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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계 Feb 17. 2022

20대 중간쯤 나이에서,

: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통쾌하다. 이 말이 나는 최승자 시인의 시를 보고 느꼈던 한줄 감상평이다. 통쾌했다. 시원했고 글이 이렇게나 통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에겐 최승자 시인이 그랬다. 세상이 어떤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든지, 그는 삶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의 삶을 향한 태도가 좋았다. 비록 자주 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그의 모습이 나에겐 어떤 희망이었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게으른 시인이라니. 나의 게으름이 정당화 받는 기분이었다. 사실 모두 다 성실해 보이지만, 한 켠의 게으름을 모두 다 가지고 있으니까. 미라클 모닝, 자기계발이 흥행하는 시대에서 나는 오히려 솔직한, 게으르고 게으른 이야기들이 좋았다. 빠른 세상을 유유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이 책을 감히 2022년도에 가장 좋았던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았고 너무나 이르지만. 나는 이 시인이 없었다면


이 시기를 버텨내지 못 했을 것이다.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 처음부터 읽다가 울 뻔했다. 쓸쓸함, 그것은 나만 느끼는 고유의 감정이 아니었다. 자꾸만 넘어지는 나의 인생을 똑바로 일으켜야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 무릎이 까져도 툴툴 털며 나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런 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한 태도를 알려줬다. 싸워가면서 사는 법이라고 말한 그의 글은 어쩌면 막연한 이 인생을 받아들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지고 싸운다.



'산다는 이 일' 이 챕터를 읽으면서도 공감이 갔다. 나는 항상 절망을 선택했다. 바로 나 였다. 나에겐 희망은 불확실했고 절망은 확실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터널이 아니라, 심연으로 가라앉는 시절. 빛이 보이지 않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내겐 삶을 헤처나갈 희망도, 의지도 없었다.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정말 몰라서. 나는 나를 불행하게 했다. 태어남에 대한 축복이 아닌 불행을, 살아가는 과정이 아닌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을. 하지만 나는 포기 하지 않았다. 최승자 시인처럼 말이다. '신명 풀리는 대로 놀 수밖에, 신명 안풀리면 안 놀수밖에' 이 마음으로,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게 어디 한번 더 해보라는 태도로. 그렇게 나는 그 시절을 견뎠다.



사실 나는 아주 어릴적 일찍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최승자 시인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냥 그땐 그랬다. 나의 그 시절은 언급하기조차 어렵고 다시 기억하는 게 괴롭지만, 나 또한 그랬다. 삶에 대해서 비관적이었다. 왜 태어났으며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를 원망했다. 세상은 내가 살아가기에 너무나 힘들었다. 매일이 불안했고 믿음이란 건 없었다. 모든 불행이 나에게만 왔고 이렇게 사는 인생은 전생에 나라를 8번 팔아먹었다는 결론까지 가게 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삶에 대한 비관적인 마음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그냥.



최승자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 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 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의 상처투성이 삶을 통해 상처 없는 삶을 배운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아직까지는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을 잘 이겨낸 나에게도 고맙다. 단단한 불행 속에서 행복을 꿈꿨던 나의 삶에 태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최승자 시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인생을 다시 살아봤다. 아주 깊은 내면 속에 상처 받았던 것들을 꺼내 최승자 시인이 보듬어 주고 간 느낌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우리의 삶에서 불행이 단단해도 싸우면서 살면 행복은 찾아온다고, 우리가 만들면 된다고 말이다. 나 또한 고이 죽어주지 않을거다.




"펭귄이 자기가 먹은 음식 총 칼로리의 70퍼센트를 어디에 쓰느냐 하면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 있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 데 쓴다는 거야. 걷거나 달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쓰러지지 않으려고 몸의 균형을 가누는 데 말이야."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른 존재들에겐 때때로 아주 힘든 일일 수 있다는 것이."

                                                                                                                       ⌜새에 대한 환상⌟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면서 추상적인 독후감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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