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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Sep 14. 2021

위드 코로나, 그리고 핑크 아메리카의 귀환

누구나 과거를 그리워한다


42번가를 걷고 있는 뉴욕 쇼핑걸들

‘경기가 나빠지면, 미니스커트가 잘 팔린다’


여성의 치마 길이와 경제 변동과의 상관관계를 표현한 이 문장은, 거의 속담 급으로 굳혀진 정설이다. 미국은 코로나 시대를 맞으며 경제 직격탄은 물론 생활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마스크는 병원에서만 쓰는 줄 알았던 미국인들은 이제 때에 맞게 쓰고 또 벗으면서 ‘With Covid19’ 시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2021년 여름, 미국 뉴욕에서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는 미국의 가장 극적인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물론 여기서 경제 차트나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과학적 참고자료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코로나만큼 갑작스럽게 변화한 ‘미국의 대중문화’나 ‘생활 분위기’에 대해 잠시 수다를 떨고 싶을 뿐이다.


반박할 여지없이 지금 전 세계의 대중문화 코드는 ‘레트로’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마스크 같은 건 없었던 그 시절의 미국 그리고 외국 이방인들 앞에서 자신들의 강인함을 ‘뻐길’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미국 말이다.


코로나 이후 2000년 Y2K 시절의 향수가 패션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기사


미국 대중문화계는 그 그리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옷차림, 티비 쇼, 광고, 음악, 인테리어, 생활 방식, 예술 문화 모두 ‘바이러스 없이 잘 살던 시절의 미국’을 회상 중이다.


뉴욕 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이 생각하는 ‘훌륭했던 시절’ 은 2000년으로 나타났다. ‘금수저’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었고, 대졸자 인구 비중이 세계 2위 였고,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인기를 누렸으며, 하이틴 로맨스 영화가 붐을 이뤘고, Y2K 밀레니엄버그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고 다시 경제가 활기를 띄던 시절 말이다.


그러나 아니러니하게도, 2001년 911테러와 함께 미국은 그 기쁨의 나날을 잠시 ‘일시정지’ 시켜야 했다.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 역풍을 맞고 비틀거린 지금의 미국과 교모하게 맞물리지 않는가.


얼마 전 뉴욕 거버너 아일랜드에서 열린 핑크 와인 파티 (뉴욕 포스트)


얼마 전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와 42번가의 쇼핑거리를 걸을 때의 일이다. 몇 년 전 만 해도 무채색의 세련된 패션에 불편한 하이힐을 신고 걷던 맨해튼 부촌의 ‘사모님’들과 그 딸들이, 연한 물 빠진 청바지와 파스텔톤 티셔츠를 입고 쇼핑을 다니고 있었다. 길거리는 이미 90년대 유행했던 패션으로 가득한 상태다. 백신과 함께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미국은 ‘델타 변이’ 소식에도 한껏 들뜬 채로 길거리를 수놓는 중이다.


더 이상 화려한 명품 하이힐에 ‘각 잡는’ 무거운 패션을 입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며 더운 계절 탓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무겁고 답답했던 코로나 시대를 지나 가벼워지고 싶어 하는 염원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뉴욕 맨해튼 ‘리틀 이탈리’ 골목에는 오후 시간 해피아워 타임에 칵테일이나 맥주를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식당들로 붐빈다. 차이나타운 역시 과거의 차별 섞인 시선을 슬슬 벗어나는 중이다. 딤섬 집엔 사람들로 꽉 차있고, 화려한 등불을 배경으로 SNS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넷플릭스 ‘Cooking with paris hilton’의 이미지


‘핑크 프린세스’ 패리스 힐튼이 돌아왔다는 것.


매일 뉴스를 틀면 나왔던 코로나 뉴스, 세계가 죽어가는 이야기에 지칠 대로 지친 미국인들에게 ‘90년대 향수’ 만큼 강렬하게 다가온 여자가 있다. 바로 힐튼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다. 완벽한 타이밍에 찾아온 ‘부강한 미국 여자’의 귀환이다.


그녀는 십수 년 전에 히트시켰던 이미지 그대로 ‘핑크’ 옷을 입고 다시 강림했다. 쇼의 이름은 <쿠킹 위드 패리스 힐튼>. 자신의 전매특허 매력을 발산시키며 ‘멍청한 금발’과 ‘똑똑한 사업가’의 이미지를 넘나들며 줄다리기하는 힐튼만의 재주는 과연 ‘1세대 인플루언서’ 답다. 모든 장면이 괴상하고, 과하고, 이상하지만 결국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대중문화 아이콘인 것이다.


한 번 입은 옷은 다시 입지 않는다는 그녀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싸구려 시리얼과 맥도널드 감자튀김을 언급한다. 다이아몬드 큐빅으로 박힌 뒤집개로 요리를 하려다가 망치고, 네일아트로 뒤덮인 손가락으로 칠면조를  씻는다. 요리의 마무리엔 늘 식용 반짝이, 식용 구슬, 화려한 색의 시럽들이 장식된다.


