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ipe 10. 우릴 좀먹는 가족력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사실 나의 모습이래요

by 청년백수 김파보

우리 집엔 희한한 가족력이 있다. 희한한 가족력이 우리 외가의 피를 거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땐, 외할머니를 거쳐 우리 엄마, 그리고 아들인 나에게 까지 이미 증상이 발현된 이후였다.


우리 외할머니는 슬하에 오남매를 두셨다. 사진작가 활동을 하시는 큰 외삼촌, 오남매 중 제일 돈을 많이 버는 작은 외삼촌, 작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큰이모,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하는 작은이모, 그리고 우리 엄마다. 엄마에게 전해듣기론 엄마가 어렸을 때 아주 가난했던 시절, 외할머니는 이 2남 3녀를 궁색한 형편에서도 산나물을 뜯어다 팔아가시며 아주 어렵사리 키우셨다고 다.


그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와 동생은 외할머니 손에서 꽤 오랜시간 길러졌었다. 우리 엄마가 학원 때문에 바쁠 시기에 외할머니 우리 집으로 오셔서 우리를 돌봐주셨다. 원래는 엄마가 나를 외갓집에 맡겼었는데, 외갓집은 곰팡내가 나는 꽤 허름한 단독주택이었던 지라 어렸을 땐 그게 그렇게나 싫었는지 내가 하도 울고불고 떼를 써서 맘약한 우리 엄마가 외할머니를 매일같이 아파트인 우리집으로 셔왔었던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거의 우리 집 살림을 함께 도모하셨는데, 엄마는 외할머니 특유의 절약 정신을 매우 못마땅해 했었다. 엄마가 하루는 외할머니한테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외할머니가 슈퍼에서 사올 때 받는 비닐 봉다리들을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 했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가 그 비닐 봉다리들을 정말 온 주방 서랍을 가득 매울 정도로 모아 놓아서 주말에 엄마나 아빠가 요리를 할라 치면, 주방에 식기보다 비닐이 많아 여간 불편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가 비닐을 다 버려 버리는 날에는, 외할머니가 화를 내면서 하루종일 엄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기 때문에 싸움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또 외할머니가 보리차를 우릴 때 내는 그 팩을 버리는 것이 아깝다고 똑같은 팩을 정말 몇 번이고 우려내어 우리집 보리차는 거의 쓴 맛이 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외할머니가 그 팩을 못 버리게 해서 울컥 화를 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붙으면서 더 이상 우리 집에 오는 일이 없으셨다. 그 뒤로는 거의 명절에만 외할머니를 찾아 뵙고 했었다. 외할머니가 거의 매일 우리집에 상주해 계셨을 때와 달리, 명절에만 찾아 뵙는 외할머니는 볼 때 마다 노쇠해 지시는게 눈에 더 역력했다. 럼에도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에 가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게 외숙모의 푸념이자 걱정이었다.


대학에 붙고 나서 설날에 외갓집에 갔을 때 외할머니가 몰래 대학등록금이 담긴 봉투를 나한테 전해주셨다. 엄마는 당신이 무슨 수로 이렇게 큰 돈을 모았냐면서 못 받겠다고 했었지만, 사실 그 때 우리 엄마가 사업을 하느라 많이 힘들었던 때라는 걸 할머니께선 어렴풋이 짐작하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도 할머니는 점점 몸이 편찮으시다고 하셨지만 병원에 가신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합격한 뒤, 한 1년쯤 뒤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펑펑 울었다. 그 기억이 선명해서 나는 줄곧 엄마의 장례식에 있는 나를 상상해보곤 했었다. 엄마의 심정을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다행스럽게 엄마는 그럼에도 이내 다시 기운을 차렸다.


