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이 분야는 제가 전문가예요 걱정 마세요
이런 문장을 언급하는 직원은 대게 창업 초기 1~2년이 지난 시점에 많이 만난다. 창업 초기에는 사업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프로세스나 조직 형태가 갖춰져 있지 않다. 또한 경력이 있더라도 대부분 지인이나 지인 추천 등으로 합류한 직원이 대부분이며, 그 외에는 주니어급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창업 초기에는 직원들이 대표 하나만 바라볼 정도로 많은 의지를 하며, 대표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그래서 대표가 회사의 거의 대부분의 일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홀로하게 된다. 그렇게 힘겹게 하나하나 실적을 만들어 가고, 매출이 늘어나고 외부 투자까지 받게 되면 해야 할 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 시점에 대표는 정말 혼돈에 빠지거나 워커홀릭이 되는데, 진짜 일은 손도 못 대고 잡일만 처리하면서도 24시간이 부족한 느낌을 받는다. 나 같은 경우는 창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의 꿈이 있었기에 종종 해외출장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너무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한 번은 저녁에 상해 출장 귀국해서 그다음 날 아침 이스라엘 출장을 가야 하는 스케줄 가운데, 채용 면접을 볼 시간이 없어서 공항에 면접자를 부른 적도 있었다. 이런 삶이 반복되면 대표가 아프거나 어쩔 수 없는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회사가 전부 멈춰버린다. 그래서 대표는 이와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보통은 경력자를 채용하거나 외주업체를 찾는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에 익숙한 창업 초기 대표는 본인의 곁에서 이래라저래라 제어하기 어려운 외주업체보다는 경력자, 즉 전문가를 채용하고자 한다.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모르면서..
신입 또는 주니어급이 아닌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경력자를 채용하면, 대게 그 분야의 경력기간이 대표를 훨씬 뛰어넘게 될 것이다. 면접을 보면서도 해당 분야의 공부를 따로 하고 들어가서 관련 전문지식을 검증하려 한다. 그리고 기존에 해왔던 일을 중심으로 역량에 관해서만 살펴보고, 인성이나 서로 간의 ‘핏'은 거의 무시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초기 기업에 오겠다는 뛰어난 역량의 경력자는 그리 많지 않고, 역량만 충족된다면 인성이나 서로 간의 ‘핏'은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힘들게 면접을 본 후, 연봉협상을 하고 첫 출근을 하게 되면, 이제 기싸움이 시작된다.
대표는 빨리 두려움과 혼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본인이 해왔던 일 중 중요 파트를 분리해서 그 직원에게 할당하고 너무나 급하게 성과를 기대한다. 또한 경력만큼 비싼 연봉은 대표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만들어서 기존에 주니어 직원에게 해왔던 것처럼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시도하게 한다. 그런 상황에서 경력직 직원은 본인보다 나이 어린 혹은 해당 경력기간이 훨씬 부족한 대표의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견디지 못한다. 다만, 나름 오랜 사회 경험과 연봉 때문에 대표자의 말을 말도 안 되게 무시하지는 않고 참아보려 한다. 하지만 직원은 고분고분한 팔로워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오랜 경험을 기반으로 믿고 있는 실력과 자존심 때문이다.
그래서 직원은 대표에게 약간의 반항을 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대표가 10가지 일을 요청하면 7가지 일에 대해서만 답변하고, A라는 일을 지시하면 C라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 다하면서 그 일을 먼저 처리한다. 그 직원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게, 그 사람도 좋은 직장과 괜찮은 경력을 포기하고 나름의 도전을 하면서 창업 초기기업에 합류를 한 것이다. 또한 이직하면서 연봉 인상이 대부분인데, 어쩌면 기존의 연봉과 동일하거나 혹은 줄여가면서 이 초기기업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보상과 기대심리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특히 회사에서의 위치나 대표에게 받는 인정, 그리고 본인의 주장이 회사 방향에 적극 반영되는 것을 바랄 것이다.
그런데 대표가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만 하고 급하게 성과만 바란다면, 직원은 약간의 반항으로 본인의 불편함을 보여주다가, 드디어 한마디 하게 된다.
