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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Dec 29. 2023

2023년 연말결산

#연말결산 #올해의책 #올해의영화

가장 긴 루틴, 연말결산


    10년 이상 매년 연말이면 한 해를 정리하며 나만의 어워즈처럼 올해의 OOO을 고르고 있다. 2020년부터는 브런치로도 공유하고 있는데, 지난해 연말에는 놓치고 지나갔음을 이번에 깨달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반복해 본다. 가장 긴 일상의 루틴 중 하나가 연말결산이니까. 친구와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에서도 최근에 '연말결산'을 다뤘다. 내가 연말결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녹음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고민해 봤는데, 나는 새로운 한 해를 더 잘 살아내고 또 지난 한 해를 잘 기억하기 위해서 연말결산을 한다고 스스로 답했다. 

    일정 기간을 돌아보면서 마무리하고 보내는 것. 올해 참 게으르게 브런치에 글을 썼지만, 그나마 최근에 (6월 말이지만..) 올린 회고에 대한 글과도 접점이 있다.




올해의 책

    몇 년 전부터 읽은 책을 모두 노션으로 기록하고 있다. 카테고리와 함께 나만의 별점을 매기고 최근에는 짤막한 한줄평도 추가했다. 누군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읽은 지 오래된 책들의 경우 추천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다. 그래서 이제 나만의 연말 시상식을 할 때 책 부문의 선정은 한결 수월하다. 평점이 높은 순서로 살펴보며 고민하면 된다. 2023년에는 50권을 조금 넘는 책을 읽었고, 그중에서 별 5개를 받은 책은 딱 두 권이었다. 팟캐스트에서는 한 권만 선정해서 발표했지만, 여기에는 두 권을 모두 공개한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 최인아

    '내 이름 석자가 브랜드다'라는 책 소개의 한 문장 때문에 바로 읽게 된 책이다.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한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나 자신'을 어떻게 마케팅하고 브랜딩 할 것인가 고민하는 나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기도 했다. 제일기획 부사장까지 올랐던 광고인에서 일과 자리를 과감히 던지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선택이 내 기준에서는 저자의 가장 특별한 기록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연인의 삶을 충실히 즐기다가 다시 일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도, 그렇게 다시 찾은 두 번째 일이 '최인아 책방'이라는 하나의 공간이자 브랜드가 된 것도. 책과 사람을 통해서 여러 삶의 이야기를 읽어내다 보면 때때로 정말 부러운 경험들이 있다. 부러움을 사는 건 어떤 결과지만 사실 그 결과를 만들어 낸 과정, 즉 그 사람의 선택은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존경할 일이다. 그리고 존경하고 그칠 게 아니라, 나도 원하는 결과를 내 삶에 그려낼 수 있도록 적합한 선택을 하면 된다. 대부분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막연히 여기게 되는 그런 중요한 선택들을 과감하게 하기만 하면 된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오랜만에 발표된 하루키의 신작이었다. 10월의 치앙마이 여행을 앞두고, 일부러 이 책을 읽지 않고 남겨두었다. 치앙마이의 올드타운은 정사각에 가까운 구 성벽과 얕은 해자로 성 바깥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 올드타운 내에 머무를 때에 읽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사실 '벽'의 의미도 알 수 없었지만 마냥 그게 어울릴 것 같았다. 거의 대부분의 구역에서는 흔적조차 없는 오래된 벽은 간혹 허물어진 채로 등장하는데 그 벽을 끼고 하루키가 새롭게 만든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 어떤 하루키의 세계보다 불확실하게 느껴졌다.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소설가의 일에 언제나 매료되며 동경하는 나에게 이 소설은 독특하게 이야기의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 대신에 좋은 소비자로 남는 일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올해의 영화/드라마

    영상 형태의 콘텐츠는 정말 나와 거리가 멀다. 언제쯤에는 친해질 순간이 생길 수도 있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문자(Text) 형 인간인지라 쉽지 않을 것 같다.


