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션 아시아 2022 참가 후기
지난 8월 말, 부산에서 열린 글로벌 규모의 해커톤 ‘정션 아시아 2022(JUNCTION ASIA 2022)’에 디자이너로 참가했다. 처음으로 해커톤에 참가하며 느낀 점과 디자이너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가하면 좋을지 개인적인 생각을 남겨보고자 한다.
<목차>
- 해커톤이 뭐야?
- JUNCTION ASIA 2022
- 팀빌딩
- 디자이너는 해커톤 가서 뭐해?
- 우리 팀이 만든 서비스
- 완벽한 실패의 경험
- 디자이너들에게
해커톤에 나간다고 하니 그게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 해킹하는 거야?)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 있거나 관심 있는 사람 말고는 잘 모르는 듯하다.
해커톤은 제한된 시간 내에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등 팀을 이뤄 주제에 맞는 서비스를 만드는 대회이다.
정션은 유럽 최대 규모의 해커톤이다. 핀란드에서 2015년에 시작되었으며 국내에서는 2019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작년까지는 그냥 ‘정션’이었는데 올해부터는 ‘정션 아시아’로 바뀌었다. 앞으로 토너먼트의 이미지를 다지려고 하는 것일까? 최종 우승팀에게는 핀란드 정션의 참가 자격과 항공료를 베네핏으로 제공한다.
이번 해커톤은 다양한 기업과 기관이 협력사로 참여했는데 그중 Microsoft, AWS, ZEP, Chainapsis 4개의 기업이 각 트랙을 대표했다. 정션 아시아에서는 하나의 주제가 아닌 트랙을 선택 한 뒤, 해당 기업의 제품을 활용한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미션이다. 작년 후기와 비슷한 일정으로 진행된 걸 생각하면 앞으로도 트랙 미션의 진행 방식은 비슷할 듯하다.
작년과 재작년은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부산 코엑스에 행사가 개최되었다.
입과 눈이 딱 벌어질 정도로 멋진 현장이었다.
입장하자마자 나눠주는 티셔츠와 각종 굿즈, 시시때때로 채워지는 스낵바, 오와 열을 맞춘 길고 긴 참가자 테이블, 휴식과 자유로운 작업을 위한 빈백 존. 협력 부스에서는 각종 이벤트가 준비되어 개발 시간을 위협하고 있었다.
내가 일(?)을 하러 온 건지 축제에 놀러 온 건지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조명 때문에 들뜨게 되는 분위기였지만 둘째 날부터는 촉박한 시간 때문에 별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가장 걱정했던 팀빌딩. 개인 또는 팀으로 신청할 수 있었는데 개인으로 참가하는 사람은 Slack(커뮤니케이션 도구)에서 본인 어필을 하며 구인 과정을 진행한다. 정션 아시아는 영어를 기본 언어로 사용하고, 전 세계에서 참가하는 터라 외국인과 매칭이 될 수도 있어서 주저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온라인에서 디자이너를 구하는 개발자 팀과 연락이 닿아 팀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일부 초면인 상황이라 킥오프의 개념으로 구글밋에서 먼저 인사를 나눴다. 각자 참가하는 목적은 다르지만 이번 정션의 메시지인 ‘Hack Your Potential’처럼 기간 안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겠다(a.k.a 수상)는 공동 목표가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실력 있는 개발자들과 뭔가를 만든다는 사실이 기대됐다.
우리 팀은 인공지능 엔지니어, 프론트 개발자, 풀 스택 개발자, 백엔드 개발자, 디자이너 총 5명으로 참가했다.
사실 내가 처음으로 해커톤을 알게 된 것은 드라마 ‘스타트 업’을 통해서였다. 드라마 속의 해커톤 발표 내용을 보면 디자이너의 역할은 로고랑 발표 자료 정도로 보였고, 현실도 드라마 같다면 UXUI가 아닌 브랜딩 디자이너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라는 포지션적인 고민이 있었다.