“대표님 이 분야는 제가 전문가예요. 걱정 마세요"
문장만 놓고 보기에는 상당히 친절하고 믿음직해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의 뜻은, 나는 당신보다 이 일에 있어서 훨씬 많은 경험을 갖고 있으니 참견하지 말고 나에게 좀 맡겨라는 의도인 것이다. 즉, 대표 당신의 뜻에 동의할 수 없고 내 방식대로 하겠다는 것이고, 당신의 방법이 신뢰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보통의 대표들은 화를 내면서 강하게 더 밀고 나가서 직원을 굴복시키게 하려 하거나, 두고 보자 하는 식으로 일단 넘어가는 둘 중의 한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직원을 굴복시키려 점점 더 세게 나간다면, 그 직원을 받아주겠다는 회사가 거의 없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2~3달 내에 퇴사할 것이다. 그리고 두고 보자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도 동일한데, 대표는 계속 두고보다 화병에 걸릴 것 같아서 다시 원래대로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하게 되어 역시 그 직원은 자진 퇴사를 하게 될 것이다. 혹은 대표가 “그럼 내가 한번 보여줄게요. 내 방식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보겠어요"라고 하면서 직접 영업이든 마케팅이든 뭐든 해당 분야의 실적을 그 직원에게 보여주는 식으로도 종종 행동하는데, 이 역시 동일하다. 그 결과를 본 직원은 본인이 이 조직 내에 존재가치가 없는 것을 느끼고 자진 퇴사하게 된다. 어떠한 시도든 결과는 시간, 리소스, 비용의 낭비를 가져오게 한다.
나 역시 두 번의 비슷한 실패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매출과 수익 또는 외부 투자금의 유입으로 당시 조직 규모에 비해 많은 인력 채용을 경력자 중심으로 진행하였고, 그중 일부가 실패로 끝나서 나에게 독이 되었다. 채용의 실패는 조직의 성장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가 B2B 사업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나서 한동안 기업과 기관 영업을 내가 혼자 혹은 나와 주니어급 직원이 함께 진행하였다. 창업 초기기업이 대기업과 바로 계약을 맺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공공기관 실적을 먼저 확보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만나기만 하면 제품의 필요성을 설득시키고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여러 번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담당자 전화번호로 미팅을 요청했지만,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국민신문고(국민이면 누구나 정부에 관한 건의사항을 쓸 수 있는 웹사이트)에 글을 작성했다.
“A시청에서 현재 사용하는 솔루션이 외산 솔루션인데, 우리 솔루션은 기능적으로 비슷하면서도 국산 솔루션이라 유지보수 입장에서 훨씬 좋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에서 경쟁력 있는 국산 솔루션을 검토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구매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분에게 우리 설루션을 소개라도 하고 싶습니다"라고 민원을 넣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하지만, 이것이 인연이 되어 담당자를 만나고 그 윗사람들에게 소개되어 솔루션 구매는 물론 파트너십까지 체결하면서, 이것이 주요 실적이 되어서 다른 공공기관 및 대기업과도 계약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면서 영업을 하여 수익을 내고, 조직을 성장시키면서 이제는 전문가를 영입해서 그다음 단계로의 비상을 꿈꾸게 된 것이다.
영업 경력이 15년 가까이 되고, 나이 차이로는 띠동갑인 직원을 채용하면서 면접도 여러 번 진행하였다. 역량면에서는 찾던 사람에 제일 가까웠기에 3번째 인터뷰에서 연봉 협상을 하면서 회사 사정과 앞으로의 비전, 그리고 지금 감수하는 부분을 향후에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설명하는 자리였다. 군더더기 없이 짧게 요약하여 30분 정도면 충분히 전달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중간중간 그 사람이 말을 끊는 바람에 인터뷰는 2시간가량 진행되었고, 이 사람이 나랑 ‘핏'이 안 맞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우리 조직에게는 이 사람의 역량이 꼭 필요했기에 느낌을 지우고 채용 확정을 하였다. 이 사람이 출근을 하고 나서, 바로 나는 앞에서 언급한 대표들처럼 현재까지 진행했던 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쏟아내듯이 설명하였고 그렇게 우리의 협업은 시작되었다.
직원은 생각보다 너무나 느리게 움직였고, 중요하지 않은 일과 내가 시키지 않은 일에 집중하는 듯하였다. 쓸데없는 영업비용까지 사용하는 것에 참지 못한 나는 자꾸 성과를 재촉하고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하게 되었고 그 직원은 모두가 예상하는 그 말을 나에게 하였다.