<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 

    대학에서 통계학을 연구하며 여러 상황들을 숫자나 확률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철저한 스타일의 남자 주인공 (조금 귀여움). 살짝 덤벙거리지만 감정에 아주 충실한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 두 사람이 우연히 연말의 북적이는 공항과 비행기에서 만나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다룬 영화다. 이 정도의 설정만으로도 대략 어떻게 결말이 펼쳐질지 충분히 그려지리라. 작품성, 영상미 같은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그냥 흐뭇하게 연말이나 주말을 보내기에 적절한 영화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역시 영화에 적절하게 알맞다.

    작품성을 생각하며 선정한 건 절대로 아니고, 다만 이 영화를 본 장소나 상황이 딱 어울렸기 때문에 가산점을 받아 올해의 영화로까지 올라왔다.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호텔의 단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비행기 이착륙 소리가 마치 효과음처럼 타이밍 좋게 들려서 화면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더 몰입하게 됐다. 데이터와 확률에 익숙한 내 직무 때문에도 더욱 공감이 되고, 확률을 따져가며 바보같이 구는 상황에는 더욱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누군가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면 작품성을 떠나 그 사람에게는 좋은 영화다. 가을의 초입에 봤던 영화가 아직도 생생하다면 충분히 어워즈에 오를 가치가 있다. 올해 본 영화와 드라마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경쟁에서 유리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상황과 높은 확률조차도 이 영화의 운이 아닐까.



올해의 음악

    오프라인으로 저장해 둔 곡을 반복해서 듣는다. 신곡이 나왔다고 들어보는 일도 드물지만, 주위에서 하도 많이 이야기해서 틀어본 신곡을 1분 이상 들어보는 경우도 많지 않다. 한두 번 듣고 바로 플레이리스트에서 제거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매년 그 해에 많이 듣는 노래들이 생긴다. 취향은 한결같기 때문에 매년의 노래들은 대부분 같은 가수의 곡인 경우가 많고, 올해도 그 경향은 더욱 짙어졌다.


<부동의 첫사랑> - 10cm

    그 해에 발표된 노래가 올해의 음악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있다니 신기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오래된 노래를 뒤늦게 알게 된 것이리라 짐작했는데 2023년 봄에 발표된 곡이었다니! 작년에 정말 많이 들었던 10cm의 <그라데이션>을 밀어낸 노래가 바로 이 <부동의 첫사랑>이다. 같은 가수의 다른 노래로 2년째 일상의 멜로디를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거의 무한정 반복재생을 할 정도로 빠져서 들었고, 최근에는 그 정도로 집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외출할 때 처음 선택하는 곡은 70% 가까이 이 노래다. 다만 하반기 들어 약간 마음에서 벗어나 있다.


<정이라고 하자> - BIG Naughty (feat.10cm)

    하반기 들어 <부동의 첫사랑> 대신 첫 곡으로 많이 선택된 노래다. 올해 처음으로 알게 된 가수였는데, 여러 곡들을 들어보다가 이 곡이 마음에 들어서 거의 정착하듯이 자주 들었던 곡. 이번에도 피처링으로 등장한 10cm가 놀라운데, 목소리나 주파수에 뭔가 끌림이 있는 걸까. 


<딱 10CM만> - 10cm & BIG Naughty

    변명의 여지없이 취향 x 취향의 선곡이다. <정이라고 하자>를 통해 빅나티를 알게 되고 나서 연관된 노래로 이 곡을 알게 되었는데, 또 10cm이기도 했고 내가 딱 좋아하는 템포와 멜로디 스타일의 노래여서 당연히 바로 플레이리스트에 자리 잡았다.  




    그 해에 좋아했던 콘텐츠들을 돌아보면 평소의 나를 보여주는 올곧은 취향(음악)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해의 특별한 경험과 인상을 찾기도 하고(영화), 최근의 관심사를(책) 읽게 되기도 한다. 특히 매년의 독서 목록을 보면 나는 내가 올해 책으로부터 어떤 것을 읽고 싶었는지 알게 된다. 잘 정리된 독서노트나 목록은 어쩌면 그 특별한 한 해의 나 자신이 남겨놓는 편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매번 지나가는 똑같은 길이의 365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기록하기를 반복할 수밖에. 2023년의 내가 흐릿할 몇 년 뒤의 나에게는 좋은 사진 같은 메모가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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