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나와 아내의 생일이다. 닷새차다. 생일 주간이다.
7년 전인 2016년 우리 부부는 생일을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꿨다. 음력 생일은 챙기기도 어렵고 일일이 알려주기도 번거로웠다. 카카오선물하기가 대중화 되면서 그냥 양력으로 생일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40여 년 지냈던 음력 생일을 버리고 새롭게 양력 생일을 채택한 것이다. 공개된 생년월일에 생일을 지내니 오해도 없고 편하기 그지없었다. 음력 생일을 쇤다고 말할 때 '늙은 옛사람' 같은 괜한 부끄러움도 사라졌다.
나의 경우 음양력 생일 변경 작업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아내는 좀 복잡했다. 장인어르신께서 딸의 음력 생일을 기억하기 쉽게 한다고 태어난 날의 음력 날짜를 출생일로 동사무소에 등기한 것이다. 딸이 장성한 미래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음력 대신 양력으로 생일을 쇨 것이라는 걸 그 당시에 예측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갓 태어난 예쁜 딸의 음력 생일을 평생 까먹지 않고 기억하기 쉽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음력 생일도, 양력 생일도 채택하기 힘든 난처함에 빠졌다. 양력 생일을 쇠려고 하니까 태어난 날의 양력을 기억하기 힘들었다. 공개되어 있는 음력 출생일에 맞출려고 하니 이 또한 음력 날짜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아내는 출생일에 기록된 음력 날짜를 양력 생일인 셈 치고 양력 생일을 쇠기로 합의했다. 좀 변칙적이긴 했다. 이로 인해 원래 아내와 나의 생일은 45일간의 간격이 있었는데 7년 전부터는 5일 간격으로 줄어들었다.
어릴 적 음력과 양력은 자주 헷갈렸다. 달력에 있는 큰 숫자가 양력이고 아래 조그마한 숫자가 음력인 건 진작에 알았다. 학창 시절 누군가한테서 음력은 달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이고 양력은 해를 기준으로 만들었다는 걸 듣고 그런가 보다 여겼다. 부모님은 농사에 관한 대화를 할 때는 24 절기를 주로 사용해서 양력, 음력에 절기까지 나오니 더 헷갈렸다. 게다가 어릴 적에는 서기와 함께 단기도 간혹 혼용했다. 88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이 단기 4321년이라고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10년 전쯤 무역일을 하다가 기초 영어조차 안 되어서 필리핀에 단기 어학연수를 떠난 적이 있다. 어느 날 함께 수업받던 중국인 친구와 필리펀 강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생일이 대화의 주제였는데 한국과 중국에는 양력 생일과 더불어 음력 생일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필리핀 강사가 음력이 뭔지 물어봤다. 나는 어릴 적 주워들은 지식을 바탕으로 초급 수준의 영어로 달력의 기준이 'sun'과 'moon'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중국인 친구는 'sun'은 맞는데 음력이 'moon'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녀 역시 영어 실력이 나랑 비슷해서 손짓 발짓으로 음력에 대해 설명하는데 당시 대략 이해하기로는 음력은 달과 해 2가지를 모두 적용한 'scientific'하고 'reasonable'해서 매우 'excellent'한 달력이라는 뜻이었다. 서구 우월주의에 젖어 있던 나는 당시 양력이 훨씬 더 과학적이고 음력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달력으로 여겼었다. 이날 나와 중국인 친구 모두 어휘력이 달려서 제대로 된 논쟁은 애당초 불가능했고 짧은 영단어를 이어 붙여가며 소리만 고래고래 질러가며 싸웠다. 필리핀 강사는 이런 대화도 영어 실력 향상에는 도움이 된다고 여겼는지 즐기면서 논쟁을 북돋았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우연히 음력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중국인 친구의 의견이 맞았다. 지금 우리가 일컫는 음력 달력은 달을 기준으로 한 '순음력'에 태양력을 접목시킨 '태음태양력'이었다. 달만 가지고 만든 순수 음력은 지금은 이슬람의 종교의식용으로 일부 남아 있다고 한다. 원래 음력은 1년이 354일에 불과해 윤달을 끼워넣어 태양력과 비슷하게 365일로 보정하지 않으면 달력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윤달로 인해 양력과 음력간 날짜 차이가 좁아졌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는데, 19년에 한 번은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이 일치한다. 그래서 피치 못하게 본인이 태어나지 않은 날을 생일로 쇠고 있는 아내도 19년에 한 번은 제 날짜에 생일밥을 챙겨 먹을 수 있다. 아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2번은 제 날짜에 맞춰서 생일밥을 먹었을 것이며, 앞으로 2번에서 3번 정도 더 출생일에 맞춰서 생일을 쇨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가장 정확하고 대중적인 양력 달력인 그레고리력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보정이 필요하다. 기원전부터 사용했던 양력인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25일로 계산해서 만들었다. 당시 천문학 기술을 총 동원해서 나름 정확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웠듯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는 약 365.242196 일이 걸린다. 지구가 '자아'나 '인식'이 있다면 계산하기 편하게 365일이나 366일처럼 정수 단위로 태양을 돌아달라고 부탁하겠지만 지구는 무심하다. 그 어떤 의도도 없이 물리 법칙에 의해 태양을 돈다. 인간이 이를 숫자를 활용해서 달력으로 정의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그레고리력도 약 3천 년에 하루씩 차이가 난다. 이를 맞추는 건 3천 년 후 미래 인간에게 맡기자.
