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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봉파파 Nov 21. 2019

태명은 어떻게 지어야 예쁠까요?

많은 부모가 뱃속의 아이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고민합니다. 저희 부부도 아이가 생긴 지 거의 두 달 동안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런 저런 이름을 후보로 정하여 열띤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예비 부모가 많을 것입니다. 다른 부모들은 그리 예쁜 태명을 척척 잘 생각해내던데 정작 우리 아이에게 붙여질 태명은 잘 떠오르지 않죠, 태명은 어떻게 지어야 예쁠까요?


저희 부부는 고민 끝에 ‘라봉이’라는 태명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넷이나 SNS에 검색을 해보면 생각보다 라봉이라는 태명이 많았습니다. 사실 저희는 여러 가지 태명을 생각해보고 고민했었지만 후보군에는 라봉이라는 태명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라봉이라는 태명을 선택했을까요? 임신 소식에 들뜬 일상을 보내고 있던 찰나에 장모님께서 저희 집으로 한라봉을 한 박스 보내주셨습니다. 장모님께서는 딸에게 예쁜 것만 골라먹으라고 당부하셨죠. 저는 그 때 태명이 탁하고 떠올랐습니다. 아주 갑작스럽게 말이죠. 제가 라봉이라는 이름에 꽂힌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리 아내가 임신하고 가장 먼저 찾은 음식이 한라봉이다.
둘째, 하필 내 성이 ‘한(韓)’이다.
셋째, 한라봉은 크고 모양이 예쁘다.
넷째, 한라봉은 껍질이 단단하고 나름 튼튼한 과일이다.
다섯째, 부르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쉽다.
여섯째, 장모님이 딸에게 정성스럽게 선물을 한 것처럼 우리도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의 태명이 완성됐습니다. 그동안 고민했던 태명들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분명 하나같이 예쁘고 아름다웠던 이름들인데 말이죠. 태명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바로 이야기story의 존재 여부입니다.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이름은 그냥 예쁜 것으로 스쳐갑니다. 나에게, 아내에게, 우리 부부에게 의미가 있는 이야기를 품은 이름은 그냥 스쳐갈 수 없죠.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장모님의 선물이 아니었다면 제 딸아이의 태명은 라봉이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저희 부부를 그렇게 감동시켰습니다.


실제로 주변을 살펴보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태명들이 많이 보입니다. 어떤 부부는 괌 여행 중에 아이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태명은 ‘구암이’라고 하더군요(잘 이해가 되지 않으시면 구암을 빠르게 발음해 보시길). 어떤 부부는 갑자기 반짝하고 찾아온 아이를 반기는 의미에서 ‘반짝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어떤 부부는 서로의 애칭을 가져다가 태명을 짓기도 하는데요. 예컨대 남편은 귀염둥이, 아내는 사랑둥이라면 아이의 태명은 ‘둥둥이’가 되는 거죠. 아이가 엄마 뱃속에 딱 붙어 안정된 성장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딱풀이’를 태명으로 짓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가진 이름들이 단순히 예쁘다는 느낌을 넘어 부부에게 큰 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태명은 부부의 바람, 아이에 대한 애정, 가족에 대한 사랑, 앞으로의 각오가 녹아있습니다.

2018년 유한킴벌리의 설문을 기준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태명은 ‘튼튼이’였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2위는 ‘복덩이’, 3위는 ‘축복이’였습니다. 그 외에 ‘쑥쑥이’, ‘건강이’, ‘씩씩이’ 등 자녀의 건강을 바라는 태명이 많이 있었죠. ‘행복이’, ‘럭키’등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태명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부모들이 사용하는 태명은 약 1,600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모든 태명들이 아이의 부모들에게 어떤 다짐의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라봉이를 예쁘게 키울 거야.’, ‘라봉이를 건강하게 키울 거야.’, ‘우리 장모님에게 느낄 수 있었던 자식에 대한 사랑처럼 라봉이에게도 사랑을 듬뿍 주는 아빠가 될 거야.’처럼 말이죠.


태명을 짓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수많은 후보들을 나열해놓고 이걸 할까 저걸 할까 갈팡질팡하는 것 역시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태명을 지을 때는 정식 이름과는 다르게 영어, 한자, 한글, 독일어, 불어, 노어를 모두 넘어설 수 있습니다. 또 태명은 아이의 평생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으로서의 제약이 덜합니다. 그래서 태명을 지을 때는 부모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담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 태명을 짓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빠들에게 저는 이렇게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찾아보세요.”라고 말이죠. 자신의 이야기, 아내의 이야기, 부부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 그 이야기들 속에서 엄마와 아빠가 공유하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예쁜 태명을 선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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