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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임스 Oct 13. 2019

그럼 돈을 더 주세요

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그럼 돈을 더 주세요


하루는 개발팀장이 면담 신청을 해서 커피 한잔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 우리 회사는 10억 원가량의 외부 자금까지 투자받았던 시기였다. 모두가 상당히 공들인 신제품 출시 준비를 하던 차라 회사 내의 개발팀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였다. 그리고 출시에 따른 제품 스펙을 계속 수정 및 보완하는 과정이라, 개발팀 소속 직원들의 업무분장이 변경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개발팀의 선임 웹 개발자 직원이 퇴사를 하여서 대체 인력을 채용하게 되었다. 채용하는 신규 직원에게는 다른 일을 맡기고, 퇴사한 직원의 부사수였던 직원이 해당 프로젝트를 이끌게 하기로 하였다. 경력이 있더라도 막 입사한 신규 직원은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 기존 히스토리를 잘 알고 있는 부사수였던 직원이 퇴사 직원(사수)의 일을 맡는 것이 좋다고 개발 팀장과 나는 동의하였고, 그렇게 팀 운영을 변경하기로 확정하였다.

 

이 상황에서 개발팀장이 나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것을 보니 변경하려는 방식을 팀 내 전파한 후 어떤 문제가 생긴 듯하여서 들어봤다. 부사수였던 직원이 “일에 대한 책임이 달라졌으니, 그럼 돈을 더 주세요"라고 했다며, 개발팀장은 나에게 그 직원의 연봉 인상 가능 여부를 상담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작은 창업 기업에는 자주 있는 일이다. 창업기업은 제품부터 업무 프로세스, 복지, 보상과 페널티 등의 사내 규정을 만들어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영진과 직원의 나이차도 얼마 나지 않아서 직원의 요구사항이 상당히 직설적이고 예상치 못한 것이 많다. 이처럼 보통의 큰 조직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많다. 예를 들면, 젊은 직원 사이의 사소한 싸움 및 연애들이다. 그리고 위험하니 자전거로 출퇴근하지 않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에도 굳이 장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다가 사고 나서 산재처리 요청하고, 이후  몇 달간의 휴직 요청까지 하는 직원까지 정말 다양하다. 하여간 개발팀장의 해당 직원 연봉 인상 검토 요청에 내 의견은 불가능하다 였는데,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스타트업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R&R(Role and Responsibilities)”이다. 조직 내부에서 구성원 각자가 맡은 역할과 그에 따른 책임을 말하는데 대게 이렇게 사용한다. “이번 신규 프로젝트에서 진아 님의 R&R은 경쟁사 리서치 및 팀 구성원 전파이고요, 윤지 님의 R&R은 규제나 제약 조건에 관한 부분 체크입니다" R&R은 간단하게 보면 업무분장 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반드시 업무뿐만이 아니라 초기 창업기업 같이 경영지원 조직이 없거나 아주 작은 경우는, 회사 내의 총무가 처리해야 할 일도 전사 R&R을 정해서 함께한다. 예를 들면 A직원은 도서 신청, B직원은 생일 및 이벤트 담당, C 직원은 전사 회의 준비 등이다. 이 R&R은 상당히 중요한데, 모든 직원의 R&R이 합쳐져서 조직이 문제없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어 자체의 뜻처럼 역할과 책임은 직원의 많은 것을 결정한다. R&R이 달라지면 회사 내의 위치와 대우(연봉과 복지)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는 해당 직원의 R&R이 바뀐 것이 아니었다. 일의 종류가 달라졌을 뿐 역할과 책임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 직원은 이전에도 웹 개발자였고, 이후에도 웹 개발자이며 다루는 제품 또한 동일한 것이며, 본인이 어떤 팀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맡거나 책임이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업무와 일에 대한 책임은 리더가 져야 한다. 개발 업무에 관한 책임은 개발팀 소속 팀원들이 아니라 개발팀장에게 있는 것이고, 회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의 책임은 직원이 아니라, 대표에게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직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일의 양이 늘어났을 것이고, 부사수이다가 사수가 되었으니 부담이 되긴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가? 덜 주도적으로 일해도 되는가?”  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성과를 만든 경우를 제외하곤, R&R이 변경되지 않는 한 연봉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고, 그렇게 결론을 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럼 업무가 줄어들면 직원 입장에서는 연봉 삭감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정규직으로 회사의 구성원으로 일하는 형태인데, 프리랜서도 아니고 업무가 늘어났다고 바로 연봉 인상을 요청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는 연봉이나 보상에 대한 욕심보다는, 일에 대한 부담이 그 직원에게 이러한 요구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부분 때문에 기술기반 주력 제품을 보유한 회사 또는 개발 팀이 존재하는 회사에서는, 대표 또는 의사결정자들이 개발자를 채용할 때 석사 이상의 대학원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절대로 대학원 출신이 학부 졸업자에 비해서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경력인 경우 최소 2년에서 5년 이상 대학원에서 학문만 접하다가 온 직원에 비해서 학부 졸업하고 다양한 실무를 경험한 직원이 훨씬 좋은 성과를 만들거나 일을 진행할 때 속도 면에서 뛰어난 경우도 많다. 다만, 대학원 졸업자의 장점은 문제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게 학부 과정에서는 본인의 전공에 관한 배경지식, 스킬, 즉, 문제 해결방법을 잘 수행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석사에서는 전공 세부분야 중 하나를 잡아서 더 공부하면서, 문제 해결방법을 본인이 정의하고 찾는 방법을 연습하고 학습한다. 이후 박사과정까지 진학하게 되면, 문제 자체를 정의하는 법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원 졸업자 직원은 업무를 처리할 때 혼자서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면서 문제 해결을 하는 편이 많다. 앞선 부사수가 갑자기 사수가 된 이번 사례에서, 해당 직원이 문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사람이었다면 조금 덜 부담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항상 수많은 예외에 관한 대처 방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 일 잘하는 직원은 특정 문제에 관해 본인이 생각하는 베스트 솔루션을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라, 해당 문제의 관한 플랜 A, B, C를 찾아와서 대표가 의사결정할 수 있게 한다. 사업은 절대 수학 문제가 아니며, 목표 달성에  이르는 수 없이 많은 경로가 존재한다. 이번 개발팀 운영방식의 변경이나 제품 스펙의 변경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방식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항상 존재한다


