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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계 Feb 24. 2022

[취준생일기] #6. 내가 주기자를 싫어하는 이유

: 취준생이 된 윪


최근 나는 중소/중견기업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갔다. 그중에 하고 싶었던 일도 있었고 그냥, 아무것도 안되는 나 자신이 무서워서 한번 넣어본 곳도 있었다. 그래도 위안은 되었다. 자소서가 한번 면접 보러 오라고 하면 그때부터 이제 자소서에 문제는 별로 없다는 뜻이다.

시기라는 게 있는데, 자소서를 한 20번 정도... 꾸준히 넣다 보면 고치고 또 고치면 한번 딱 풀리는 그 순간부터는 계속 면접에 가게 된다.

물론 나는 아직 대기업을 뚫지 못했지만, 중소/중견은 어느 정도 뚫은 것으로... 여하튼 자소서의 암울한 시기가 이제 막을 내리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다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아니 지금 자소서, 면접 이야기하는데 무슨 주기자? 왜? 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나의 면접과 주기자의 상관관계, 주기자가 나에게 영향을 끼친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주기자와 나의 상관관계

주기자는 최근 SNL의 흥행요소 중 하나이다. 몇 달 전에 SNL에서 올라온 주기자의 리포팅 모습을 모두 다 기억할 것이다. 그 캐릭터는 대학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발표 캐릭터 중 하나이며 주기자의 행동을 형식적인 면으로 분석해보면 흔한 발표를 잘하는 법이라는 책을 본 대학생처럼 발표를 하고 있다. 청취자에게 질문하기, 곤란한 질문 피하기 답변 등 우리는 그렇게 사회에서 발표를 어떻게 하면 잘 하게 되는지 학습한다. 발표에 서툰 주기자는 결국 울어버리고 리포팅을 포기한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대학생 시절, 누군가의 발표 모습, 혹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다. 현실에서 볼법한 캐릭터를 정확하게 재현한 주기자는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그 웃음 뒤엔 모두 다 불안감이 있다. 내가 혹시 저러진 않았을까? 아니면 단톡방에 주기자 영상을 올리면서 누구누구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마음껏 웃을 수 없는 개그는 실패했으며 주기자란 캐릭터는 열심히 하는 사람의 모습을 비하한다. 발표가 서투른 사람을 깎아 내린다. 당신은 주기자를 보며 마음껏 웃을 수 있는가? 자기 자신을 검열하지 않고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고 그렇게 호탕하게 웃을 수 있나? 발표를 열심히 하려 하는 열정적인 모습, 마치 발표 잘하는 법 책을 고대로 답습한 그 모습을 혹시 비하하고 있진 않는가?


나는 주기자처럼 발표하는 사람을 보고 한번도 웃긴 적이 없다. 대학생활을 하다보면 모두 다 저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주기자처럼 발표하는 사람을 보면 웃긴가? 아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고 싶으면 벌벌 떨면서도 최대한 답변을 하려는 모습에 대학교 강의실에서 모두 그 발표자를 응원하게 된다. 서툴러도 열심히 하려는 그 모습에 모두 다 공감하고 응원한다. 우리 모두 다 발표가 어려운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대학 팀플 활동 할 때, 최대한 발표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주기자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 발표 캐릭터를 희화화했다. 예전에는 주기자처럼 발표하는 사람을 응원했는데, 이젠 주기자 같지 않냐? 라는 말로 웃음거리가 되었다.

나의 대학시절에 열심히 발표했던 누군가를 희화화했고 어쩌면 나를 희화화했고 열심히 하려는 모습에 대한 희화성은 나를 부정하기도 남의 열정을 비하하기도 쉬워졌다.


면접에서 한 면접관이 나에게 말했다.


" 지원자님, 주기자 같네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주기자와 나와의 상관관계는 이미 성립되어있었다.



주기자가 나에게 영향을 끼친 점

20대, 무엇이든 해야 하는 열정을 보여야 하는 사람, 공식적인 자리에서 최대한 어떠한 부정적인 평가도 받지 않아야 하는 사람.

누군가의 잣대, 시선이 자신의 결과에 영향을 줄까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 사람.

주기자처럼 말하는 인물은 20대의 불안과 힘듦이 모두 다 합쳐져 누군가에게도 미움을 받아선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주기자는 인턴기자로서 정규직이 아닌 내부에서 평가를 엄청나게 신경 쓰는 사람으로 설정했겠지. 그래야지 명확하지 않게 어떠한 편에도 속하면 안 되니까. 무조건 올바른 말을 해 합격이란 단어를 도출해야 하니까.


면접관은 나에게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고 했다. 열정적인 모습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미 그도 안다. 주기자란 캐릭터 속에 비하화 희화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나는 절망했다. 주기자란 캐릭터로 인해 사람들은  열정적인 사람을 희화하기 쉬워졌다. 면접관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모르는 나의 입장에선  극단에 있는 면접관을 만족시켜야 한다. 어중간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주기자라는 캐릭터로 인해 비하되고 있다.


열정적인, 20대, 여자, 말을 신중하게 하려는 사람= 주기자 라는 공식이 생겼다.


주기자란 캐릭터가 나와 상관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캐릭터가 생기고 난 후, 주기자와 비슷한 사람들은 비하당하고 희화화하기 쉬워졌다.


주기자 같다는 말이 나에게 속하는 줄 몰랐지. 내가 주기자를 떠올리게 하는 줄 몰랐지.

앞으로 많은 주기자같은 사람들은 희화화 당할 것이다. 너무나도 쉽게.

개그라는 아래에 누군가를 비하하고 희화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리는 의심해야 한다.

상관없고 영향이 없을 것 같다고? 아니, 개그란 것은 일상 속 우리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언제, 어디서나 주기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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