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임스 Oct 15. 2019

방 잡아주세요 대표님

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방 잡아주세요 대표님


직원이 방을 잡아달라니 어떠한 상황인지 궁금할 것이다. 창업 초기부터 사업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는 시기까지 해야 할 일은 항상 많다. 대표는 항상 그다음 단계로 넘어서기만 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안정적일 것이라고 예상, 아니 기대한다. 하지만 창업 초기에 첫 매출을 달성하면 첫 외부 투자를 받아야 하고, 첫 투자를 받으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야 하고,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 인력과 매출 등 조직의 사이즈를 키워야 하고, 조직이 성장하면 우수한 경력의 인재가 필요하고, 인재를 채용하면 기존 직원들의 복지와 만족도를 살펴야 하고, 동시에 조직과 업무의 프로세스를 확립하여 대표 본인이 없어도 운영 및 성장하는 기업을 꿈꾸고, 게다가 상장이나 매각 등의 엑싯(exit)도 고민해야 한다. 


나에게 엔젤투자를 하셨던 선배 대표님과 대화가 기억난다. 대표님은 창업 후 경리직원 1명과 두 명이서 제품 상하차까지 직접 하면서 20년 동안 회사를 성장시켜서 코스닥 상장까지 시킨 나에게는 마냥 부럽기만 한 엄청난 능력자셨다. 하지만 대표님과의 식사자리에서, 아직도 회사를 다음 단계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중국 진출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 것을 봤다. 이를 보면서, 도대체 창업기업의 대표이사에게 안정적인 시기란 언제일지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든 창업 초기 대표들과 나도 그랬듯이, 창업 초기가 무조건 제일 일이 많고 가장 바쁘다고 생각한다. 당시 창업 후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난 초 여름이었는데, 빠르게 조직이 늘어나서 10명이 다 되는 인원이 사직동의 8평 남짓한 아주 작은 사무실에서 숨 막히게 일하고 있었다. 내가 만들었던 데모 형태의 프로토타입 제품을 다시 기획하여, 제대로 된 첫 제품 출시를 3개월 후로 정하고 치열하게 달려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3개월은 우리 혼자서 생각한 말도 안되는 개발 목표이었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QA(Quality Assurance, 제품 개발을 완료한 후 테스트와 검수를 통해 출시 제품의 문제가 없게 만드는 개발단계의 최종 작업) 기간도 포함하지 않았기에 아마도 실제로는 4개월 이상 걸렸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당시에 스타트업에게는 큰 행사이자 전시회가 2달 후에 열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코엑스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행사였고, 중앙 무대에 나가서 발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지금은 이와 같은 행사가 다수 있지만, 그 당시 국내에는 1~2개밖에 없었고 일 년에 한 번밖에 열리지 않는 소중한 기회였다. 너무 늦게 발견한 나를 원망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나는 직접적인 개발 일정과 관련이 있는 개발 팀장과 디자인 팀장을 불러서 논의를 하자고 하였다. 10명도 안되지만 3개의 팀이 있었다(개발, 디자인, 마케팅). 고등학교 친구였던 디자인 팀장, 전 직장 동기이자 형이었던 개발팀장에게 너무 좋은 기회의 전시회가 있는데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혹시 우리 출시 스케줄을 앞당길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창업 시작부터 내가 안식년을 갖기 직전까지도 항상 내 편에서 나를 지지해줬던 디자인 팀장은, 힘들겠지만 해보자는 의견을 줬다. 개발팀장은 스마트한 스타일답게 그럼 한번 출시 때 반드시 포함해야 될 기능 위주로 제품 스펙을 재정의해보고 출시 스케줄을 재산정해보자고 했다. 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두 사람 모두 갑작스러운 나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에 상당히 뿌듯하였다. 하지만 개발팀장이 제품 스펙까지 조정해서 다시 산정해본 스케줄도 전시회 날짜까지는 아무래도 어려웠다. 일주일 이상의 물리적인 시간이 더 필요했다.


