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왜 창업하셨어요?
내가 직장인이었을 때 조직의 장과의 일대일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했었나 생각해보면, 다소 뻔한 질문들이었다. 취미는 무엇인지, 주말에는 무엇을 하시는지, 아침식사는 하고 다니시는지 등의 어색한 분위기에서 뭐라도 말하고자 지루하기 짝이 없고 정말로 질문받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만약 지금 내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대학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처음부터 임원을 목표로 하셨는지, 재테크는 어떻게 하고 계신지, 제일 미운 부하 직원은 어떤 유형인지, 제일 고마운 직원은 어떠한 사람인지, 오랜 근속기간과 회사의 충성심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등을 물어볼 것 같다.
상대방도 관심 있고 나도 관심 있으며, 그 사람에게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지루하고 어색할 수 있는 시간을 아주 값지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나처럼 직원으로 살아가다가 창업을 하여 대표이사를 경험하고 나면 양쪽의 입장과 생각을 얼추 알게 된다. 같은 상황이라도 대표와 직원의 입장과 생각은 다르다. 나도 경험해봤지만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그래서 만약 지금 다시 직원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정말 S급 직원이자 최고의 이인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그럴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종종 직원과 식사자리 또는 티타임을 일부러 만들어서 분위기를 살피곤 했는데, 그때마다 주말에 뭐하시냐는 질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질문이 바로 “왜 창업하셨어요?”이었다. 직원보다는 지인이나 외부 클라이언트가 항상 묻는 필수 질문이었지만, 직원들도 40% 정도는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나중에는 항상 같은 답변을 하는 것이 지루해서 녹음기라도 틀어놔야 하나라는 생각도 하였지만, 그래도 창업 기업가로서의 삶은 개인적인 삶이 거의 없는 99% 회사를 위한 삶이었기 때문에 이 질문은 나를 신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창업 1년 차, 2년 차, 3년 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시작할 때의 나의 생각을 뒤돌아보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생업"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 뜻은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영어로는 “occupation”으로 “직업"이라는 단어와 특별히 다른 해석이 있지 않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 느끼는 생업은 “일"이긴 한데 생존하기 위하여 돈을 버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나의 자아실현이자 나를 분출하는 수단이며, 나라는 사람을 80% 이상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업의 정의를 찾다가 보니 라이프 성경사전에서 다소 재밌는 정의도 발견하였다. “생활 수단이 되는 직업(창 47:3) 때로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욘 1:8)” 즉, 나의 일은 나의 신분까지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석사 시절 논문이 통과되고 회사의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나의 입사 이후의 일과 삶에 대한 상상의 내래를 펼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학교 리쿠르팅 데이에 방문 온 모 그룹사 상담 자리에서 해당 직원에게 “왜 이 회사를 선택하셨어요? 그리고 어떤 부분이 만족스럽고, 어떤 부분이 불만족스러우세요?”라고 질문하였다. 그때 그 직원은 이런 질문을 하는 취업준비생은 거의 없다면서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에 관해서 물어볼 때와 일과 관련되지만 개인의 삶에 관한 것을 물어볼 때는 정말 상대방의 반응과 이야기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렇게 입사한 직장에서는 급여와 복지, 그리고 뛰어난 동기와 선배 때문에 만족스러운 경험도 하였지만, 나는 전반적으로 조직에 많은 실망을 하고 퇴사를 하였다. 내가 느낀 큰 규모의 조직은 A급 인재로 B급의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연구원들이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빠르게 제품의 프로토타입까지 구현하더라도 본부장의 KPI와 별로 연관이 없다면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프로젝트가 다수였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불필요한 일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생업이 아니었고, 내가 생각하는 나를 표현하는 일이 아니었다. 때론 이 정도의 일을 하고 월급을 그렇게 까지 받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창업을 결심하였고, 뛰어난 사람들과 의미 있는 또는 제대로 된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창업을 시작한 추운 겨울에 나는 친구 어머니 빌라 건물의 남는 반지하 집에서 공동창업자들과 일주일 내내 김치볶음밥을 해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제품 프로토타입을 개발하였다. 대기업 다닐 때와는 삶의 질은 엄청나게 떨어지고 몸도 많이 상했지만, 직장 다닐 때는 느낄 수 없던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면서 나의 조직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3명이서 시작된 회사는 10명, 20명, 30명 점점 커져갔다. 사업은 결과적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다소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대기업에서 느꼈던 A급 인재로 B급의 일을 한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 아니라는 것이 가장 컸다. B급의 일을 하건 C급의 일을 하건 A급의 인재를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인 것이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처럼 좋은 인재를 모으는 것은 정말 어렵고 프로젝트의 성공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준다.
