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2월 24일에 나간 연극 '엘리펀트 송'의 배우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이것은 일종의 게임이죠"
(해당 인터뷰 기사에는 ‘엘리펀트 송’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연극 ‘엘리펀트 송’(제작 나인스토리)이 다섯 번째 시즌으로 관객을 찾아왔다. 아시아 최초 한국 초연 6주년을 기념한 연극 ‘엘리펀트 송’은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의사 로렌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병원장 그린버그가 로렌스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환자 마이클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밀도 높게 그려낸 작품이다. 행방의 단서를 찾으려는 병원장 그린버그와 알 수 없는 코끼리 얘기만 늘어놓는 환자 마이클, 그리고 마이클이 유독 경계하는 수간호사 피터슨까지 세 사람의 대화가 치밀하게 엇갈리며 고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엘리펀트 송’은 캐나다 작가 니콜라스 빌런(Nicolas Billon)의 데뷔작으로 2004년 캐나다 스트랫퍼드 축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14년에는 자비에 돌란, 브루스 그린우드, 캐서린 키너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이때 원작자 니콜라스 빌런이 대본 작업에 참여해 영화 및 미니시리즈 WGC 각본상과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 최우수 각본상(CSA)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담당 주치의 ‘로렌스’를 마지막으로 만난 환자 ‘마이클’ 역은 전성우, 김현진, 강승호, 신주협, ‘로렌스’ 실종의 단서를 찾기 위해 ‘마이클’을 찾아오는 병원장 ‘그린버그’ 역은 이석준, 정원조, 정상윤, ‘마이클’을 돌보는 수간호사 ‘피터슨’ 역에는 박현미, 고수희, 이현진이 무대에 오른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제작사 나인스토리 사무실에서 만난 신주협은 ‘마이클’ 역으로 이번 시즌에 새롭게 합류했다. 그는 “‘엘리펀트 송’ 작품이 들어왔다고 들었을 때 80% 이상은 그냥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제가 세 번째 시즌 때 공연을 봤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작품의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더라도 극이 따뜻했다는 생각이 나더라. 저는 따뜻한 작품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무대에 돌아오기 전에 1년간 개인적인 시간을 잘 보냈고 ‘블랙 메리 포핀스’ 앵콜 공연에 이어 ‘엘리펀트 송’을 하면서 따뜻한 작품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20%를 고민했던 것은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었지만, 워낙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이니 함께 하고 싶었다”고 다섯 번째 시즌에 합류한 소감을 전했다.
신주협은 객석에서 본 마이클과 무대 위에서 만난 마이클로 “극을 보면서도 대사가 정말 많다고 생각했는데, 대사가 정말 많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였다. 이어 “관객들이 제가 대사를 할 동안 지루하지 않아 하며 이 내용을 어떻게 하면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90분이란 시간 동안 긴 대사를 생동감 있게 전하고 곳곳에 숨겨진 복선을 어떻게 새겨 드려야 할까. 대사가 많다는 건 말의 변화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인데, 이 말 다음에 이 말이 왜 나올까, 말의 변화에 중점을 두고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곳곳에 복선이 숨겨져 있다는 ‘엘리펀트 송’. 이 작품은 심리 스릴러로 인물의 대사를 잘 따라가야 한다. 엔딩에 다다랄 때쯤 ‘아까 이 말이 이거였구나’ 무릎을 칠 수 있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관객을 속이고 대사를 끌어가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게임이죠. 연출님과 이야기했을 때 마이클은 진실된 거짓말을 하는 거였어요. 텍스트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연기는 진짜로 하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이클은 누군가를 속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저 옷장에 시체가 있다고 마음으로 집중하고 표현하고, 이 장면이 끝나면 이 안에서 성추행 사건이 진짜로 벌여졌다고 속이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자신이 믿는 걸 말하는 거죠. 생각해보면 우리가 거짓말을 들통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처럼 보이려고 하는 거잖아요. 마피아 게임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마피아인 걸 들키기 위해서 게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은 시민이고 경찰이라고 믿고 임하는 거죠.”
마이클은 캐나다 브로크빌의 정신 병원에 15살에 들어와 8년을 지냈다. 이 시간에 대해 신주협은 “지루하고 외로웠을 것 같다. 가뜩이나 엄마한테 사랑을 못 받으면서 자라온 아이기 때문에 애정 결핍 본능이 강하고 사람에 대한 집착일 있을 수 있다. 병원에 환자로 들어오면서 자기를 온전하게 바라보는 것보다 환자 마이클로 바라봤으니 쓸쓸하게 8년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 관심 받고 싶어 하고 내기를 걸면서 장난을 쳤을 것 같다”고 마이클의 전사를 풀어냈다. 이 병원에서 만난 사람으로 의사 로렌스와 간호사 피터슨에 대해서는 “둘 다 마이클에게 사랑을 준 인물들이지만 피터슨에게는 모성애적인 사랑을 느꼈을 것 같다. 그리고 로렌스는 이성과 동성을 포함한 더 큰 느낌의 사랑을 느끼지 않았을까. 로렌스에게는 부성애 이상으로 많은 걸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비교 설명했다.