다만, 만족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선택지를 만들어서 제시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특히 개발팀장은 중간 관리자, 즉 리더이지 팀원 의견의 전달자가 아니다. 그런데 이 사례에서 개발팀장은 나에게 단순히 면담을 하자면서 팀원의 의견을 전달만 할 뿐 본인이 생각하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다면 중간 관리자가 존재할 필요 없다. 대표가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검토하면서 모든 의사결정을 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문제는 직원의 고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표의 관리적인 능력으로 해결 가능하다. 본래 대표의 시선과 직원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대표의 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갭을 줄일 수 있는 의사소통을 위해 나는 3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첫 번째로는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설령 대표 본인이 최고의 솔루션을 이미 알고 있고 명확한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직원에게 “ 그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와 같은 질문을 던져서 그들과 대표의 갭을 매울 수 있게 해야 한다. 


창의적 문제 해결 사고방식인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에서는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도출하기 전에, 대상에 대한 공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공감을 이끌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하는 데 그중 효과적이면서 가볍게 시도해 볼 만한 것이 “5 Whys”라는 방식이다. 문제에 대한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5번 이상 하면 실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실제로 5번 “왜"를 던져서 숨어 있던 진짜 원인을 찾는 사례가 많이 존재한다.


두 번째로는 처음부터 요구사항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나의 박사과정 지도 교수님은 나에게 항상 논문을 작성할 때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아무도 없는 일반인에게 보여주고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쓰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본인이 갖고 있는 지식에 갇혀서 나만 아는 지식과 단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직원과의 대화 또는 업무 지시도 똑같다. 대표와 직원 관계만이 아니라, 원래 본인과 타인은 경험과 알고 있는 지식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업무 지시할 때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경쟁사 A의 현황을 리서치 해볼래요?” 가 아니라, “우리 경쟁사 A의 재무, 전략, 조직, 매출, 마케팅 등을 포함한 현황을 리서치 해주시고 가능하다면 경쟁사 B와 C도 조사하여 비교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나보다 먼저 직원이 “제휴 부분까지 현황조사에 더 추가하면 어떨까요?”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인간적인 관심이다. 직원과 대표는 절대로 가족 같은 회사가 될 수는 없지만, 신뢰 기반의 중요한 파트너 관계는 될 수 있다. 하지만 직원이 대표에게 먼저 다가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본인에게 보상과 페널티를 줄 수 있는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먼저 다가가고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나는 창업 초기 시절, 어버이날에 핵심 직원의 부모님 용돈까지 챙겨드리곤 했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 직원은 우리 회사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나의 입장을 많이 배려해주는 행동을 했었다. 대표의 시선과 요구를 100% 만족시키는 직원은 물론 존재하지 않지만, 서로의 갭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표가 먼저 다가가는 것이 유일한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사례에서 연봉 인상을 거절하기는 했지만, 단칼에 자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반응하지는 않았다. R&R이 변경되지 않아서 연봉 인상의 명분이 없으니 불가능하지만, 향후 프로젝트가 무사히 종료되면 받을 수 있는 리워드는 아주 명확히 제시하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내년 연봉협상에서는 이번 노고를 반드시 고려해서 제시하겠다고도 하였다. 그 결과 해당 직원은 큰 불만 없이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표는 외부에서는 물론 내부에서도 설득하고 약속하고 제시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대표는 그 길이 외롭고 많이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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