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해도 괜찮은 탐조 생활

나의 얕은 지식을 들켰지만

by 오리엘


누군가 '인생 여행지가 어디세요'라고 물어보면 항상 "몽골이요"라고 말하곤 했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친구랑 떠난 몽골 고비사막은 낭만 그 자체였다. 쏟아지는 별 아래 우주의 먼지처럼 느껴지는 나 자신. 광활한 자연 안에서 애쓰지 않아도 그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기분. 그때 자연 여행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게 친구랑 10년 내내 몽골무새로 살다가 올해 드디어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가기로 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여행 가기 직전에 탐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탐조용 쌍안경을 사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몽골 여행이었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새들이라니, 설레잖아!


탐조라는 취미 덕에 몽골 여행이 더 기대되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못 본 새가 훨씬 더 많은 쪼렙이지만. 뭐, 여행 가서 탐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며 샘솟는 패기로 몽골로 떠났다.






울란바토르에 도착해 투어원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홉스골로 떠나는 스타렉스에 탔다. 홉스골은 제주도 면적의 1.5배 크기로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이다. 며칠에 거쳐 느긋하게 호수로 갔다가, 야간열차를 타고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공항을 나오자 넓디넓은 평원이 끝없이 시작되었다. 나는 달리는 내내 창밖을 보며 새가 지나가나, 안 지나가나 기다렸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새가 잘 안 보였다. 도로 근처이기도 하고 아마 뙤약볕 때문에 그늘에 숨어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드디어 창공을 가르는 수리과 새를 보았다. 와, 수리라니! 탐조 후 처음 보는 수리에 눈이 돌아갔다. 급하게 쌍안경을 꺼내 서툴게 쌍안경 초점을 맞춰보았지만 수리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DSC08968.JPG 몽골에서는 꽤 흔하게 보이는 수리과 새. 멋지다! ⓒ오리엘


실망스러워하는데, 투어원들이 쌍안경을 신기해했다.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투어원들에게 관종처럼 쌍안경을 먼저 공개해 버린 나는 부랴부랴 수습하듯 사실 새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그렇지만 좀 쑥스러웠다. 내가 너무 초보라서 부끄러웠다. 취미라고 하면 많은 지식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직 하나도 모르는데.






상위 몇 퍼센트가 되지 못하면 그 어떤 취미도 시작하고 싶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림 그리는 것을 꽤 좋아했으면서도 그걸로 유명해지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주기적으로 그림을 업로드하고, 외주를 받기도 했지만 금방 지쳐서 1년을 채 유지하지 못했다. 나는 참 피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몽골 여행은 가진 지 얼마 안 된 취미를 데려간 터라, 얼떨결에 전문성을 달성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는 기회가 되었다. 한 번은 창밖으로 웬 목도 다리도 긴 새 한 쌍이 날아가길래 '와 기러기다!'라고 신이 나서 외쳤다. 같이 간 투어원 중 한 명이 '기러기이이? 기러기는 절대 아닌 것 같은데. 너 새 잘 모르지?'라고 장난쳤다. 쌍안경까지 들고 간 내가 무진장 유난스럽게 느껴져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부끄러움이 탐조를 그만두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다. 새를 관찰하는 즐거움이 그 모든 것을 압도하니까. 그 새의 이름이 뭔지 잘 몰라도 반갑고 행복하니까 괜찮았다.(그치, 아무래도 백로나 가마우지과였겠지. 뒤끝 아냐, 진짜로.)


스스로에게 잘 못 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았다. 대신 몽골에서 나는 이름도 모르는 새를 만나 가만히 관찰하는 평온함을 만끽하고, 참새처럼 생긴 북방부의 복슬복슬한 회색빛 작은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광활한 평원에서는 4륜 바이크를 타고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갔다가, 쉬고 있는 독수리들을 먼발치에서 마주쳐 멍하니 바라보고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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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홉스골 호수에서 만난 까마귀와 갈매기 ⓒ오리엘


이렇게 새를 보고 행복해하는 나를 보면서 착한 투어원들은 새가 지나갈 때마다 나보다 더 좋아하면서 '새다!'라고 외쳐줬다. 잘 몰라서 같이 웃기는 했지만 부끄러울 일은 아니었다.


몽골 여행 투어에서 친해진 한 오빠는 이런 얘기를 했다. 30대가 되어서 가지는 취미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마음이 차츰 커져서 참을 수 없게 될 때 불현듯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고. 나를 더 잘 알게 되면서 벼락 맞듯 탐조를 시작한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맞아, 그 마음이 너무 커서 하는 거야. 누구한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사실 잘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몽골에서 나는 그렇게 탐조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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