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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임스 Oct 08. 2019

대표님 주말에는 뭐하세요?

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주말에는 뭐하세요?


2010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나는 소프트웨어 전공의 석사를 졸업하고 많은 취준생이 선호하는 국내 통신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자마자 지방발령을 받아서 나름 지방생활의 여유로움을 즐겼지만, 전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통신분야의 업무가 나를 지루하게 하였다. 게다가 해당 지역 에이스였던 사수는 신입인 나를 배려해주는 바람에 맡겨진 일이 거의 없는 무료한 생활을 하였다. 항상 칼퇴근에 주말 근무도 없어서 나는 해당 지역 스쿼시 모임부터 영어회화 동아리, 그리고 전라도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나의 주말을 힐링하면서 즐겼다.


그러다가 서울 양재에 위치한 국내 전자회사의 R&D연구소의 석사 TO가 있는 것을 보고 4번의 계절도 겪어보지 못한 채 지방생활을 정리하며, 서울에서 새로운 회사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복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새로운 회사의 소속 팀장님 역시 나에게 천천히 적응하라면서 별다른 업무를 주지 않았다. 역시 항상 칼퇴근에 주말은 시간이 넘쳐났다. 전 직장에서는 지방 발령 때문에 당시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는 거의 일 년간 주말에나 혹은 격주에 한번 정도 만났었다. 그래서 서울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데이트를 마음껏 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석사를 졸업할 당시 나에게는 지금 생각하면 약간 이상한 바람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나게 야근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커리어 비전에 두 번째 전자회사의 업무 역시 충족되지 못했다. 하지만 또 회사를 일 년 만에 옮길 수는 없기도 하고, 또 이직해봤자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름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소셜 서비스를 만들어 보는 것인데, 당시 마음 맞는 친구 2명(마케터, 디자이너)과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역 투썸에서 만나서 우리만의 딴짓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주말에 항상 우리의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완성된 이후의 사용자들이 우리의 서비스를 쓰는 신나는 상상을 하며, 재밌게 시간을 보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창업 생각은 하나도 없었고, 스타트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실리콘밸리가 무엇이고 투자유치를 왜 하는지도 모르는 평범한 개발자였다. 그냥 주말에 재밌는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창업을 하게 되었고 쏜살같은 10년이 지났고 나름의 성과와 함께 이제 안식년을 갖게 되었다.


창업을 하고선 직원이 한 명 두 명에서 수십 명이 되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관심사도 다양하고 라이프 스타일도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접하면서, 개발자 출신에 기계와 대화하는 것이 더 익숙한 나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대화'란 쉽지 않았다. 식사자리나 티타임 때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 대게 내가 먼저 질문 하지만, 직원들 역시 공통적으로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  "대표님은 주말에 뭐 하세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참 난감하다. 창업 초기에 항상 밤을 새우고 잠잘 시간을 아껴가면서 일했던 내가 어머니한테 식사자리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어머니는 “좋은 대기업 다 때려치우고, 이렇게 잠도 못 자면서 어떻게 일을 하니?”라고 하셨는데,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잠은 죽어서 자면 됩니다"라는 실언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만큼 바쁘고 치열하게 창업 초기를 지내왔는데, 주말에 무엇을 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당연히 답은 “일 합니다" 밖에 없었다.