결국 참가하지 못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실망하고 있던 나에게 두 팀장은 다가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을 하였다. “대표님 그럼 방 잡아주세요"


1주일의 부족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출퇴근하는 시간을 아껴서 개발할 테니 회사 앞의 허르스름한 모텔 방을 잡아달라는 것이다. 두 팀의 인원은 남자 넷, 여자 둘, 총 여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남자 방, 여자 방 하나씩 잡아서 거기서 머무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말에나 한번 잠시 집에 다녀오는 식으로 개발하면서 제품 출시를 전시회에 맞춰보겠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철없던 어린 대표였기에 미안하면서도 너무 신나서 알겠다고 하고 바로 가서 방을 결제하였다. 그리고 정말 치열하게 두 달의 시간을 보낸 후, 전시회에 무사히 참가하여 3일 내내 무대와 부스에서 목이 쉬도록 우리 제품을 홍보하고 전시에 참가한 기업 중 가장 늦게까지 부스를 운영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것이 기회가 되어 매출과 투자유치를 가져와서 조직이 계속 성장하게 만들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하여 전 구성원이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세상을 잘 모르는 꿈 많은 순진한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 경험이 좋은 사례일까? 예상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은 인간적으로는 좋은 추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좋지 않은 조직 운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직 내에 안 좋은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시작이 되는데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생활 리듬이 깨져서 번아웃을 가져온다. 최근 많이 사용하는 워라밸은 물론, 건강까지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숙소가 코 앞이니 늦게까지 일하고 야식 먹고 다시 일하고 새벽에 들어가서 자는 것이 반복되면 불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크고 작은 질병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러한 숙소 생활을 하지 않는 다른 직원에게는 위화감까지 조성할 수 있다. 


새벽에 들어가니 원래 출근시간보다 늦게 나오게 되면서 조직 구성원이 합의한 최소한의 ‘룰'을 무시하는 예외 사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숙소 생활하는 직원들의 가족, 친구, 지인이 보기에는 아주 끔찍한 회사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직원으로 일했던 대기업에서는 면접 합격 결과가 나오는 날 정장 입은 젠틀한 사람이 어머니에게 꽃다발을 배달하며, 소중한 자녀를 우리 회사에 입사시켜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는 CEO의 편지까지 전달할 정도로 직원의 가족에게도 회사 브랜딩을 한다. 너무 보여주기 식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본인이 속해 있는 집단의 지지와 의견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고, 가족, 친구, 지인은 아주 중요한 소속 집단이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숙소 생활은 최악의 결정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직원들이 성과 중심이 아닌 시간 중심의 업무 스타일에 익숙해진다. 야근이 많아지면 오랜 시간 일하는 직원이 회사에 충성하고 뛰어난 직원이라는 잘못된 공감이 조직 내에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성과 중심의 장점은 KPI 방식과 최근 OKR 기법 등 많은 경영서적과 사례연구에서 다뤘기에 생략하지만, 대표가 나만의 조그마한 왕국을 만들어서 마음대로 왕 노릇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성과 중심으로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시간 중심의 업무 스타일이 조직 내에 익숙해지면 같은 양의 일도 계속 처리시간이 늘어지게 되어 조직의 비효율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파킨슨의 법칙(어떤 일이든 주어진 시간이 소진될 때까지 늘어진다는 법칙)에 나오는 것처럼 필요 없는 고정비(인건비)가 증가하게 된다. 


세 번째로는 향후에 규정을 재정비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내가 겪은 제품 출시 일정 경험은 마치 전시상황처럼 급박했기에 숙소 생활까지 하면서 출근과 퇴근시간을 지키지 않는 방식으로 예외를 둔 것인데, 전시상황은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익숙해진 습관과 분위기 탓에 직원은 야근을 하지 않아도 출근시간을 지키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이 반복되면 대표는 다시 출퇴근 시간을 명확히 하고 규정을 재정비해서 공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기존 분위기에 익숙해진 직원은 우리 대표는 ‘유연함'이 없다면서 불만을 표출하거나 마음속에 담아두게 된다. 즉 조직 불화의 또 다른 시작이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배달의 민족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는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만들었겠는가?


마지막으로는 법적 문제이다. 초기 기업 대부분의 직원은 잦은 야근을 경험하지만, 사실 야근 수당이나 초과 근무 수당을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지급하는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숙소 생활까지 한다면 고용노동법을 완전히 어기게 된다. 당시에는 서로 으샤 으샤 하는 분위기였기에 문제가 없지만, 향후 해당 직원이 불만이 생겼을 때 과거의 이 문제를 갖고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100% 당신에게 불리하게 된다. 나와 친한 지인 대표는 창업 초기 술자리에서 직원 몇 명에게 우리는 가족이니 나중에 회사가 잘되면 성과급을 최소 500% 챙겨줄 것이다라고 언급했는데, 몇 년이 지나고 해당 직원들이 퇴사하고 나서 임금체불로 대표를 신고하여 회사 통장 가압류까지 당한 적이 있다. 



