복하면서 삶의 종착점에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꺼낸 지혜 중 하나도 "행복이라는 건 내 생각과 선택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라니.


    그 교육이 없이도 우연히 이 책을 만나서 같은 교훈을 얻고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행복이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 행복의 크기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알고 살아가는 삶과 일상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그 몇 년의 시간 차이가 지금의 나를, 그간 내가 경험한 수많은 행복을 만들었을 것으로 믿기 때문에 부족한 글로나마 이 힌트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는 채로 D(Death)로 향하는 것과 이걸 알고 일상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은 천지 차이일 것이라는 믿음을. 나의 증언이 믿기 어렵다면 삶의 종착점에 가까운 인생의 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그들의 지혜를 더 젊고, 아직 선택할 것이 많은 시기에 얻게 된다면 손해 보는 삶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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