A급 인재를 “모시기" 위해서 나는 다양한 복지는 물론 급여 부분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였다. 대기업 수준까지는 못 맞추더라도 중소기업 평균 연봉보다는 높게 측정하였으며, 일의 성과에 따라서 대기업의 같은 연차 대비 더 많은 급여를 받아갈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 역시 설계하였다. 하지만 창업은 나에게 식도염, 만성두통, 고혈압, 거북목, 어깨통증, 그리고 10kg 이상의 필요 없는 살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만큼 속상한 일이 많았는데, 주요하게 보면 모두 사람과 관련된 것이다.
첫 번째로는 동업자, 공동창업자와의 관계이다. 나 포함 3명이 함께 시작한 사업에서 내가 많은 책임과 자본금을 투자하는 대신 절반에 가까운 지분을 가져갔으며, 나머지를 2명이 나눠 갖는 방식으로 정하였다. 공동창업자 2명 중 한 명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고, 다른 한 명은 나의 대학시절부터 정말 친했던 이성 친구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창업 2년 차 때 이 중 한 명을 내 손으로 직접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사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친구를 내보내지 않으면 조직이 망할 것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동업자들은 나를 대표이자 리더로 인정하지만 자신들의 기억 속에 있는 친구로 대할 때가 종종 있다. 이는 조직의 혼란을 가져오고 리더십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다행히 내가 많은 지분과 책임, 권한을 갖고 있어서 그나마 조금 수월했지만 만약 공동창업자와 N분의 일로 지분을 나눠가지려는 사람은 정말 최악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속상한 경험은 지인의 합류에 관한 것이다. 공개 채용을 통해서 작은 초기 창업 조직이 A급 인재를 모셔오기는 하늘에 별따기와 같다. 그러니 나의 대학, 대학원, 전 직장, 여태까지 몸 담았던 다양한 모임에서 뛰어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내가 했던, 그리고 보통의 창업기업 대표들이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업은 폐업에 수렴한다는 말이 있다. 재벌기업의 특수성이 있는 우리나라는 조금 예외지만, 미국 같은 경우 10년 전 10대 기업과 지금의 10대 기업은 그 리스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처럼 기업은 지속가능을 추구하지만 나쁜 이유로, 또는 좋은 이유로 결국에는 사라진다.
그리고 직원도 마찬가지라 보는 데, 직원은 결국 퇴사에 수렴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요즘은 이직과 퇴사의 시대가 아닌가? 즉, 그렇게 퇴사하게 되면 지인과의 좋았던 관계가 유지될 확률이 상당히 낮다. 보통 직원은 사람이나 조직에 대해서 실망해서 더 나은 곳으로 가려고 퇴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조직에 대한 실망은 대표이사에 대한 실망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뛰어난 사람이었던 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그 전과 같이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사업을 하다 보면 새롭게 알게 되고 얻게 되는 소중한 인연과 사람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때때로 이렇게 인연을 잃기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나의 창업 이유와 실제 현실에 관한 회고는 이만 줄이고,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에게 왜 창업하셨냐고 물어보는 직원은 어떤 사람일까? 단지 내가 직장인 시절에 리더와의 면담 자리에서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 했던 것처럼 아무 질문이나 던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관심사이자 내가 일하는 이유와 관련된 질문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즉, 상당히 배려와 공감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직원일 가능성이 높다. Carl Rogers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공감하는 것은 세상을 자신의 눈에 비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즉,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궁금증을 갖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시작하는 것에서 공감은 발현된다.
대부분의 직원은, 대표는 직원에게 월급 제대로 주고, 복지 좋고, 일적으로 힘들게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러한 질문을 한 직원은 상당히 공감형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공감 능력이 강한 사람은 팀이나 본부 리더의 책임을 맡게 되었을 때도 팀원들을 살피면서 업무를 리딩 하여 좋은 성과를 낸다. 그리고 일과 팀원 또는 외부 고객의 Pain Point(불편한 점)를 잘 찾아낸다. 그러니 이런 질문을 하는 직원이 있다면 먼저 공감과 배려의 성향이 있는지 지켜보고, 맞다면 그 사람에게 중요한 직무나 책임을 맡겨보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창업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사람"이 빠질 수 없다. 사람을 얻는 사업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