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볶음

결혼은 "평생 공부"

by 느리게걷는여자

반찬 때문에 부부싸움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식당에서 남이 차려준 음식을 우아하게 먹는 것이 ‘연애’라면, ‘결혼’은 반찬 걱정을 하며 집밥을 차려먹는 일과 같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혼인이라는 절차를 거쳐 사적인 공간의 ‘생활인’으로 거듭나는 관계가 된다. 로맨스가 현실이 되어가는 신혼 초, 애정과 습관 사이의 삐거덕거림과 당혹감을 대부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나의 경우 그 틈을 처음 발견하게 된 계기는 김치볶음밥을 요리하면서였다. ‘조미료를 넣어야 한다, 넣지 말아야 한다’로 티격태격하다가 감정이 상하고 작은 말다툼을 겪게 된 게 최초의 부부싸움이었다. 김치볶음밥 논쟁 이후, 대거리하기가 귀찮아진 나는 신랑의 기호에 맞춰주기로 결심했다.

신랑은 호불호가 강한 성격이다. 혹자에 의하면 닭띠는 예민하다고 하는데, 신랑은 맛과 향에 특히 민감한 '닭'띠 씨이다. 반면에 나는 우유부단한 성격에 메뚜기, 번데기와 같은 곤충요리를 제외하고는 모든지 잘 먹는 '돼지'띠이다. 그래서인지 까탈스런 닭띠 씨의 식성을 따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부부로 산다는 건, 입을 맞추는 날보다 ‘입맛’을 맞추어야 하는 날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맛은 음식을 먹을 때 입에서 느껴지는 맛에 대한 감각을 의미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나 사물을 ‘입맛에 맞다’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신랑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말할 때면, 꼭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비위에 거슬리기도 했다. 내가 좋아할지라도 신랑이 싫어하는 음식은 점점 밥상에 올리지 않게 되었고, 어느새 우리 집 식탁은 신랑의 취향으로만 채워졌다.

그 와중에 불합격 통보를 여러 번 받은 반찬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가지 볶음'이다. 어느 날인가는 신랑의 입맛에 합격하려고 나름으로 궁리해서 정성스레 가지 볶음을 완성했다. 나름 자신만만하여 밥상에 내놓았는데 또 불합격 판정을 받고야 말았다. 신랑 왈, ‘회사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는데 얇게 썰어 푹 익혀 흐물흐물하게 된 가지 볶음이 너무 맛있어 쓱쓱 비벼먹기 까지 했다. 그러니 다음번에는 더 얇게 썰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새댁이 되어 처음 가지 볶음을 만들 때는 네 등분의 막대 모양으로 썰었지만, ‘더 얇게’를 요청하기에 얇은 막대로 썰게 되었다. 그런데도 ‘더 얇게’를 요구하는 신랑을 위해 나름 머리를 쓴 게 호박전처럼 둥글게 썰기였다. 맞춘다고 맞췄는데 또 퇴짜를 맞으니 오기가 생겼다.


애면글면 얄팍썰기를 하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처음 조리를 할 때, 가지를 굵게 썬 이유는 내가 굵은 가지 볶음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적당한 굵기의 가지를 볶으면 말랑한 부드러움 안에서 수분이 터져 나오는 식감을 나는 좋아해 왔다. 그동안은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우월감으로 닭띠씨의 예민함을 맞춰 주는 게 사랑이자 배려라고 생각해 왔다. 나의 기호를 지우고 신랑의 기호를 따르는 게 옳은 방식일까? 한 쪽의 일방적인 포기가 배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 위에서 '나'를 찾으면서도 공존共存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동그랗게 썰기를 하되, 내가 먹을 가지는 숭덩숭덩 썰기를 하고, 신랑이 먹을 가지는 얄팍썰기를 하는 전략이 떠올랐다. 굵기가 다른 가지를 한 군데 모아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신나게 지지고 볶기를 했다. 같은 접시에 들기름 냄새 솔솔 풍기고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가지를 담아 저녁 밥상에 올려놓았다.

“자기야, 얇은 가지는 자기를 위한 거고, 굵은 가지는 나를 위한 거야.”

마침내 별다른 저항 없이 가지 반찬을 맛있게 먹는 신랑을 보자 나의 입가에도 헤실헤실 꽃이 피었다. 가지볶음을 통해 배운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 조화를 이루나 같아지지는 않음)의 의미, 그리고 결혼은 님과 남사이를 오가는 타인과 인생의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을 공유하며 지지고 볶아 서로의 입맛을 맞춰나가는 '평생 공부'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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