‘엘리펀트 송’에 마이클, 그린버그, 피터슨이 무대에 오르지만 또 하나의 귀여운 코끼리 인형 안소니가 등장한다. 마이클의 엄마가 마이클이 아빠와 사파리 여행을 다녀왔을 때 선물한 인형으로 마이클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증오하지만 그 인형만큼은 애착을 가지고 들고 다닌다. 신주협은 “엄마는 저에게 코끼리 세는 것을 가르쳐 주고 안소니를 준 거뿐이다. 마이클에게 코끼리 자장가를 불러줬을 때가 자신이 아들이었고 관객이었다고 말한 순간인데 마이클에게는 값진 순간이다. 아들이라고 인정해준 순간이기 때문에 안소니를 잊을 수 없고 엄마나 남긴 최소한의 물건이기 때문에 이것만이라도 갖고 있으려고 한다. 아들에게 불러준 노래, 선물, 기억, 향수 등 무의식에 잠들어있는 깊은 행복이 남아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안소니를 늘 안고 다닌다”고 안소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럼 엄마가 마이클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순간이 제일 행복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렇다. 다른 순간은 없었을 거다. 수많은 관객보다 마이클이 유일한 관객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게 가치 있는 사랑이지 않았을까”라며 답했다.
마이클은 그린버그와 끊임없는 내기를 통해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초콜릿 박스를 손에 넣는다. 초콜릿 박스를 손에 넣은 마이클의 기분은 어땠을까. “목표를 이뤘구나. 그리고 죽음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우연히 죽음에 대한 서적을 봤는데 인간은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죽음의 문 앞에 가면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죽음은 나 혼자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극심한 외로움을 느낀다고 해서 아마 외로움 반과 그렇게 원하던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마음 반이었을 것 같아요.”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또 한 명의 키 맨인 로렌스. 초콜릿을 먹고 로렌스와 통화를 나누는 마이클은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지에 대해 묻자 신주협은 “아마 마이클이 그린버그가 초콜릿을 줬다고 할 때 극 흥분상태로 이 아이를 걱정했을 것 같다. 마이클이 자랑하듯이 말을 하지 않나. "서랍 안에 있는 아몬드 초콜릿"이라고 말하니 로렌스는 아마 시끄러운 목소리로 통화를 했을 텐데 이때 마이클이 "제임스"라고 부르며 그를 잠재운다. 마이클은 그에게 다 괜찮으니까 노래 하나 불러 달라고 하고 그의 눈물과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마지막 순간에는 마이클이 행복했을 것 같다”고 담담하게 전했다.
“제가 ‘엘리펀트 송’에 함께하게 됐다고 했을 때 엄마께서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대본을 보여드렸어요. 그때 저에게 저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인데 이렇게 애정이 고픈 아이를 잘 할 수 있을까, 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첫 공연을 보시고 펑펑 울고 계시더라고요.”
신주협은 카카오tv ‘오늘부터 엔진ON’, 티빙 오리지널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 ‘안녕, 내일 또 만나’, 연극 ‘글자를 모르는 아이(가제)’,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 연극 ‘엘리펀트 송’ 등으로 2021년을 채웠다. 그는 ‘안녕, 내일 또 만나’는 영화 오디션을 보고 뽑힌 가운데 거기서 만난 배우 홍사빈을 통해 영감을 얻고 연극 ‘글자를 모르는 아이(가제)’를 쓰게 됐다. 신주협은 “사빈이가 글도 쓰고 연출도 하는 배우인데 이 친구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저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을까 생각할 때 정말 많이 떠올랐다. 그래서 작품을 써서 공모전에 냈는데 붙어버려서 주위에 배우와 스태프를 섭외해서 쇼케이스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가제)’는 저의 이야기에요. 저의 엄마께서 저에게 글자를 늦게 가르쳐주셨어요. 글자를 배우면서 사람이 갖고 있는 표현의 한계가 많아진다고 생각하셨대요. 예를 들면 ‘기쁘다’고 말할 때 여러 복합적인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기쁘다’는 세 글자로만 감정이 전달되잖아요. 슬플 때도 슬픔의 감정에 여러 감정이 녹아들었을 텐데 ‘슬프다’라는 납작한 단어라는 수단에 갇히게 되죠. 저는 그래서 어렸을 때 친구한테 제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글자를 모르니까 그림을 그려서 주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림을 또 그려서 겹치게 표현해서 보여주고 그랬어요. 제가 10살에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땐 받아쓰기가 제일 두려움의 대상이긴 했는데 이제는 이야기 거리가 되었네요.”
신주협은 다가올 2022년에 서른 살을 맞이하는 감정으로 “Welcome”이라고 짧고 굵게 소감을 전했다. 이어 “2022년 계획은 창작진으로서 무언가를 내고 싶어서 지금 머리가 아프다”며 웃어 보였다.
한편, 연극 엘리펀트 송‘은 2022년 2월 13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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