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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Jan 26. 2022

달의 뒤편



그런 밤이 있었다.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고 안위하는데도, 공연히 잠을 설치고 때로 무서움을 느꼈던 밤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혼자라고 느껴졌던 추운 밤이. 그토록 원하던 여행같은 해외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끝 없이 공허했던 밤이. 내가 잘 아는 언어로 된 옛날 노래를 들어야만 안도감을 느꼈던 밤이. 우주 어딘가에 둥 떠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던 밤이.


그런 밤들이 하루 이틀 쌓이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아 이런게 향수병인가’


이런 밤에는 치료약이 없다.

도처에 널린 멋스러운 볼거리도, 내가 사랑했던 화려한 거리도, 재미있는 여행도, 먹거리도, 신기한 경험도, 여행책이나 블로그에서 다들 떠드는 엄청난 뉴욕의 매력도, 미국생활의 환상도 전부 다 소용이 없다.


그런 밤이 쌓이고 쌓이다 못해 낮 까지 밤이었을 때,

그 밤을 걷어내려 코로나 시대에 한국으로 갔다.



나는 한국에서 석 달남짓 머물렀다.

공포감마저 불러 일으키는 복잡한 서류 절차와 귀찮은 입국 과정들을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한국은 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 원초적으로는 향수병의 해갈, 개인적으로는 미뤄둔 일을 빠르게 몰아붙여 해낸 보람을 건진 시간이었다.


미국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걷다가 걷다가 훌쩍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면 그만인 서점들, 그 안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 헌책방에서 찾아 헤매는 옛 금서나 논란서적들, 도처에 널린 작은 카페들, 한옥의 나무냄새, 조그만 동네 분식집 담벼락에 있는 소녀들의 낙서들, 성당 앞 운치있는 낙엽길, 반가운 노점들, 교복을 입은 아이들, 편의점, 시장의 풍경, 소박하고 따뜻한 영감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 곳에는 모두 나와 같은 사람 뿐이었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인종이 같다’는 것으로부터의 위안감, 모든 것을 빠르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 어디든 걸어서 무작정 갈 수 있다는 자유함이 마음에 채워졌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공항은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언제 또 올 지 모르는 한국을 떠나는 마지막 관문은, 시대의 역풍을 맞은 채 황량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해질녘 공항의 운치나, 만경정에서 내려다보는 터미널 풍경, 4층에서 보던 비행기들도 이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빈 공기가 마음을 가로질러 활주로로 빠져나갔다. 사람이, 사람들이 없었다.


혹자들은 말한다.

여행하는 것 처럼 살면 되는거 아니냐고.

좋은 곳에서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사는 것 아니냐고.


"아니요. 영원히 떠났다고 생각하니 두고 온 것들이 너무나 크게 아쉬운걸요”


여행이 즐거운  다시 돌아올 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는걸,  몇권을 쓰고 오래 지나 비로소 느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낯선곳에서 시작한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있다.



다시 돌아온 미국은 여전했다.


뉴욕은 여전히 사건 사고와 시위로 떠들썩하고, 바이러스는 변이라는 바람을 타고 학교를 열었다 닫았다 하게 만들고, 인력난과 인플레이션에 삶이 흔들리고 있고, 어디에서는 눈사태가 또 어디에서는 한여름의 축제가 열린다. 센트럴파크에는 매년 그래 왔듯 눈이 쌓였고, 길거리에는 세련된 코스모폴리탄과 노숙자가 뒤섞여 수채화를 이룬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에 두어번 대형마트와 작은 마트들을 돌며 장을 보고, 중국 마트에 가는날엔  대만 빙수를 먹고, 한국 마트에 가는 날엔  떡볶이를 사온다. 마스크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외출을 삼가지만, 좋아하는 브랜드의 세일이 있는 날엔 쇼핑몰을 누빈다. 집안일을 하고, 뉴스를 보고, 요리를 해먹고, 글을 쓰고, 해야할 일을 자주 미루며 게으르게 살고 있다. 서재  작업실을 꾸몄다. 가끔 얼후를 연습한다. 사진을 다시 찍어보려 메모리카드를 새로 주문했다. 미국 어디에나 쌓여있는 비타민을 종류별로 사들이고 건강에 매우 신경쓰는 사람처럼 굴기도 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가방들은 2주가 지나서야  정리했다.


옆집에 사는 벤자민 부부는 지난 겨울 딸을 낳았다. 모퉁이길에 사는 아프리카 친구 샘과 가끔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한다. 우체국 직원에게 입고 있는 옷이 예쁘다는 칭찬을 들었다. 맞은편에 집을 짓는 멕시코 인부들은 하루종일 음악을 틀어놓고  한다.  달동안 집을 들여다 봐준 친구에게 한국에서 사온 간식거리를 선물했다.  근처 샌드위치 가게는   사람이 없어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하지만 석 달간의 한국행은 너무 긴 그림자를 남겼다.


다시 때때로  밤이 찾아왔고, 두서 없이 공허 했으며, 별것 아닌 추억에 크게 기대어  속을 해메기도 했다.  손에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쥐고도,  발치에 떨어진 포도  알에 슬퍼하는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듯이, 고집을 부리듯이, 아무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괴팍스러운 아이처럼 공허해했다.


돌아온 지 한달이 되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머물러 있다. 낮에는 반짝이는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가 자신있게 걸으며 유창한 척 떠들지만, 나는 밤만 되면 달의 뒤편에 숨는다.



깊은 밤, 나는 까만 달에 홀로 서 있다.


달에 있는 오래된 옛날 공중전화 박스 안에 들어가 수화기를 든다. 그 안에는 보고싶었던 사람들의 사진, 내가 좋아했던 어린시절의 물건들이 여기 저기 놓여져있다.


수화기의 신호가 빛처럼 솟아 올라 지구를 향한다. 지구 어딘가에서 나의 수신호를 받은 누군가가 내게 응답해 주기를 바라면서 긴 밤을 지새운다.


“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달의 뒤편에 서서 이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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