나는 해커톤을 통해 초기 개발과정에서 디자이너는 제품에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경험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서비스를 개선하는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디어부터 디자이너가 개입하여 제작한다면 어떤 아웃풋을 낼 수 있는지 궁금했고, 같은 조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대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커톤 후기나 수상작, 데모 영상, 발표자료를 찾아보며 같은 주제여도 어떤 팀은 디자인이 강조되었고, 어떤 팀은 기술에 집중해 개발자가 디자인 한 사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팀바이팀, 결국 어떤 결과물을 만드느냐는 자기 하기 나름이었다.
요즘은 다양한 목적과 주제로 해커톤이 개최되고 있기 때문에 행사의 성격에 따라 어떤 경험을 얻을 수 있는지를 파악하면 좋을 듯하다. (마치 같은 포지션명 이어도 회사마다 업무 범위가 다른 것처럼…)
실제로 해커톤에 다녀온 뒤 느낀 디자이너의 역할을 정리하자면
1. 핵심 기술 Lo-fi 만들기
2. 서비스 목적에 맞는 브랜딩
3. 서비스의 맥락을 설득할 수 있는 발표자료
이 정도가 되겠다.
작업 범위는 드라마에서 보이는 부분보다 훨씬 크다. 기획부터 와이어 프레임, 로고, 발표자료 등 포지션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완성과 제출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야 했다. 내가 손이 조금 더 빨랐으면, 영상편집도 미리 배워 놓을걸, 구닥다리 노트북 진작에 바꿨어야 했는데 등의 생각이 몰아치며 최대한 퀄리티 욕심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디자인 동료가 너무 간절히 필요했던 48시간이었다.
우리 팀은 Microsoft 트랙을 선택했다.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인공지능도 Power Apps를 통해 빠르게 구현이 가능하다는 선례를 보여주자는 전략이었다.
우리가 Power Apps로 구현한 서비스 명은 'CROWDED'로 실시간으로 관광지의 인구 밀집도를 보여주는 포털 사이트이다. 사람이 붐비는 관광지에서 더 편안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It gives information about how crowded a tourist spot almost in real time.
Then why are we make this app?
Because in these days, a lot of information is in the internet.
But it's hard to know how crowded in some place in real time when I wanted.
Some people want to go crowded place, but others don't want.
In my case, I prefer place that are not crowded.
So I need this app. The Crowded.
The travelers who want more comfortable and peaceful place are our target.
- 발표 내용 일부
- 깃허브
우리 팀은 수상하지 못했지만 이를 통해 얻은 점이 많기 때문에 완벽한 실패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실패 요인은 기술이 아닌 기획의 공백이었다. 그럼 기획자가 있었다면 결과가 바뀌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기획자가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기획력 있는 팀이었다.
문제는 소통이었다. 나는 디자이너 관점에서 발표자료까지 완성하는 것에 집중했고 팀원들 또한 각자 자신의 업무 롤을 명확하게 지키고 있었다. 각자의 기술력을 믿었고 프로세스는 순서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역할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아이디어 초기 단계에서 의심 없이 개발을 진행하거나 각자가 의문을 가진 부분을 토론하지 않고 넘어간 점이 구멍 난 기획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의견은 있었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작업 시간이 부족할까 봐,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까 봐 하는 걱정으로 언급만 했던 수준이었다. 서로의 성격을 잘 몰랐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팀으로 일 하는 것은 필수이다. 오더를 받는 입장일 때는 1px이 중요했지만 목적 조직으로 구성된 팀이라면 문제를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각 파트별로 충분히 의견을 말하고 조율한다면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
실패를 통해 과정을 곱씹어보며 부족한 점을 찾고,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완벽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많은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기술을 이해하고 싶어서 개념적인 부분부터 많은 질문을 했는데 열심히 설명해준 팀장에게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해커톤을 처음 들어보거나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디자이너가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력직 디자이너들은 굳이.. 저걸 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고요. (사실 저도…)
저는 포지션 변경에 앞서 유사한 경험을 쌓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덕트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 등 IT 업계로 진입하려는 디자이너들에게 도전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시간과 체력이 남아있을 때요)
웹 서비스를 만드는 디자이너라면 기획과 개발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입니다. 때문에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해커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비단 디자인 산출물 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있지 마세요! 고작 5~6명의 작은 구성원인데 한 명이라도 더 의견을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먹힐 근거는 있어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