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와 쇼핑벽

당신 마음의 슬픔 나무는 무엇인가요?

by 느리게걷는여자

2016. 09.23. 뒤척이는 새벽

환절기는 지구의 격변기라 했던가. 겨울에서 봄, 여름에서 가을이 되는 환절기가 오면, 나에게도 유독 두드러지는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한 가지는 얼굴 피부가 뒤집어 지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쇼핑벽이 생기는 것이다.

파릇한 소녀도 아니고 서른 살 중반이 되가는 나이에 여드름 때문에 고생을 해야 하는 게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열여덟 살 이래로 늘상 반복되었고 내 의지 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자괴감까지 들진 않는다.

하지만 쇼핑벽에 대해선 한심한 생각이 든다. 쇼핑벽이라 봤자 다음 달 카드 값이 무서워, 막상 사지는 못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부유하며 장바구니(wish-list)만 가득 채우곤 한다. 그렇게 3-4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소비한 시간은 낭비로 느껴져 아깝고, 마음은 헛헛한 채로 남겨진다. 물건을 샀다고 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짓을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환절기와 쇼핑벽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잠을 뒤척이다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 역사를 추적해가니 대략 이렇다. 나는 스무 살 봄 환절기에 부모님의 이혼을 겪었다. 그냥 합의 이혼이 아닌 법정싸움으로 이어진 복잡한 이혼이었다. 그 사건은 내 인생의 대변혁이라 할만 했다. 아빠의 증인으로 난생처음 법정에 출석해야 했고, 나의 과거는 사라졌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부터의 과정을 엄마가 정성스럽게 기록해 주신 앨범이 아빠의 분노로 불태워졌다. 3권이었던 앨범은 독사진 몇 장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빠와는 연변에서 오신 아주머니와의 (허위)결혼식 사진을 찍어야했고, 엄마와는 (진짜)결혼식 사진을 찍어야했다.

다 큰 성년의 자녀가 겪은 일이긴 했지만, 급작스러운 관계의 변화는 우주가 무너져 내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홀로 던져진 느낌.... 위에 나열한 대변혁의 사건들을 견뎌야 할 때마다, 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홀로 옷가게를 전전하며 거리를 쏘다녔다. 옷이 나의 유일한 외피이자, 나의 유일한 보호막처럼 느껴졌던 걸까?

그렇게 혼자 목적지 없는 기차를 탄 기분으로 20대의 암울한 터널을 지나쳐왔다. 옷 구경과 책 읽는 게 그 당시 유일하게 '안식'을 얻는 방법이었던 거 같다.

현재로선, 부모님의 이혼은 나에게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다. 결혼하고 나서 '목적지-집home'이 생긴 후 '삶의 안식'을 다시 찾았고, 남편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를 그리고 아내가 된 나의 모습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환절기가 되면 마음이 허허롭고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상처는 다 아물었지만 그 때 생긴 생채기가 가끔씩 마음을 쿡쿡 쑤시는 거 같다.

나이를 한 두 해 먹어가며 느끼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 가슴속엔 누구나 '슬픔 나무' 한 그루씩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슬픔 나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잘 가꿀 것이다. 그리고 쇼핑벽은 더 이상 안식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니, 고쳐보도록 해야겠다. 쇼핑벽은 습관적 행동의 결과이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허 할 때면,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하거나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습관을 들여야겠다.

슬픔 나무/자작시

사람 따라 길을 걸었다.
슬픔 나무 한 그루씩 마주쳤다.

휘영청 줄기를 뻗은 나무
그루터기만 남아 봄볕을 쬐고 있는 나무
덩굴에 걸려 떨고 있던 나무

내가 서 있던 그길
애처로운 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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