물론 이렇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사례의 장점도 존재하긴 한다. 서로 이렇게 까지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쓰는 경험을 하고 나면 상당한 신뢰관계가 생겨나고 딱딱한 직장보다는 친구 같은 분위기가 된다. 출근하고 싶은 회사란 얼마나 멋진가? 우리 회사의 경우 숙소 생활을 하는 기간 동안 직원의 여자 친구가 주말에 놀러 와서 회사 전 직원에게 간식까지 쏘곤 했다. 그리고 중요한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기에, 많은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존재하긴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만약에 직원이 자발적인 야근을 위해서 특정 기간 동안 숙소를 구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직원 채용할 때, 거리도 염두에 두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통근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린다면 이는 업무 부하 이외에도 번 아웃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면접 당시에는 앉아서 올 수 있어서 괜찮다거나 학교 다닐 때부터 이 정도 시간이 걸려서 익숙하다는 대답을 한다. 하지만 실상 일해보면 다르고 야근이 자주 있다면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지원자가 다른 측면에서 비슷하다면 통근시간이 1시간 미만인 직원을 채용하되, 멀리 살아도 유능한 인재가 존재하니 그들을 위해서는 재택근무 실시를 추천한다. 재택근무로 인해 위에서 언급한 안 좋은 영향의 대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회사에서 그 인원을 배려해주는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어서 더욱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해당 직원에게만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제도를 만들어서 공식적으로 공유하고 누구나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그 제도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조직 내부의 분위기에도 문제가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 해결책은 더 존재할 수 있다. 나의 전시회 사례의 경우, 무리하게 스케줄을 조정하여 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서비스 컨셉을 영상이나 문서로 만들어서 배포했다면 어땠을까? 또는 일부 데모만 보여주면서 베타테스터를 모집하는 형태로 참여도 가능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전시회가 아니라, 고객사에 납품을 하는 문제라도 똑같다. 스케줄을 미루는 방법 말고도 일정 기간의 유지보수나 추가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법으로 협상할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안된다면 차라리 지체상금을 지불하더라도 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면 생각보다 지체상금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추가로 휴가를 제공하는 것도 또 다른 해결책인데, 중요 이벤트 때문에 추가 근무한 시간이나 일수를 산정하여 그만큼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상회하게 연차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이벤트를 잘 수행하고 나서 받는 보상과도 같은 느낌을 주어 직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 수 있다. 나도 전시회 경험 이후에도 사업을 하면서 직원이 야근이나 밤을 새우고 찜질방에서 잠시 자고 회사에 출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들을 위해 추가 연차를 제공하여 중요 이벤트 종료 이후 리프레쉬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정 이벤트에 따른 야근 이슈가 아니라 회사에 합류시키고 싶은 사람 또는 먼 거리에 살고 있는 핵심 인력이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해 달라는 것이라면, 월세 보증금 정도는 회사 차원에서 제공해주는 것도 좋은 복지이자 핵심인력을 확보 및 유지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다. 일종의 좋은 인재 확보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대표마다 좋은 인재와 핵심 인력에 대한 정의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꾸준함을 뜻하는 tenacity를 가장 중요 가치로 본다. 보통 대표는 창업 초기에 두 가지로만 직원을 분류한다. 밤새며 조직의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사람, 그리고 칼퇴근하면서 다소 여유롭게 일하며 회사보다는 본인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이 두 가지 관점으로만 구분한다. 하지만 직원은 둘로 나뉘지 않는다. 그 사이 수많은 형태의 직원이 존재하며, 칼퇴하지만 항상 좋은 성과를 가져오는 아웃라이어 또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성장하는 사람과 후퇴하는 사람, 멈춰있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단기적인 이벤트에만 몰입하고 이탈해버리는 사람보다는 꾸준하게 예상 가능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대표 입장에서 조직을 운영하기에 훨씬 수월하다.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느꼈던 일에 투입되는 시간과 성과의 관계는 아래 그래프와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는 시점 이후, t 만큼의 시간을 더 견뎌서 목표를 달성하는 직원들의 공통점은 모두 tenacity라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니 세상 너무 급하게 보지 말자. 방까지 잡지 않아도 당신과 당신의 조직은 목표 달성할 수 있다. 



이전 04화 그럼 돈을 더 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