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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버스 같은 삶,<미스 리틀 선샤인>

고장 난 삶을 끌고라도, 우리는 결국 ‘나의 길’을 함께간다

by 느리게걷는여자

영화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 내 삶의 결이 건드려질 때가 있다.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은 그런 영화다. 평범한 가족이지만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삐걱대며 기울어 있고, 그 기울기를 서로 붙잡으려다 더 어색해지는 사람들.

그런데 그 어색함이 이상하게 삶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이 영화는 오래 남는다.


1. 인물해석 — ‘부서져 있지만, 서로를 놓지 않는 사람들’


아버지 리처드 — ‘성공의 9단계’를 외치는 누구보다 불안한 인간

리처드는 무명작가로 자기계발서 《성공의 9단계》를 들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인물이다.

그가 출판계약에 실패하면서 들은 말은 잔인하다.

“책은 좋아요. 그런데… 작가 본인이 성공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이 한 문장은 리처드를 무너뜨린다. 그는 평생 “성공=존재 가치”라는 공식을 믿어 왔는데, 정작 그 공식이 가장 잔인하게 자신에게 적용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진짜로 성장하는 순간은 성공 공식이 무너질 때다. 딸 올리브의 무대에서 아무도 박수치지 않을 때 그는 처음으로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기준’을 선택한다.


엄마 셰릴 — 가족을 붙드는 힘이지만,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

셰릴은 늘 중간에서 조율한다. 남편의 자기계발 강박과, 삼촌의 우울, 아들의 침묵, 사춘기 소년같은 시아버지, 딸의 작은 꿈을 모두 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셰릴은 단 한 번도 ‘나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 인물은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가족을 ‘부서지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삼촌 프랭크 — 실패와 상실, 그 부서진 경험을 통해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사람

세계 최고 프루스트(Marcel Proust?) 연구자로 불리던 삼촌은 연인에게 버림받고, 그 연인이 학생과 사랑에 빠지는 걸 목격한다. 자살 시도 후엔 갈 곳도 직업도 없다.

그런 그가 할아버지 심부름으로 사러 간 포르노 잡지 가게에서 옛 연인과 마주치는 장면은 웃기지만 뼈를 때린다.

자신이 연구했고, 가르쳤고, 사랑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체험을 그는 이미 두 번이나 겪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영화 전체에 중요한 균열을 낸다. “완벽한 인생이란 없다”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람이다.


할아버지 에드윈 — 마약, 욕설, 그리고 진짜 온기

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마약하다 쫓겨난 인물이다. 제멋대로 같지만, 사실은 가족 중 가장 솔직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아들이 출판사 계약실패로 힘들어 할 때 따뜻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어른이다.

너 자신을 남들이 뭐라 하든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의 죽음은 어처구니없지만(가족 몰래 마약을 하다가 결국 버스여행 중 세상을 떠난다), 그 이후 가족이 벌이는 상황은 더더욱 기묘하다. 그의 죽음은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블랙코미디의 핵심이다.


가족은 대회 참석을 위해 병원 몰래 시신을 트렁크에 싣고 달리는 기상천외한 상황에 놓이고, 이후 경찰이 트렁크 개봉을 요구하는 순간—할아버지 시신 위에 놓인 포르노 잡지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는 장면은, 이 가족이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버티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준다.


오빠 드웨인 — 니체를 숭배하지만 니체를 오해하는 소년

니체를 숭배하며 ‘말하지 않기’를 실천해온 청소년이다. 제트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였다. 그러나 운전 표지판 때문에 색맹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제트기 조종사의 꿈이 무너지자 그는 가장 약한 모습, 가장 인간적인 울음을 터뜨린다. 그 순간이야말로 그가 진짜 니체를 이해하는 지점이다.

니체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회피하지 않는 사람을 초인이라 불렀으니까.


막내 올리브 — 가장 약한 존재이지만, 이 가족의 중심

올리브는 미인 대회 기준에 어긋나는 아이다. 특별난 외모도, 화려한 춤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이고 순수하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강함보다 순수함과 진심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인물이다.


2. 낡은 노란 버스 — “삐걱거리지만, 함께 살아간다”는 은유

버스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고, 멈추면 모두 내려 밀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이 버스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삶을 상징한다.

삶은 늘 완벽하게 달리지 않는다. 언제든 덜컹거리고, 때로는 멈추고, 다시 움직이려면 누군가가 옆에서 밀어줘야 한다. 이 버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삶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아도, 함께이기에 다시 굴러간다.”


3. 니체의 운명애(Amor Fati) — 실패를 사랑하는 법

영화는 여러 번 니체를 호출한다. 하지만 가장 니체적 순간은 누군가 인용할 때가 아니라, 가족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다. 니체의 철학적 태도는 분명하다.


"나는 어떤 것도 다르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나의 운명애이다.”


니체가 말한 운명애(Amor Fati)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내 삶이 이 모양이라 실망스럽다’가 아니라, ‘이 모양이기 때문에 더욱 내 삶이다’라는 태도다.

이 가족은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지만, 마지막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하게 된다.


특히 딸 올리브의 춤은 니체의 운명애를 실천한 순간이다. 완벽하지 않고, 규정에 맞지 않고,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긍정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가족-실패한 사람들-은 모두 무대에 올라 그녀와 함께 춤춘다. 그 장면 하나로 이 영화는 니체 철학의 핵심,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는 순간이다.


4. 삶은 상실로 재창조 된다.

영화에서 삼촌 프랭크는 꿈의 '상실'로 좌절하고 있는 조카 드웨인에게 자신이 연구했던 '프루스트'의 실패담을 이야기 하며 위로해준다. 삼촌 프랭크가 말하는 프루스트의 실패담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다. 그것은 실패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 태도, 삶의 부조리와 마주하는 용기를 드웨인에게 보여주는 장치다. 조카는 처음으로 침묵을 깨고, 그동안 숨겨왔던 좌절과 두려움을 내뱉는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상실이 삶을 재창조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 영화가 던지는 명대사 중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은 할아버지의 말이다.

“진짜 루저는 시도 조차하지 않는 사람이야.”


이 문장은 역설적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뿐이니까. 그러나 니체의 운명애의 시각에서 보면 그들은 누구보다 ‘나답게 산 사람들’이다.


나답게 산다는 건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결함, 실패, 모자람까지 포함해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삐걱거리는 버스는 한편으로는 서로 부대끼고 밀고 끌며 달리는 가족의 모습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완전하고 상처투성이인 우리 내면의 모습이기도 하다.

- 삐걱거리는 버스를 밀어가며, 시신위에 포르노잡지를 싣고 달리며, 무대 위에서 엉망진창의 춤을 추더라도, 그래도 내 삶을 미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가족이, 그리고 우리가 조금씩 배워 가는 운명애(Amor Fati)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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