어릴 적에는 마냥 설레고 기대되었던 생일이 언제가부터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탄생한 날의 축복보다는 선물을 챙기고 인사치레를 하고 먹지 않을 케이크 위에 초를 올려두고 쑥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날로 변색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생일이 즐거움보다 의무가 되었다는 점이다. 제사가 조상을 기리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여성들의 가중한 육체노동으로 인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올해 생일부터는 생일을 다른 방식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선물 대신 경험.
그동안 내가 가족과 지인들에게 준 수많은 선물들, 그리고 내가 받은 수많은 선물들. 그 물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난에 찌들여 자주 끼니를 굵었던 유년 시절에 생일은 배부르게 밥을 먹는 특별한 날이었다. 미역국에 조기 한마리를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변변찮게 입을 옷 한 벌 없던 초등학교 시절에 생일은 새 옷을 한벌 장만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파란색 '베신'(운동화)을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알바로 겨우겨우 생활을 유지했던 대학 시절에 생일은 친구들과 원 없이 술을 마셨던 날이었다.
하지만 물질은 한계가 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한계가 없지만 그 만족감은 한계가 있다. 똑같은 공깃밥 한 그릇이더라도 허기질 때는 꿀맛이지만 배가 부를 때는 먹는 거 자체가 고역이다. 내 뇌는 여전히 탐욕스럽게 물질을 좇고 있지만 가만히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물질이 준 포만감은 지극히 작다. 그리고 짧고 쉽게 잊힌다. 틱톡의 숏폼 영상처럼 계속 보고 싶지만 다 보고 났을 때 충만함 보다는 허망함이 더 많이 든다.
물질보다 경험이 더 큰 가치를 준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올해 우리 부부의 생일 주간에는 사진을 찍기로 했다. 스냅 작가를 모셔서 우리 부부와 개(10살이 넘어서 강아지라고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가 사는 소소한 일상을 2시간 정도 카메라에 담아보고자 한다. 살아가면서 1시간 넘게 포토그래퍼에게 나의 외모를 맡기는 건 결혼식 이후 처음일 거다. 스튜디오에서 연출된 이미지보다는 우리 부부가 평소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하나 둘 셋 소리에 맞춰 짓는 가식적인 미소보다는 자연스럽고 솔직한 표정을 담고 싶다. 주말이면 늘 입는 허름한 추리닝을 입고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주름살을 아무런 보정 없이 그대로 카메라 앵글에 담고자 한다. 스냅사진 경험을 생일 선물로 대신하려고 한다.
앞으로 10번 정도는 생일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자 한다. '다음에'라는 꼬리표를 달고 기억의 서랍장 저 편에 들어가 있던 것들을 나이를 한 살씩 먹을 때 마다 하나씩 꺼내서 실행해보려고 한다.
'언젠가 기회 되면', '시간이 있을 때', '여윳돈이 생기면' 등의 꼬리표를 달고 보류된 계획들.
나도 이제 살만큼 살아서 잘 안다. 기회나 시간이나 여유는 제 스스로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냥 시간에 묻혀 지나간다. 일상의 연속이고 평범함의 행렬이다. 물론 평범한 건 소중하다. 그래서 더욱 새로운 이벤트가 필요하다. 이벤트는 평범함과 차이를 만들어서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는 부차적인 효과도 있다.
생각해보니 나는 내 생일 때 사용했던 동사가 한 줌밖에 안 되었다. 주로 사용했던 동사는 '주다'와 '받다'이다. '먹다'와 '마시다'도 종종 사용했다. '맛있다', '예쁘다', '비싸다' 이런 동사도 생일 때 간혹 등장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다. 이번주를 비롯해 앞으로 우리 부부의 생일 주간에는 과거에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동사를 쓰는 날로 만들려고 한다.
올해는 '찍다'의 피동사인 '찍히다'가 메인 콘셉트다. 이를 위해 우리 부부는 촬영 장소로 아파트 내 오름공원이 좋을지, 운무가 자주 끼는 분수대 앞이 좋을지, 조명이 은은한 단골 술집이 좋을지, 산책로가 예쁜 양재천이 좋을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시간 동안 어떻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솔직하게 '찍힐' 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물건은 형용사로 묘사되고 경험은 동사로 표현된다. '배고프게' 가난했던 어릴 적에는 '배부르게' 먹는 생일이 필요했다. 삶에 결핍된 형용사를 생일이라는 이름으로 채웠다. 이제 그 형용사의 시기를 넘어 더 풍성한 동사로 채워지는 생일을 기대한다.
'날다', '타다', '달리다', '가다', ' '만들다', '추다', '나누다', '만나다', '찾다', '보다', '도전하다' 등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동사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동사 '하다'(do). 생일이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 아니라 그동안 해보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걸 '하는' 날로 삼고자 한다.
제사와 생일이 다른 건 하나다. 제사는 죽은 이의 과거를 추억하는 날이다. 생일은 과거와 더불어 현재와 미래까지 꿈꾸는 날이다. 생일날에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물질이 너무 많이 끼어들면 생일의 본질이 퇴색된다. 20년 전 내 생일 때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올해 생일에 나는 어떠한지, 그래고 20년 후 내 생일에는 어떤 모습일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차례차례, 추억하고, 인지하고, 꿈꿔보는 날이 진짜 생일이다. 20년 후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내가 선물을 멈추고 경험 위주로 생일을 보내기로 한 걸 어떻게 평가할까.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큰 이야기다. 경험은 이야기를 만든다. 해마다 색다르게 기획한 생일 경험 덕분에 내 삶의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졌다고 20년 후 미래의 내가 평가해 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궁금해서라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 글은 올해 아내의 생일 선물은 또 뭘로 해야 할지 스트레스를 받다가 궁하면 통한다고 나온 아이디어임을 솔직하게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