패리스 힐튼이 TV쇼에서 보여준 요리 방식


게다가 사전과 특허에도 등록한 자신만의 신조어 ‘Sliving’(끝멋) 을 만들어내 이미 굿즈 상품까지 내놓고, 20년 전에 유행하던 트레이닝복 패션을 다시 불러온 그녀의 SNS에는 파티와 화려함만 가득하다. 코로나 시대에도 늘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전 세계를 다니는 그녀는 미국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자유 일상’의 표준 아닐까.


이뿐 아니라 요 몇 년간 가장 뜨겁게 떠오른 미국의 국민 여동생 ‘조조 시와’,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급부상한 각 분야의 인플루언서 들은 전부 핑크, 캔디, 반짝이, 판타지, 꿈, 놀이, 즐거움, 무지개, 레트로 이미지로 무장하고 있다. 계속 보면 눈이 아플 정도의 스타일링, 과도한 색감들, 뉴스 속 코로나와 아무 상관없이 행복한 아우라를 내뿜는 일상은 어쩌면 ‘전례 없는 시련’을 만난 ‘철없던 미국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위로 같다고 생각했다. 마치 바깥은 여전히 전쟁 중인데도 방구석에 앉아 “괜찮아 나는 다시 나의 궁전으로 돌아갈 거니까” 하고 위로하는 어린아이 같다랄까.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자신의 광고와 함께 포즈를 취한 힐튼 (인스타그램)


누구나 옛 시절을 그리워한다.


내가 이제까지 미국의 화려함과 자유로운 분위기만 언급했다고 해서, 역시 이곳이 살기 좋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미국은 지금 최악의 ‘일자리 폭발’ 상황이다. 실업난이 아니라, 일 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맨해튼의 대형 옷가게 H&M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티셔츠 한 장을 계산하기 위해 40분간 줄을 섰다. 3층이나 되는 그 큰 매장에, 계산하는 직원이 오직 두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세일이 한창이었다. 맨해튼에 사는 여자는 모두 그곳에 몰려있는 듯했다. 문제는 그 두 명의 직원마저 일을 서두르지 않았다. 무전으로 오는 다른 일처리를 하러 자리를 비우면 한참 뒤에나 돌아오곤 했다. 덕분에 계산을 위해 줄을 선 여자들은 한숨과 탄식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만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식당, 슈퍼마켓, 카페, 가게들은 전부 ‘hiring’ 문구를 내걸고 직원을 애타게 찾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정부가 쏟아내는 ‘경기부양책 지원금’과 ‘실업수당’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다. 굳이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지원을 받고 사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어차피 코로나로 위험한데, 지원금 받으며 집에서 있는 게 낫다는 거다. 더러는 주식과 가상화폐를, 높아진 집 값을, 바이러스로 인해 집 밖에서 일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를 언급하기도 한다.


인력 부족으로 잠정 폐쇄한 샌드위치 가게

어느 날 집 근처 대형마트 안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 ‘서브웨이’에 이런 문구가 내걸렸다. “인력이 없는 관계로 이 매장을 잠정 폐쇄합니다” 며칠이나 가게는 철창으로 굳게 닫혀있었고, 일주일쯤 지나자 겨우 직원을 구했는지 다시 열렸다.


티비에는 그 시절 즐거움이 다시 재생되고, 길거리에는 활력이 감돌며, 여행업계는 다시 특수를 누린다. 그러나 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집값 상승에 우는 사람들도 생겼으며, 여전히 병원에서는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간다.


모두 잘 살고 부자가 된 것 같으나 결국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길거리에 노숙자들은 더 많아졌으며, 총기 사고나 인종차별 문제도 여전하다. 더군다나 ‘Back to campus’라며 마스크 없이 학교 등교를 개방한 주들에서는 변이 바이러스에 걸린 어린이 학생들이 속속 속출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핑크 옷으로 무장하고 해맑은 웃음을 날린 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바닥이 나고 있다는 경기부양책 지원금 문제나, 거대한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세계적 석학들의 견해는 마치 ‘폭풍 전야’처럼 느껴진다. 내일 토네이도가 오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파티 중인 것이다.


누구나 옛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돌아가기엔 조금 멀리 와버린 것이 아닐까. 아니, 이런생각 자체가 ‘선비의 나라’에서 온 어느 고리타분한 이방인의 오지랖 넓은 걱정일까. 그렇다 나는 아직까지 퍽 미국스럽지 못하다. 자유의 나라, 그곳에 속해있지만 아직은 완벽하게 동화되지 못한 나는 오늘도 핑크로 뒤덮인 티비 속 화면을 보며 화려해진 길거리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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