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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Feb 25. 2024

비빔국수 그 쓸쓸함에 대하여

비빔국수 너 참 쓸쓸하다.


멸치맛의 진수를 보여주는 행주산성 원조국수는 늘 옳았다. 그런데 언제나 옳았던 국수가 오늘은 틀렸다. 많이 틀렸다. 주문은 산뜻하게 계획도 그럴싸하였다. 다가올 선택의 결과로 일어날 참사를 꿈에도 모르고. 나는 멸치국수, 그대는 잔치국수. 국내 삼대 반반의 국룰 아라면 짜장면과 짬뽕, 잔치와 비빔국수, 튀김과 양념 통닭이라 했다.


멸치국수, 비빔국수


멸치국수 하나에 비빔국수를 서로 그릇에 나누고 냠냠 이것 요것 맛보고 있을 즈음, 옆자리 40대로 보이는 중년 두 분 역시 멸치국수에 비빔 하나 주문이다. 먼저 비빔국수 배달된다. 힐끗 쳐다보니 남자분은 초장을 풀고 젓가락을 돌려가며 진심을 가지고 비벼 된다. 국수도 상추도 양이 많아 비비기가 아무래도 약간의 힘이 든 듯 보였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불안했다. 안 그러길 바랐다. 비벼서 앞자리 여성분에게 줄 것인지? 생까고 본인이 슥삭 드실 건인지?


4분 전 우리 식탁의 모습은 이랬다. 그분은 어렵게 초장량을 황금비율로 맞추려 눈대중하고 있었고, 앞쪽 남자분은 그래도 양심은 조금 있었던지 다 비벼질 때까지 젓가락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늘 나에게는 그랬듯이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남자분은 젓가락을 휘저은 후에 비빔그릇을 아무렀지도 않게 여성분 앞으로 쓰윽 갔다 놓는다. 큰일 낫다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차고, 엎질러진 물이지 않나. 애써 안 본 체하고, 후루룩 익숙한 젓가락 질만하다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나왔다.


인천으로 오는 차 안,

"옆 식탁 남자가 비벼 주는 거 보심? ㅜㅜ"

"당연한 거 아님.""예의 아님"

"................ "  "그분들 부부가 아니고 연애 아님? 결혼 10년 차 이상 가능하지 않은 행동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화만 오고 가는 씁쓸한 분위기는 뭔고. 국숫집 회동은 대동단결하여 한 가지로의 통일은 필수로 중년이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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