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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 Feb 11. 2023

시고르댄스라이프

컨트리사이드 스토리

목요일, 내 가방은 평소보다 더 무겁다. 꽤 크기가 큰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기기 때문. 전날 충전해놓은 스피커를 가방에 넣고 내가 향하는 곳은 나의 일터가 아니라 문화예술회관. 아직 차가운 기운이 가득한 지하 연습실 문을 열고 히터를 돌린다.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좋아, 내 독무대다.


나는 목요일 한정 아마추어 댄스 강사다. 목요일마다 춤을 추고, 사람들과 나눈다. 

나는 아무런 자격증도, 자격도 없다. 그러나 나는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춤을 사랑한다. 


나의 춤 루틴은 1시간이다. 먼저 고개와 어깨, 상체를 푸는 동작부터 시작한다. 노래는 아델의 easy on me 커버곡. 부드럽지만 강렬한 연주. 노래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만큼의 서사가 가득한 멜로디. 처음엔 조금씩 몸을 풀다가 점점 동작을 크게 하는게 내 방식. 그리고 앉아서 하는 스트레칭으로, 아이솔레이션으로, 밸런스 운동으로, 복근운동으로 넘어간다. 복근 운동까지 하고 나면 다들 얼굴이 벌개져 있다. 적당히 땀이 나고 혈액순환으로 기분 좋은 아드레날린이 나온다. 몸이 충분히 풀렸을 때 짬짬이 만들어간 안무를 나눈다. 이번에 하는 노래는 andra day의 rise up 리믹스 버전. 가사에 맞춰서 안무를 처음 짜본 노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동작으로 몸을 구부리고 늘어트리고, 뒤집고 늘린다. 이대로 우리는 즐겁다(고 믿는다. 적어도 나는 아주 즐겁다 :). 


"저는 춤추는 걸 좋아해요."

작년 말. 무슨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춤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말하면서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공생도, 어디서 공연을 해본 것도 아니고 아트센터와 스포츠센터만 열심히 다닌 것뿐이었으니. 요새 무슨 드라마가 재밌더라고요, 요새 무슨 음악이 좋더라고요, 더 가까운 사람에게는 무슨 책이 좋더라-까지는 말하겠지만... 누가 춤 한번 춰보라고 할 무례한 사람도 없는데, 춤추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이상하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그건 그냥 한번도 말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뭔가 아주 잘하지 못하지만 좋아하는 걸, 그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어렵다는 걸.


"나는 춤추는 걸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신기했다. 한번 말하기 시작하자 다음부터는 아주 쉬웠다. 그때부터 줄곧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얼마나 많이 말했는지... 스스로 우스울 지경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였다. 나까지 포함해서 8명 정도. 이 시골의 유휴공간을 찾아 떠돌다가 문화예술회관 지하연습실까지 빌렸다. 히터도 나오고 공기청정기도 있다.


"저는 춤추는 걸 좋아해요."로 다시 돌아가자면, 그때 내 앞에서! 

"어머, 저도인데. 같이 댄스 동아리라도 하실래요?"

우리가게의 svvvvip이신 수수님이 반색을 하며 말씀해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춤이 얼마나 즐거운 운동인지, 삶의 활력인지 이야기를 나눴고... 어쩌면 춤에 목말라있는 시골피플이 더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뭔가를 도모할 수 있겠다!


"원, 투, 쓰리, 업!

원, 투, 쓰리, 다운!"

"엉덩이와 허리 수평으로 들고 그대로 다운- 발목 잡고. 손 앞으로!"


그렇지만 내가 선생님이 될 줄은 몰랐다. ^^

인구가 2만5천이 겨우 되는 이 시골에서 댄스 선생님 구하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마냥 어려운 것. 그냥... 그냥 내가 해버리게 되었다. 그만큼 나는 춤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고, 땀을 흘리고, 동작을 리듬과 멜로디에 맞춰 그려내보는 일은 어찌나 매력적인지. 사람을 온전히 다른 차원의 우주로 끌어올리는지, 나는 이것이 마법이 아닌가 싶었다. 춤을 추면서 이성과는 다른 온전한 감정과 감각의 차원에서 잠시 살아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는 춤추는 걸 좋아해요.

그때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시골에서 춤을 출 수 있었을까?

가끔 그 순간이 생각난다. 꼭꼭 넣어뒀던 말을 별 거 아니듯 툭 뱉었던 그때. 



춤추는 사진은 없고... 주로 이런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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