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을 찾아서
인도는 경제관념을 180도 바꿔주는 마법의 도시이다.
100루피, 2017년 기준 환율 1700원
1700원이라는 돈을 더 아끼기 위해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버스 대신 툭툭을 탄다.
끝이 아니다. 툭툭대신 인력 자전거를 타며
인력 자전거를 타는 대신 두 발에 의지한다.
이곳에서 현지인들의 삶은 치열하다.
단 몇백 원을 더 받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으며,
옆에서 웃으며 대화하는 친구는 한순간에 적이 된다.
그런 모습은 나를 더욱 구두쇠로 만들게 하며, 종이 쪼가리의 가치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 오랜만에 거금을 썼다.
처음으로 도시 간의 비행기를 탔다. 몸이 너무 아파 육로로 이동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짧은 1시간 20분 비행을 하면서, 구매한 좌석은 가방을 위해 양보했으며
30분 동안 죽어가는 변기와 대화하며 동행했다.
아무튼 부산행 고속버스 같은 프로펠러 비행기였지만, 늘 고생길을 자처하던 나에게는 자린고비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흔들거리는 비행기가 착륙하고, 재빨리 배낭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왔다.
내가 알던 공항 앞의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흩날리는 모래, 끝이 보이지 않는 사구 그리고 10명 정도의 툭툭 기사님들이 내 시야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약한 숙소에서 기사님을 공항으로 보내준 탓에 편하게 배낭을 싣고 낡은 차체에 몸을 실었다.
흩날리는 모래바람이 계속해서 얼굴을 괴롭혔다.
뉴델리 시장에서 샀던 싸구려 레이반 짝퉁 선글라스를 꺼내 모래들로부터 눈을 보호했다.
30분쯤 달렸을까,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허허벌판에서 엘도라도와 흡사한 모습을 한 도시가
흐릿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이집트 카이로와 모로코 메르주가 재질이 느껴지는 이 도시는 생각보다 깔끔했으며,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인도의 모습이 아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다음날 사막으로 떠나기 위해 진한 흙냄새로 뒤덮인 시장에 방문하여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했다.
저녁 11시, 전기가 모두 나가고 여섯 개의 가로등만 켜져 있는 도시를 바라봤다.
따뜻한 내 집에서부터 출입국심사를 거쳐 3개의 도시에 발자취를 남기며 현재 이곳에서 멍 때리는 순간까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새벽의 낯선 향은 더욱 김치 생각나게 만들었다.
날이 밝고 원숭이들의 탭댄스 소리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사막으로 떠나기 위해 낡은 지프차에 가지 각국의 사람들과 함께 몸을 실었다.
3시간쯤 갔을까, 운전자가 볼일을 보기 위해 낡은 오두막집 앞에 차를 세웠다.
누가 내 속마음을 읽었을까, 잠시 차에서 내려 오두막집으로 위장한 모순적인 리큐어 숍에서 올드 몽크 럼주를 구입할 수 있었고, 다시 차에 들어와 이질적인 음악을 들으며 1960년대에 있을 법한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사구 앞에 도착하니 낙타들과 몰이꾼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지정된 낙타 앞으로 가서 파리로 뒤덮인 콧등을 어루만지면서 인사를 나눴다.
자이살메르 사구의 낙타들은 하나같이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눈망울에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항상 눈물이 고여있었으며 슬픈 한으로 가득 차 보였다.
한 시간쯤 낙타를 타며 사막을 가로지르면서 점점 사타구니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캠프에 도착한 이후 텐트를 치고 장작에 불을 붙이는 몰이꾼들 옆에 앉아 말을 붙였다.
나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편이다.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고 틀림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지만, 21세기 아직도 남아있는 이들의 카스트제도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컸다.
노력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계급을 통해 급을 나누는 시스템에 불만을 품고 있던 나는 그들의 편향적인 국가주의와 소심하고 위축된 목표를 듣고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찾아왔다.
몰이꾼 중 한 명은 크리켓을 엄청 좋아했다.
그는 난생처음 보는 행복한 표정으로 끊임없이 크리켓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옆에 있던 굵은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환생한 듯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잠시나마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우리에게 해줄 요리를 위해 국자를 집었을 때 서서히 사라지는 그의 미소는 화려한 꿈과 동시에 창백한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낙타의 눈을 통해 슬픔과 분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이꾼들이 만들어준 밥과 카레를 먹고 아침에 끌고 온 닭들을 그 자리에서 도축하여 배를 채웠다.
인터넷도 안 터지며 불빛 하나 없는 사막의 밤은 차가웠다.
그리고 몰이꾼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며 차가운 밤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해가 뜨고 생수로 세수만 하고 다시 낙타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에 뛰어다니며 행복해하는 아이들과 시장의 상인들은 기쁘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들의 표정은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인간의 표정보다 밝아 보였다.
어쩌면 자유와 모순적인 연민을 갖고 있는 내가 오히려 더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오랜만에 면도를 하고 배낭을 챙겨 바로 뛰쳐나왔다.
행복의 기준에 대해 고뇌하면서
먹다 남은 2장의 난과 초콜릿 두 개를 주머니에 넣고,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낡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문도 없고 흔들거리는 바퀴 달린 닭장 속에서 10시간 동안 배낭을 끌어안으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