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랑, 『피프티 피플』
소설에 주인공이 없다. 제목처럼 오십 명의 사람이 나오는데, 주인공이 한 명도 없다. 병원에서 시작해 영화관 옥상 건물에서 끝이 난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소설이다. 한 인물마다 사연이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사람 이야기지만 앞으로 나올 사람과 이미 나왔던 사람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내가 어딘가의 백그라운드지만 나의 장에선 내가 주인공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어도 ‘김유림’이란 챕터에선 나의 이야기가 쓰인다. 피프티 피플은 그런 소설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 모두가 연결되어있는 사회를 각자에서 함께로 만들어준다. 따로 보면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엔 하나인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에서 “한 사람이라도 당신을 닮았기를, 당신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바랍니다. 바로 옆자리의 퍼즐처럼 가까이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마음 깊숙이 남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부터 나 자신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글을 쓰게 되었을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딱히 내가 필력이 좋거나 말을 잘하는 타입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늦은 새벽이면 작게라도 답답한 마음을 어딘가에 적어놓는다. 아니면 책장 속에 책을 하나 꺼내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읽는다. 내가 읽고 쓰는 이유는, 나만이 느끼는 감정과 이야기들이 책 속에 한가득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간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든, 분리되고 싶지만, 결국엔 서로를 보듬으며 나아간다.
아, 결국엔 내가 쓰는 이유는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이 글을 보고 작게나마 안도감을 느꼈으면 한다. 너만이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을 가까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말처럼 말이다.
책에선 이해할 수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에게 나쁜 사람도 결국 각자만의 사연이 있고 누군가에겐 사랑받는 사람이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더 각인시켜 준 소설이다. 그래도 나에게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이지만. 소설을 보며 밑줄을 긋는 문장들이 많았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지만 정세랑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의학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한명 한명을 읽어갔는데, 마지막으로 향할수록 눈물이 났다. ‘그리고 사람들’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상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문장이 기억에 제일 남는다. 아무도.
오십 한 명 모두 다 소중하지만 유독 마음에 남는 인물이 있는데, 나의 이상형 김혁현씨를 비롯해 나와 성격이 비슷한 것 같은 배윤나씨.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 이설아씨, 고된 삶이 마음에 밟히는 하계범씨와 이제야 가뿐해진 방승화씨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는 정다운.
‘정다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새벽이 다 지나가는 시간인데도 잠도 자지 않고 이불 속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다운아, 다운아, 이름처럼 정다운 다운아. 여리고 여린 마음을 가진 그 아이가 혼자 지낸 밤이 먹먹하게 했고 똑똑해지고 싶은 그 순수한 마음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아니까. 부모라는 존재를 다운이는 평생 남들보다는 일찍이지만 어렵게 받아들일 것이다. 너의 잘못도, 그들의 잘못도 아니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다운아, 해주고 싶은 말이 많지만 살아가야 해. 누군가보다 서툴고 느리게 세상을 알아가야 해. 우린 살아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