“대표님 이 분야는 제가 전문가예요. 걱정 마세요"
아직 순진했던 나는, 왠지 이 말에 안도감을 느꼈고 믿음직스러워서 고맙기까지 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고 나는 이 사람을 굴복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고성이 오가는 말싸움까지 수 없이 하던 어느 날, 그 직원은 나에게 면담을 신청하였다. 본인이 공황장애를 얼마 전부터 겪고 있었고, 정신과 약물 치료까지 병행해서 앞으로 회사생활을 못할 것 같다며 고향에 땅이 있는데 귀촌 형태로 내려가려 한다면서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직원은 다른 회사로 얼마 있다가 이직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한 번의 실패 경험은 앞선 직원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많은 경력을 갖고 있었다. 우리의 5배 이상 되는 조직에서 본부 임원까지 했으며, 화려한 실적이 뒷받침하는 경력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사업 분야의 배경지식과 인사이트를 갖고 있었기에 빠르게 채용은 진행되었다. 마지막 단계로 전 직장 레퍼런스 체크를 하려 했는데, 본인 경력이나 나이도 있는데 이런 체크를 하는 것이 부끄럽다며 본인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건너뛰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사실 요청보다는 통보나 일방적인 요구에 가깝긴 하였다. 이 부분에서 나의 상식에서는 이해가지 않았기에 많이 의아했지만 역시 동의하고 채용 확정 후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에게 최악의 경험을 가져다준 직원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사람은 입사 후 한 달 내에 조직 내 모든 팀 리더들과 분쟁을 일으켰으며, 나의 가이드도 무시하면서 자기 방식대로 조직을 장악하려 하였다. 나는 내 방식이 맞는 것을 증명해서 보여주려 하였고, 결국 보여줬다. 하지만 역시 본인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며 퇴사를 하였다.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이 기억난다. 대표이사의 나이가 자기와 이렇게 차이나는 줄 몰랐다는 들어주는 시간 조차 아까웠던 말..
하지만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이 두 번의 경험은 “나의 실패 경험"이지, 저들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배경과 성향의 사람이 존재한다. 나의 조직에는 나와 ‘핏'이 맞거나 내가 노력하여 ‘핏'을 맞출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단순 업무 역량만 보고 채용하면 이와 같은 일을 반드시 발생한다. 인력은 ‘1+1=2’가 절대 아니다. 서류로 볼 때 S급 직원이 우리 조직과 나에게 D급이 되는 경우도 있고, B급 직원이 S급의 성과를 달성할 때도 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이미 그런 ‘핏'이 맞지 않는 경력직 직원을 채용했다면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된다. 첫 번째는 ‘관계 형성'인데, 관계는 상당히 비선형적인 것이다. 내가 10만큼 노력한다고 절대 10의 결과를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당신이 감당할 수 있다면, ‘내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보살펴주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직원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빠르게 그 직원과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서로에게 피해를 덜 줄 것이며, 정리할 때 가능한 금전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많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훗날을 생각할 때 당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많은 경력을 가진 직원을 채용할 계획 중이라면, 나는 3가지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첫 번째로는 프리랜서나 계약직 형태의 전문가를 찾는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업무의 성과 또는 결과 기반의 관계이기 때문에 소모적인 기싸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관계를 잘 이어간다면 향후에 내부로 영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원자와 ‘핏'에 관해서 명확하지는 않은 상태지만 결국 채용을 하고 싶다면, 수습기간을 두고 성과 기반의 관리를 하여야 한다. 법적으로 대비하여 수습 시간 동안 서로를 탐색하고 나서 정식 고용 계약을 맺는 것이다. 다만, 이 수습기간 동안 급여나 복리후생은 정식 고용 계약과 차별 없이 제공해야 지원자의 불만을 감소시킬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당신의 감을 믿으라는 것이다. 면접에서 ‘핏’이 맞지 않고 당신과 소통이 전혀 될 것 같지 않음에도 지원자의 역량과 경험, 혹은 나이에 설득당하지 않아야 한다. 당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조직에서 하나의 업무만 수행해본 것이 아닌 사업의 시작부터 수익화까지 달성해본 사람이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당신의 감과 인사이트를 믿고 ‘핏’이 맞지 않다면 고용하지 않아야 한다. 퇴사/이직하는 직원들이 종종 세상에는 좋은 회사가 참 많다 라고 하는데, 거꾸로 세상에는 좋은 직원도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