실제로, 언제 퇴근하냐는 질문에 “나는 24시간 일해. 꿈에서도 일하거든. 가끔 꿈에서 해결책이 나오기도 해"라고 답변한다. 직장 다닐 때는 바쁘지 않았지만, 대학원에서는 밤잠 줄여가며 기업 프로젝트를 했었으니 야근이나 과로의 느낌은 알고 있다. 하지만 창업 후 바쁨은 물리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압박이 크다. 여러 사람의 기대부터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니 계속 달려야만 할 것 같은 기분, 이것들이 나를 쉬지 못하게 한다. 특히 내가 개발자 출신이고 서비스 출시 전 이라지만, 개발은 밤에나 할 수 있었고 낮에는 각종 제휴와 영업, 마케팅과 관련된 일들, 그리고 영수증 붙이는 것 까지 생각보다 정말 다양한 많은 일이 존재했다. 그래서 당연히 주말도 없게 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나처럼 답하면 안 된다. 대표 또는 창업자의 “주말에도 일합니다"는 직원들에게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직원들은 아마도, 대표를 일 밖에 모르는 일벌레, 취미도 없는 사람, 빈틈없는 사람, 나랑 대화하기 싫어서 단답형으로 말을 싹둑 자르는 사람, 농담도 안 하는 사람, 일적인 대화만 원하는 사람, 내가 조금만 일을 덜해도 무섭게 다그칠 것 같은 사람, 휴일을 싫어하는 사람, 휴일에 존재를 이해 못하는 사람, 성과만 바라보는 사람, 놀 줄 모르는 사람 등으로 바라볼 것이다. 즉, 직원을 이해 못하는 대표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100% 직원을 이해하는 대표, 대표를 이해하는 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일 때, 우리는 “가족"같은 분위기는 될 수 없지만, “의리" 정도는 생길 수 있다(가족 같은 회사는 꿈도 꾸지 마라). 그리고 직원과의 “의리"가 생긴다면 대표 즉, 회사 입장에서는 너무나 큰 이점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대표들은 한 달의 인수인계 기간이 있어야만 직원이 퇴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법적으로는 당장 내일부터 퇴사하고 안 나오더라고 문제가 전혀 없다. 그런데 나의 경험으로 보면, 어떤 핵심 인력이 개인 사정으로 인해 퇴사한다고 했을 때, 그 직원과 어느 정도 의리와 신뢰가 있던 사이라면, 나의 추가 요구(조금 만 더 퇴사 시기를 늦춘다던가, 퇴사 이후에도 하루 시간 내서 와서 인수인계를 해준다던가)를 모두 받아들여줬다. 


초기 창업 기업이나 50명 이하 작은 조직에서는 한 명 한 명의 맨파워가 상당히 중요하고, 그 한 명의 공백이 전체에 많은 영향을 준다. 조직이 문제없이 돌아가게 하는 책임은 리더, 즉 대표에게 있다. 직원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순간 서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90년대생 직원에게는 물론,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 시대에는 대표의 조직 내 브랜딩도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하니 설령 주말에 항상 일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제발 “난 주말에도 일합니다"라고 하지 말자.


사업을 30년 가까이하신 어떤 대표님과 식사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을 볼 때면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좋은 일에도 그리 크게 좋아하시지 않고, 나쁜 일에도 많은 충격을 받지 않으시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그 대표님께서는 나에게 “대표이사는 내일 당장 회사가 망할 것 같더라도, 조직 내부에서는 사업이 아주 잘되는 ‘척’을 해야 한다"라고 하셨었다. 나도 사업을 3년 5년 10년 계속하다 보니,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직원들은 대표이사의 한숨에도 영향을 받고 표정 하나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창업자는 99가지의 안될 이유보다는 1가지 가능성을 보고 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니 조직 내부에서 대표자의 브랜딩은 ‘나를 따르라’ 하는 엄청난 카리스마까지는 안되더라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주말에는 뭐하세요?”의 질문에 항상 답변을 준비하자. 약간의 거짓말도 좋다. 다양한 경험과 공감을 이끌 수 있는 화제를 준비해서 식사자리에서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서로 간의 신뢰와 의리까지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 주말에는 뭐하세요? “라고 질문해주는 직원은 기본적으로 ‘된’ 사람들이다. 보통의 직원은 대표의 질문에만 답변하고 자신이 먼저 화제를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리더와 대표들은 식사 미팅에서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다. 누구는 열심히 식사만 할 줄 모르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질문이라도 먼저 할 줄 아는 직원은 관계를 중요시하고,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기본이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고마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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