엄마와 떨어져서 살기 시작한 뒤로 나는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부전화를 할 때 마다 그 끝엔 '어디 아픈덴 없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마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었지만, 오랜만에 엄마를 볼 때 마다 엄마는 항상 족저근막염 때문에 멀리 가는 것을 꺼려했다. 리고 손은 주부습진 때문인지 피부가 트여 항상 거칠고 쩍쩍 갈라져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미련하고 답답해 핸드크림도 사주고 병원에도 가 보라고 다그쳤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치아 한 쪽이 뭔가에 닿기만 해도 미친듯이 시려왔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나는 허겁지겁 치과로 가서 엑스레이 촬영과 이것저것 검사들을 받았다. 나는 시린 이 쪽에 크게 문제가 생겼을까봐 노심초사 했다. 그러자 어떤 젊은 여성 의사분이 오셔서는 '소견으로 봤을 때, 시린 이는 잇몸이 마모돼서 뿌리 부분이 드러나 시려운 것 같아요. 이런 건 때워도 금방 벗겨지기 때문에 그냥 낫기까지 경과를 지켜봐야 돼요.'라는 말을 했다. 순간 안도했다. 그런데, 의사 분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좀 문제가 있어요. 두 군데 정도 충치로 의심이 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경우엔 레진 같은 것으로 충치를 제거하고 때워야 돼요.' 라면서 나의 치아에 충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는 때울 재료는 무엇이 있으며, 무엇이 어떤 특성이 있고, 요즘엔 환자들이 이런 걸 많이 하는 추세다,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잠자코 듣던 내가 '비용은요...?'라고 여쭤보니, 글쎄 제일 최저로 하면 한 쪽에 25만 원씩 해서 총 50만 원, 좀 좋은 재료로 하면 100만원 정도가 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 나는 일단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변명을 하고는 황급히 병원을 뛰쳐나왔다. 아니, 뭔 조그만 충치 때우는데 백만원이나 하다니..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았던건가 싶었다. 그렇게 어떻게 치과 비용을 내야 되나 고민을 하면서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차마 입에서 병원비를 달라고 하는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아빠한테는 이야기를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변하지 않았다. 아빠는 자신이 내줄 테니 그냥 편하게 치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내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일단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인터넷에 건강보험이나 실손보험 등 각종 보험 약관들을 찾아봤지만, 치과는 특약으로 따로 가입해야 보상 받는다고 돼 있어 좌절했다.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치료를 해야되나 싶었는데, 병원마다 치료 비용이 다를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에 가서 견적을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어코 다른 치과를 방문하자, 그 곳의 의사선생님은 '충치? 없는데? 그냥 깨끗한데, 이 시린건 어쩔 수 없어. 나이 먹으면 계속 그럴거야. 그냥 가끔 와서 스케일링 받고 양치 잘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날 가슴 졸이게 했던 긴장의 끈이 탁 풀어지면서 모든게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치가 내 잇 속에 있건 없건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일단 그런 큰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제일 컸다. 그리고 시린 이 역시 큰 수술이나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원래 생각했던 병원비도 굳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확증편향처럼 그것이 과잉진료였다고 믿은 채로 치과에 굳이 가는 일은 없었다. 빠는 나에게 '정말 충치 치료 안해도 되겠어?'라고 물어봤지만, 나는 애써 '괜찮다'는 말로 무마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린 이는 낫지 않고 있다. 갈수록 이는 더 시려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가슴 시린 것보다 차라리 이가 시린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에 시린 이를 참으며 치과에 가지 않는다. 나는 언제쯤 이 시린 이를 치료할 수 있을까. 그 때 알았다. 우릴 충치처럼 좀먹는 가족력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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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ipe 10. 닭죽 닭곰탕



•닭죽이란?

우리 외할머니는 이따금씩 나에게 닭죽을 해주시곤 하셨다. 야채를 먹지 않았던 어린 나에게 닭죽은 맛도 있으면서 영양가도 풍부했기에 이따금씩 해줄 특식으로는 딱인 메뉴였다. 외할머니는 시장에 친했던 한약방 아저씨로부터 한약재 등을 구해와 닭과 함께 푹 삶아주곤 하셨는데, 그 약재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혼자 사는 내가 그런 한약재를 사서 죽을 짓기엔 너무 번거롭기에 대안이 없을까 하던 찰나에, 편의점에서 파는 천 원짜리 쌍화차를 넣어보았다. 그랬더니 왠걸, 외할머니가 해주셨던 그 닭죽의 맛 향이 난다! 못 믿겠다면 직접 해보시길! 참고로 잘 만든 닭죽은 잡내 없이 깔끔한 맛이 나면서 간이 잘 맞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향신채의 향이 너무 강해서도 안 되며, 닭의 지방이나 내장에서 나는 누린내도 잡아야 한다. 닭죽과 궁합이 아주 잘 맞는 향신료는 바로 마늘! 마늘은 아주 부드럽게 으깨질 정도로 푹 삶아주자. 여담으로 외국에서도 닭죽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보양식으로 통한다. 어렸을 때 우리가 자주 읽던 책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도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위한 맛있는 건강식으로 치킨 스프를 많이 끌여줬기 때문에 마음의 양식을 채워주는 따뜻한 조언들을 할머니가 끓여주는 치킨 스프에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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