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서 당한 첫 인종차별
요즘 난 매일매일 세계여행 중이다.
방구석에서 내 폰과 함께.
해외여행을 못 가고 있는 요즘 내 역마살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소법이다.
따뜻한 바닥에서 등을 지지며 노곤한 상태로 자주 보는 유튜버의 여행 브이로그를 정주행 하는 도중 유럽의 어느 식당에서 문전박대당하는 장면을 보았다.
응!? 나가라는 식당 주인의 어딘가 낯익은 그 모습... 마치 5년 전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뜨끔한 마음과 함께 오랜만에 그 시절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2017년 여름, 부푼 기대를 안고 포르투갈 리스본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모든 것이 신기했고, 책으로만 배운 포르투갈어를 실제로 듣고 써먹으며 함께 온 동기와 함께 매일매일 밖으로 구경 다니기 바빴다.
다행히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리스본에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다른 동기가 있었고, 그녀의 리드(?) 하에 우리는 원활하게 유심을 구매하고, 교통 카드를 만들고, 지리를 익혔다.
그렇게 쉽게 쉽게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듯 보였고, 우리가 접촉한 대다수 포르투갈인들이 매우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역시 우리의 형제, 한반두형의 국가임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리스본을 가로지르는 떼주(Tejo)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며 소화를 시키던 중에 동기 한 명이 포르투갈의 클럽이 궁금하다며 가보자고 제안했다.
난 20살 때 아는 형이 따라오라며 끌고 간 부산 해운대 근처 어느 클럽에서 매우 쇼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이후로 클럽 근처도 가본 적이 없지만 왠지 포르투갈의 클럽(Discoteca) 은 어떤지 궁금증이 생겼고, 문화체험 겸 한 번은 가보자 하여 다 같이 까이스 두 쏘드레(Cais de Sodré) 지역 근방의 리스본에서 제일 핫하다는 클럽 중 하나로 향했다.
핫플레이스답게 입구부터 줄 몇 개가 길게 늘어서 있었고, 수많은 유럽인들 사이에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다양한 언어가 들리며 안에서부터 뿜어 나오는 비트와 음악소리에 괜한 기대감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는 찰나 우리의 입장 순서가 됐다.
-가드: (훑어보며) 안돼, 너희는 못 들어가.
-우리: (당황스러워서 잠시 서로 눈치)...?? 왜???
-가드: 너희 드레스코드가 우리랑 맞지 않아.
-우리: ?? 옆에 얘네는 슬리퍼도 신고 들어가는데??
-가드: 됐고, 못 들어가 너희. 들어가려면 인당 200유로씩 내.
-우리: ?? 여기 15유로인 거 알고 있는데 왠 200유로??
-가드: 됐고, 안 낼 거면 가고, 들어갈 거면 200유로씩 내.
-우리: 너 지금 이거 우리 차별하는 행동인 거 알고 있지?? 너 인종차별주의자니??
그 당시 나와 남동기는 막 포르투갈에 도착한 터라 입도 귀도 열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옆에 멀뚱멀뚱 서있었고, 여동기와 가드 사이에서 대화가 오갔다. 금액은 너무 터무니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가드가 했던 말 중에 드레스코드 어쩌고는 알아들었기에 옆라인에 서있던 외국인들의 행색을 보니 다들 후줄근한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시아에서 옷 잘 입기로 소문난 꼬레이아(Coreia)에서 온 청춘들로서 k패션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이 패션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드레스코드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다니...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서로 언성은 높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군중 속에서 뺀찌를 맞는 동양인은 흥미로운 눈요깃거리였고, 우리는 뒷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총을 받으며 쓸쓸히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브라질에서 1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던 여동기는 이미 해외에서 차별을 겪어본 적이 있는 듯, 이건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길길이 화를 내었고, 대화조차 알아듣지 못해 상대적으로(?) 기분이 덜 나빴던 나와 남동기는 유일하게 알아들은 드레스코드에 꽂혀 다른 관점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결국 그날은 맛있는 저녁을 먹고도 찝찝한 상태로 방을 렌트한 집에 돌아왔고, 마침 주방에 있던 집주인분(앙골라 이민자)과 그 상황에 대해서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열심히 내가 보고 들은 것을 토로했다.
-집주인: ...인종차별 당했네. 나쁜 놈들. 인종차별주의자들 같으니라고.
이미 여동기가 가드와의 대화에서 사용한 Racista(인종차별주의자)라는 단어를 들어 알고 있던 상태에서 집주인분이 한번 더 그 단어를 강조하자, 이제야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음이 실감 났고, 뒤늦게 여동기가 느꼈던 화가 끓어올랐다.
인종차별은 항상 책으로만, 영상으로만 접해왔고, 지금껏 포르투갈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구나 교수님, 단골 상점 주인분이었기에 늘 친절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인종차별이란 걸 겪게 되었고, 포르투갈이라는 이국에서 생활하는 이방인임에 지나지 않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뒤늦게 너무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던 것은 그 당시 여동기와 가이드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병풍처럼 멍청하게 서있다가 경호원의 비아냥조차 이해하지 못해 웃음으로 무마하며 우물쭈물 퇴장했다는 것이다.
그런 나의 무지, 무능력함에 스스로 너무 화가 났다.
그 일을 계기로 적어도 내 생각이나 감정은 표현할 수 있게끔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고, 포르투갈어 실력이 느는 만큼 이후에 어디 가서 부당한 처우는 당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매우 분한 경험이지만 그 덕에 단기간에 포르투갈어 실력이 상승했으니 좋은 동기부여거리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Racista라는 단어는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