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은 한없이 과거를 돌아보아도 되는, 어떤 의무감으로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날이다.
나는 1년 전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나, 뭐가 달라졌나. 나는 무엇을 했나.
퇴사를 하고 꼬박 1년이 지나면 많은 게 변해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다.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집의, 같은 노트북 앞에 앉아, 별 소득도 없이 똑같은 캐모마일 차를 마시고 있으니.
그래도 나는 1년 동안 꽤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1년 전에는 빨리 성공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휩싸여있었다. 평범하게 사는 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퇴사하고 나면 내가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 될 줄만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당연히 그렇지가 않았고, 나는 1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이 흔들렸다. 기회로 보이는 것들을 포착하려 부단히 애쓰고, 성공으로 향하는 최단거리를 고민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선택이 틀렸을까 걱정하느라 꽤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내가 정말 나약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앞선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후들거리는 다리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고, 선택에 책임을 질 용기도 없는 사람.
약해빠진 사람이 마음만 조급하니, 무슨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었을까? 에세이는 투고도 못했고, 소설 하나도 완성해내지 못했고, 공인중개사도 못 땄다.
1년 안에 여러 가지를 다 해내려고 했던 것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과신이었다. 잘나고 싶은 욕심은 이만 내려두고, 겸손하게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올해의 내 소득이다.
이렇게 1년을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려보니, 나의 모자람만은 명확히 알겠다. 그리고, 그래서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인생이란 건 길이 아닌 것 같다. 방향도 속도도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내게 인생은 그냥 파도타기. 밀려오는 파도가 잔잔하기도 해일처럼 크기도 하고, 이리도 쳤다, 저리도 쳤다 해서 내가 미처 어찌할 수 없는 그런 파도를 타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코어힘을 좀 길러서 즐겁게 서핑이나 하는 일뿐이다.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파도를 헤쳐나가려고 몸부림치거나, 잔잔해진 바다에 재미없다고 투정 부리지 않고, 때로 파도 속에 휩쓸려 짠 물을 먹어가면서도 깔깔 웃으면서...
2024년의 나는 파도 앞에 조금 더 겸손해지길 바라며, 나를 된통 후드려 패준 2023년에 감사의 안녕을 고한다.
Good by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