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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계 May 12. 2020

물속에서 오랫동안 잠수를 했을 때

: 김애란, 『비행운』

 여름이었다. 18년도의 여름은 나에게 지독했다. 혼자 있기 싫어 꾸역꾸역 내려온 인천에서 나는 열대야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자취방에는 에어컨이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인천에는 에어컨이 없었지만,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선택한 나의 여름방학은 물속에 잠수한 사람처럼 수분기를 가득 먹었다. 온 창문을 다 열어도 더워서 미치겠고 숨을 쉬어도 숨을 쉬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구분이 안 되었었다. 지독한 가난은 시중에 파는 중고 에어컨조차 살 수 없었고 우리는 냉동고에 있는 아이스팩을 꺼내어 수건을 돌돌 말아 배 위에 얹어 놓고 열대야를 보내야 했었다. 냉동제품을 택배로 시킬 때 오는 아이스팩 말이다. 지긋지긋한 여름과 사우나에 있는 듯한 기분이 더럽게 싫었다.      


 그때 선풍기 앞에서 읽었던 책이 ‘비행운’이었다. 해가 하늘 위로 높이 솟을 시간엔 집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교보문고에 가 구경을 하다 사 온 책이었다. 그때 당시 인디계에서 나름 뜨고 있는 가수의 제목이기도 했고 그 제목을 짓게 된 이유도 김애란의 비행운에서 따왔다고 해서 더 궁금했었다. 사실 그 가수의 표절이었지만, 아무튼 계기가 그랬다. 고요한 밤에 누군가의 뒤척이는 소리만 존재한 그곳에서 책을 읽었다. 선풍기 바람은 잠시나마 나의 여름을 달래주었으며 책 또한 그랬다. 왜 이리 다들 물속에서 걷는 것일까. 나만 그런 줄 알았던 감정들이 이 책에 담겨 있었다.      


 병만이의 장례식이 아닌 준이 선배의 촬영 현장에 간 주인공으로 시작해서 결국 또 다른 사람을 자신과 똑같은 인생을 살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 다단계 이야기까지. 그 여름의 읽었던 이야기들은 끝이 나면 울고 시작하면 숨 막힐 듯 답답했다. 특히, 물속 골리앗을 읽을 때 굉장히 많이 힘들었다. 진짜 물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한 사람이 어떠한 일을 겪을 때 그것밖에 안 보이는 현상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세상은 돌아가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나에겐 너무나 큰 일. 지금을 살아가는 주인공에겐 눈앞에 두 주먹이 가린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세상과의 고립을 어떻게 느끼는지, 가정이 어떻게 망가지는지에 대한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지금 다시 펼친 책은 온몸이 물에 잠겨 있었던 그 시절을 다시 상기시켜줬다. 겨울철 건조한 이 공기는 이 책을 담지 못했다. 다시 읽어서인지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김애란 작가의 스타일인지 모르겠지만 ‘비행운’은 물속에 오랫동안 잠수를 했을 때, 눈을 뜨고 물 안의 세상을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직접적으로 물이 내 눈에 들어와 아프지만 감을 수 없는 그 상황. 햇빛이 비치는 물속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이끼가 잔뜩 낀 바위나, 누군가가 버린 쓰레기가 돌에 걸쳐 있는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봐야 하는 그 상황 말이다. 이젠 숨이 차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할 때, 소설은 끝이 난다. 마땅한 해결과 또 다른 사건들이 있을 것 같지만 그 정점에서 끝이 나는 게 김애란 소설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사건에 대한 명확한 답과 해결하기 보단 명확한 인식의 개념을 정립해주는 것이 김애란 ‘비행운’이 가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알아도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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