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를 시작하고 나서 바뀐 것
탐조를 하기 위해 쌍안경을 구매하고, 혼자 동네 공원에 나가 처음 탐조를 했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까운 공원이라 이곳에 살면서 적어도 스무 번 넘게 간 곳이었다. 새가 그렇게 많이 사는 줄은 처음 알았다. 뭐가 어떤 새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새로운 발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도시인이 아주 쉽게 잊는 사실이 있다. 새는 우리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생 동물이다. 탐조를 하면서 이 명백한 사실을 매번 깨닫는다. 새들은 우리 옆집에 살고 있다.
탐조를 시작하기 전의 나 또한 이를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가끔 등산 가면 들리는 새소리, 출퇴근길에 자주 보이는 집비둘기. 나에게 새는 그저 BGM 내지는 풍경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새를 관찰하기 시작하고 나자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날갯짓하며 나무 사이를 이동하는 새가 한 마리, 한 마리씩 눈에 들어온다. 바로 집 앞에 참새, 까치처럼 익숙한 새뿐만 아니라 멧비둘기와 직박구리 같은 새도 산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한 번은 집 옆 안양천에 탐조를 갔다. 지난 15년 동안 백 번도 넘게 간 곳인데, 그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새들이 계속 나타났다. 1시간 동안 무려 12종의 새를 만났다. 비둘기, 까치,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와 왜가리, 예전에는 같은 종인 줄만 알았던 중대백로와 쇠백로. 처음 봤는데 눈과 부리의 녹색빛이 정말 예뻤던 해오라기 유조, 안양천 위를 쏜살같이 날아가는 민물가마우지들과 수풀 속으로 후다닥 숨어 들어가 몇 초 밖에 보지 못해 안타까웠던 쇠물닭. 마찬가지로 잠깐 본 순간 날아가버려 종추에 실패한 새 2마리까지.
내가 알아보기 전에도 새들은 계속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자 안양천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느껴졌다.
"관찰하면 어디에나 생물이 있으나 '보는 눈'을 갖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강이 있다. 우리는 이 강을 '알려는 마음'이라는 뗏목 하나로 너끈히 건널 수 있다." - 최원형, <자연으로 향하는 삶>
탐조를 시작하고 나서 '보는 눈'이 생기자 내 세상이 넓어졌다. 매일 스쳐 지나가던 출퇴근길이 다른 시선으로 보였다. 자주 가던 공원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죽어있던 공간이 무수한 생명체가 사는 '살아있는' 세계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풍경의 일부였던 새들이 사실은 이곳에서 아주 복잡하고 놀라운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주인공들로 여겨졌다.
그렇게 자연은 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아니, 고백하자면 사실 자연은 나를 강타했다.
이웃에 사는 새들이 힘차게 날갯짓하며 여기저기를 날아다니고, 먹이를 찾고, 노래하고, 때론 종종 거리며 나뭇가지 사이를 다니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다. 나 역시 이 자연 속을 살아가는 또 다른 생명체구나.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질서 속에 안전하게 속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유리되어 살았던 자연과 내가 연결되었다는 느낌. 분명 혼자서 새를 관찰하는데, 외롭지 않았다. 사랑으로 가득 찬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달 작고하신 윤무부 교수님은 책 <날아라,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에서 "살아있는 교육은 교과서가 아닌 자연 속에서 더 많이 이루어집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눈길은 어느새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애정으로 바뀌기 때문이지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 이것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교육이자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최고의 덕목일 것입니다."라고 쓰셨다.
상상도 못 했지만, 새를 관찰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자연스럽게 새를 애정하는 눈빛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나 자신을 좀 더 편안하게 느끼고,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