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부자였던 나의 은밀한 고민
새에 관심이 생겨 읽은 책 <동네에서 만난 새>(이치니치 잇슈, 가지)에는 '새 관찰에 재미를 붙이면 쌍안경을 갖고 싶어 진다'라고 적혀있었다. 아무렴 나도 그랬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새가 푸드덕 날아가버리는 것을 몇 차례 겪고 나니 장비가 갖고 싶어졌다.
삶에서 장비 욕심을 크게 가져본 적이 없던 터라, 중고 제품을 살 요량으로 당근마켓 앱을 켰다. 니콘 스포츠스타 8 배율 제품을 7만 원에 파는 분이 계셨다. 쿨거래로 바로 다음날 만나기로 했다.
신나게 쌍안경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동네 공원에 들러 직박구리도 종추했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미소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나는 새가 좋고, 오늘 탐조용 쌍안경도 샀다고. 그러자 동생이 말했다.
"누나 그것도 가짜 취미 아니야?"
아차차, 응원은 못 할 망정 비아냥이라니, 몹쓸 동생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잠깐. 이 얘기는 한화 이글스가 연속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던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친구 따라 야구장에 다닌 지 어언 3년 차였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 정도면 명함은 못 내밀어도 '나 야구팬이야'라고 얘기는 해도 될 줄 알았는데. 내가 야구팬이라고 하자 듣고 있던 동생이 곧바로 한마디 했다. "누나 그거 가짜 취미잖아."
찔려서 발끈했지만, 사실이었다. 그때 나는 평소에 야구를 챙겨보지 않았고 요즘 선발이 누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좋아하는 척 했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잘 아는 동생이 돌직구를 날려 버린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짜 취미 컬렉터였다.
대학생 때부터 나는 늘 취미 부자로 불렸다. 뭐든 몸으로 부딪히는 걸 좋아해서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친구를 따라 야구장에 다니는 것을 시작으로 매달 등산에 다녔으며, 덕후 양성의 메카라는 연극과 뮤지컬도 꽤 봤다. 좋아하던 남자애를 따라 1년 동안 영화 백여 편을 보았고, 보컬 수업을 몇 개월씩 듣고, 친구랑 출사도 다니고, 게임도 했다. 기본적으로 몸 쓰는 걸 좋아해서 볼링과 당구도 쳐보고, 펜싱도 배워보고, 사격도 해봤다. 발레와 클라이밍 정규 강의를 수강하고, 도예와 프리다이빙 원데이 클래스도 가보고, 클라이밍도 6개월이나 했다. 참 많이도 해봤다. 기억은 안 나지만 잡다한 체험도 무진장 많을 거다.
근데 고백하자면 진심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불타오른 적도 간혹 있지만 그 마음은 몇 개월뿐이었다. '이게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옆에서 같이 하는 친구를 보면 아니구나 싶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이것저것 시도해 봤는데도 제대로 된 취미 하나 못 찾은 것을 보면 나는 평범한 사람이구나, 무언가를 많이 좋아할 능력은 없나 보다 싶었다.
내가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뭔가 남는' 취미였다. 여행, 독서, 외국어 공부, 꾸준한 운동.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도 손해보지 않을 일들. 스스로가 무색무취의 인간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시답잖은 일에 시간을 쓰는 게 싫었다. 시간을 썼는데 대단한 성취를 이룩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느꼈다. 즐기기 위해 하는 취미에서 성취를 찾다니. 돌이켜 보면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취미를 금방 그만두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취미를 찾아다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20대 후반에 우울증을 겪으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친구를 만났다. 재밌었다' 수준으로 쓰던 그전의 일기와는 차원이 다른 형식이었다. 가감 없이 일기장에 내 마음을 전부 쏟아낸 것이다. 나의 예민함과 피해의식과 불안과 자기혐오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배출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시기였다. 몽땅 비워내니, 비로소 내가 보였다. 세상에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온전한 나.
알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찾는 비결은 나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하도록 허락해 주는 것. 이 세상 누가 날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것. 그렇게 온전한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좋아하고 나니 비로소 진짜 취미를 찾을 수 있었다.
탐조라는 취미는 그렇게 찾을 수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쓸데없는데 시간 쓰지 마'라며 스스로를 윽박질렀겠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새를 본다. 그런 시간을 나에게 허락한다. 무슨 대단한 성취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 나가 가만히 새를 지켜보는 것이 그저 행복하기 때문이다.
(상상만 해도 슬프지만) 탐조라는 취미도 금방 끝날 수 있겠지. 그렇지만 이번에는 동생에게 발끈하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이걸 진심으로 좋아해. 그래서 이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려고 해.
* 종추: 새로운 종을 관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