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새를 관찰할 수 있을까
나는 새를 좋아한다.
돌이켜보면 정말 어렸을 때부터 새를 좋아했다. 유치원 때는 공원의 새들을 쫓아다니다 혼나기도 했다. 청소년기에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를 볼 때면 자유로워 보여 동경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제나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유별나게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도심에서 비둘기 떼를 마주칠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질겁하는 사람들과 달리 아무렇지 않게 그 사이를 잘 걸어 다녔다. 비둘기도.. 보다 보면 꽤 귀엽지 않아?
그럼에도 내가 새를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고, 나아가 새를 좋아하는 게 꽤나 특이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몇 년이 채 되지 않았다. 몇 번 알고리즘에 뜬 유튜브 <새덕후> 채널을 자연스레 구독하기 시작하고 꽤 지나서, 새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꽤 많고,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구나'라고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인지(recognition)란 기묘한 데가 있어서 마음을 알아채고 나자 자꾸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 후 새를 보면 눈이 번쩍 뜨이고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되었다. 회사에서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철새에 대한 특강을 연다고 하길래 찾아가서 수업도 들었다. 실습 활동으로는 딱새 우드 프린팅을 그렸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는데도 나는 '탐조'를 시도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것은 상상력 밖의 영역에 있는 것이었다. 멀리 순천만 습지 같은 곳까지 가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취미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습관적인 자기혐오 때문인지 내가 감히 탐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연결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기 제한적 사고에서 조금 벗어나던 올해 봄 즈음에 회사 앞을 산책하다 평소에 보기 힘든 왜가리를 만났다. 벚꽃 나무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그 녀석을 발견하고 심장이 뛰었다. 혹여 날아갈까 봐 후다닥 카메라를 켰다. 멋진 자태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영상을 성공적으로 찍고 팀원들에게도 자랑했다. 물론, 별 반응은 없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도 금방 식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다음 주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서도 나는 그 영상을 다시 보고 있었다. 둔한 나는 그제야 '아, 나 새 보는 거 해야겠네'라고 어렴풋이 탐조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마침 서울국제도서전에 갈 일이 생겼다. 초급자가 할 수 있는 탐조에 대한 책을 발견했다. 한 권 구입해 집에 오자마자 책을 독파하였다. 의외로 탐조는 내 생각만큼 멀리 나가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싼 카메라나 장비를 갖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렴한 쌍안경만 있으면 나 같은 초보도 당장 집 앞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깨달음은 느렸지만 행동은 재빨랐다. 나는 당근마켓 앱을 서둘러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