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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Jan 21. 2023

어머니와 설날-김종해

[시인과 문예통신] 23. 1. 21 (토) 까치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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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읽는 시]

어머니와 설날 / 김종해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오르고

밖에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 속에서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 이고 오신 하늘 한 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섣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 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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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약력

부산출생 1963 자유문학,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현대시 동인, 한국시인협회장, 문학세계사대표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외

시집 <인간의 악기> <무인도를 위하여> 외


[설날에 읽는 에세이]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어머니란 말이 으뜸이라고 한다.

어머니란 말은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마찬가지란다.

모르긴 해도 그 다음이 고향이란 말이 아닐까한다.

어머니와 고향은 서로 다른 말이면서 같은 말이다.

둘 다 생명의 원천이고 포근한 마음의 보금자리이다.

그러나 점점 크면서 살아가면서 또한 점점 멀어지는 것이

어머니고 고향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는 더욱 생생하게

남아 삶의 원천이 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귀소본능(歸巢本能)을 가진 건 마찬가지다.

명절이 되어 고향을 찾아가는 건 자연스런 귀소본능이지만

갖가지 사연으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갈 수 있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앞쪽의 경우도 안타깝지만 뒤쪽의 경우는 더 안타까운 게 아닌가?

“부모가 살아 계실 때 고향”이란 말이 있다.

나이가 들고 외지에 나가 오랫동안 고향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고향은 아득한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한번이라도 더 찾게 되지만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래도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한 다리가 천리”란 말도 있다 어릴 땐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크면서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형제에서 삼촌으로 사촌으로 오촌으로 촌수가 벌어지면 점점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이다.

고향도 세월에 따라 변하고 달라진다. 물리적으로 달라지기도 하지만 사람도 인심도 달라진다. 옆집에 살던 죽마고우(竹馬故友)도 객지로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고 혼자 가슴조리며 짝사랑하던 명자도 보이지 않고 썰렁한 골목엔 낯선 그림자들만 웅성이고 있다.

옛날처럼 사촌끼리 설 전날에 모여 막걸리 독을 비우던 추억도 없어졌다. 왜냐하면 사촌도 그의 부모차례를 지내야하니 원망할 수가 없다. 겨우 명절날 아침에 획 와서 차례를 지낸 뒤 잠시 산소에 갔다가 다시 휙 바람처럼 사라진다. 또 여자 형제는 시집을 간 뒤 명절에는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다.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고향은 추억 속에서만 온전하게 남아 있다.

그리운 어머니가 계시고 따뜻한 형제가 남아있다.

정든 골목길, 소를 먹이든 동산, 동네 개구쟁이들과

어울려 멱을 감던 맑은 시냇물이 남아있다.

이번 설에도 귀향을 일찌감치 포기한 사람들은

연휴 며칠을 어떻게 보낼까 절망과 희망의 고민에 빠져본다.

갖가지 사연으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마음만은, 추억 속에서 따뜻한 명절을 보냈으면 한다 (*)

필자의 산문집 <불멸의 새>1부 서정의 오솔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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