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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봉파파 Nov 21. 2019

임신 초기, 그 고통의 서막

이 글을 읽는 예비 아빠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내를 극진히 모셔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을 적당히 하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적당히 만나면서 아내를 잘 보살피겠다는 생각을 가진 아빠들은 이 글을 그만 읽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멍청한 아빠들이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으로 거듭나기 위해 쓴 글입니다. 단언컨대, 하고 싶은 일들을 적당히 하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적당히 만나면서 아내를 극진히 모실 수는 없습니다. 욕심 부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집중하자고요. 임신한 아내를 보살피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로 살기 시작했다.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임신한 여자의 몸과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에스트로겐이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호르몬의 변화, 점점 커지는 배와 가슴, 무언가 잘못될까 두려워 사사건건 걱정하는 태도,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책하는 지나친 반성! 이 모든 것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남편이 아내를 위해 이것저것 스스로 매우 만족할 정도로 잘한다고 생각할지언정, 결코 아내의 기준을 충족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들은 그냥 직접 아내로 살 생각을 하는 게 속편합니다.


임신 초기는 유산이 일어날 수 있는 매우 조심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임신 초기 여성들은 충분한 휴식을 가져야 합니다. 멍청한 남편들이여. 이제 아내가 되어 살아봅시다. 우선 아내의 몸을 살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사실 임신을 확인한다고 해서 아내의 몸이 급격하게 변하는 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평소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임신 전과 별 차이 없이 생활하는 여성들이 많고,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에 무딘 남성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남편들은 아내를 충분히 쉬게 해야 합니다. 태아가 세포를 이루고 있는 시기에 조금이라고 무리가 오면 태아의 정상적인 성장에 큰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이제껏 잘 해왔겠지만 모든 집안일은 남편이 하도록 합니다. 특히 몸을 많이 써야 하는 것들은 무조건 남편이 해야 합니다. 저는 제 아내가 임신했을 때 요리 말고는 모두 제 손으로 했습니다. 나름 밥상을 차리기 위해 노력도 해봤는데요. 주방에 들어가면 소위 ‘폭탄 맞은 주방’을 만들곤 했기 때문에 도리어 아내에게는 큰 스트레스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리는 하지 않기로 했죠. 대신에 빨래, 집안 청소와 정리정돈, 분리수거, 택배 정리 등 몸을 써야 하는 모든 일은 제 손을 거쳤습니다.

다음은 아내가 머무는 모든 환경을 신경 써야 합니다. 집에서 아내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당장 치우는 것이 좋습니다. 골프를 치러 밖에 나가는 것을 아내가 싫어했다면, 집에 있는 골프채는 아내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물건입니다. 바로 치워야죠. 또 아내가 가급적 사람이 많은 장소를 피해 다니도록 신경 쓰는 것도 좋습니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질병에 감염될 위험이 높다는 것입니다. 임신 중에는 약 처방이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먹을 수 있는 약이 제한되어 있으니 예방하는 게 상책입니다.


임신 초기 아내를 위해 남편은 먹는 것, 식습관 등을 아내와 맞춰야 합니다. 만약 아내가 술을 좋아했다면 남편도 술을 멀리해야 합니다. 아내는 당연히 못 먹고 나는 먹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홀짝홀짝 술을 마신다면 아내가 얼마나 먹고 싶을까요? 냉장고에 있는 술병을 치우시길 바랍니다.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음식을 아내에게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평소 야식을 좋아했던 제 아내는 임신을 한 후 더욱 더 야식을 챙겨먹었습니다. 저는 야식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제 아내가 임신을 한 동안은 함께 야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아내는 살을 찌웠습니다. 임신한 아내 혼자서 야식을 먹는다면 얼마나 맛이 없겠어요? 


아내가 직장에서 어떤 업무를 하는지, 직장의 분위기는 어떤지도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임신을 한 아내가 일을 하고 있다면 퇴근을 하고 만났을 때의 컨디션은 직장에서의 연장입니다. 퇴근을 했는데 낯빛이 어두우면 직장에서의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죠. 아내의 고민을 충분히 들어주려고 노력하세요. 아내를 괴롭히는 상사는 없는지, 아내가 물리적인 힘을 써야 하는 잡무가 있는지, 남편으로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매일매일 잘 살펴야 합니다. 사실 직장을 다니는 아내를 직접 도와줄 수 있는 일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하소연과 푸념 혹은 겪었던 힘든 일들을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아내의 감정을 살피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남편이 얼마나 센스 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멍청한 사람인지 구별이 되는데요. 임신 초기 아내는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예민해집니다. 물론 모든 임산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우리 아내는 감정 기복이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아내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못을 박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합니다. 함께 분위기 좋은 저녁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싫은 소리를 빗물처럼 쏟아내더라도 이해해줘야 합니다. 우리 아내는 늘 그렇듯 좋은 사람입니다. 나를 공격하는 건 정말로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고, 그 무언가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남편입니다. 그러니 함께 각을 세우며 스트레스와 정신적 자극을 주지 말고 무조건 잘 들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믿음직스러운 존재라며 스스로를 자부해 보세요. 그게 현명한 남편의 모습입니다.


제 아내는 임신 초기에 빈혈 증세로 힘들어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임신 초기에 그 전부터 미리 잡아둔 홍콩 여행을 떠났었는데요. 유명한 국숫집에서 대기 줄을 서다가 그만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려고 했죠.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바로 옆에 함께 줄을 서 있던 한국인이 소방관이었거든요. 그분께서 맥박을 진단하고 간단한 응급조치를 해주었습니다. 다행히 제 아내는 금방 깨어났죠. 정말 애 떨어질 뻔한 순간이었습니다.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이렇게 임신 초기가 위험합니다. 정말 방심하면 안 됩니다.

임신의 기쁨과 함께 주어진 아내를 보살필 책무를 잘 할 수 있으시겠죠? 잘할 수 있다면 당신은 멋진 남편, 좋은 아빠의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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