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옹알이 May 17. 2022

'눈치가 보여서'라는 이유로 벌어진 일

[퇴사일기#27] 전염병을 대처하는 직장인의 자세

 코로나로 우리들의 일상이 바뀐지 벌써 2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나날이 발표되는 높은 숫자의 확진자를 보며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점점 둔해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코로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퍼지는 '전염병'입니다. 아직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하며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은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니 최선을 다해 마스크를 쓰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일부 업체는 재택근무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코로나 확산 방지에 힘썼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모든 직종이 재택근무로 전환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제가 몸 담았던 생산제조업은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종입니다. 다들 불안에 떨면서도 출근을 해야했습니다.


 소비자가 직접 섭취하는 제품을 만드는 곳은 전염병에 특히 민감해야합니다. 이 곳에서 병원균이 발견될 경우 소비자가 감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부터 높은 수준의 청결을 요구하던 곳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업계임에도 불구하고 청결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다는 점입니다. 감염병에 예민해야 할 곳에서 전염병이 퍼지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기도 했지요.


 오늘은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보겠습니다.








 그 날은 평소와 달리 요상하게 아픈 몸뚱아리에 연차를 쓸지 말지 고민하다가 일단 출근 했습니다. 하지만 곧 열이 치솟았고, 결국 조퇴 후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역시나 독감, 조금 더 독하다는 A형 독감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게 직장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니 당장 회사에 감염 사실을 알리고 격리하라고 하셨습니다. 독감은 국가에서 지정한 전염병으로 격리가 원칙이고, 약국으로 가서 독감용 마스크를 구매하여 더 이상의 확산을 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코로나 이전인데도 전염병에 기민하게 반응한,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망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독감은 회사 사람으로부터 옮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A형 독감을 진단 받고도 회사에 출근하여 기어코 같은 사무실의 직원(저)에게 병을 전염시킨 장본인은 지금 회사에 있습니다.



 며칠 전, 바로 옆자리에서 기침을 하는 그 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독감에 걸렸다고 했었습니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기침을 해대는 그를 보며 불안에 떨었지만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아주 유난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관리자 직급이었는데 회사의 눈치 때문인지 독감에 걸리고도 출근을 했습니다. 저는 면역력이 약한 편이라 옮지는 않을까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걱정을 한지 정확히 4일 후, 그로부터 전염된 병원균에 의한 독감을 앓게 됐습니다.


 같은 병을 앓은 직원 중 한 명은 회사를 나오고, 한 명은 격리해야되서 3~5일간 회사를 못 갈 것 같다고 말하는 상황. 회사 입장에서 독감에 걸려 회사에 못 간다는 직원이 얼마나 유난스럽게 보였을까요.


 하지만 저는 의사 선생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염병은 퍼지지 못하게 막는 것이 최우선이고, 저는 생산제조업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저로부터 나온 병원균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3~5일 회사를 쉬면서 제 연차를 소진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팀장 입장에서 '독감 따위로' 회사에 나오지 않는 직원을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고, 저는 제 개인 연차를 소진하여 자가격리에 들어갔습니다.


 후에 총무팀으로부터 연차를 왜 이렇게 많이 소진했냐고 욕 먹는 것은 제 몫이었습니다. 독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더니 왜 병가를 쓰지 않았냐고 다그치더군요. 한 팀의 팀장이 내린 결정을 사원 따위가 거스를 수 있는 구조던가요.


 어떤 직원은 전염병에 걸렸으면서도 회사에 출근했고, 그의 상급자는 전염병으로 격리가 필요한 직원을 더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으려 직원의 희생(개인 연차 소진)을 강요했습니다.


 이 모든 게 '눈치가 보여서'라는 이유로 벌어진 일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전염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회사에 출근하여 기어코 타인에게 병을 옮긴 관리자, 회사 측 눈치를 보느라 개인 연차 소진을 부추긴 팀장님, 무엇보다 소비자의 안전을 기만하는 업계의 수준에 실망했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증(급성호흡기감염증)은 의사환자와 환자가 모두 7일 이내 신고해야 하는 4급 감염병입니다. 그리고 독감으로 매년 사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사망률이 낮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질병입니다.


 인플루엔자에 의한 정확한 사망률을 조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국내 인플루엔자 사망관련 연구 동향-주간 건강과 질병 제 14권 제 18호(2021.4.29)]에 따르면 인플루엔자는 발생 환자 수가 많아서 전수 검사가 어렵고, 다른 상기도 감염과 임상적으로 구별이 어려우며, 기저질환을 가진 환자가 임플루엔자에 감염되어 사망할 경우 기저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신고되기 때문에 다양한 수학적 방법을 통해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산출법으로 계산했을 때 WHO에서는 성인 5~10%, 어린이 20~30%가 인플루엔자에 감염되고, 29만 명~65만 명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적지 않은 숫자가 감염되고 사망합니다.


 만 13세 이하의 어린이, 만 65세 이상의 어르신, 임산부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지원합니다. 특히 임산부의 경우 독감에 걸릴 시 뱃속의 태아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접종을 권합니다.


 국가에서 예산을 들여 일부러 접종을 권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전염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직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책임감이 있었다면 독감에 걸린 채로 마스크도 없이 출근을 강행하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직업 특성상 소비자가 섭취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곳에서 청결과 위생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부족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허울뿐인 사규는 쓰이지도 못했습니다. 병가가 있음에도 쓰이지 못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번 코로나 사태 때도 개인의 연차를 소진해가며 자가격리에 들어간 많은 사례를 보고 들었습니다.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는 현재에도 쓰이지 못하는 사규가 과연 의미있다고 할 수 있나요?


 마지막으로 공중보건을 해치는 전염병에 대한 위협보다 윗 사람들의 압박에 의해 출근을 강행한 일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은근한 선택을 강요하는 분위기부터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그 관리자 뿐만 아니라 회사 대부분의 윗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발생할 제 2, 제 3의 코로나와 같은 사태는 계속해서 '개인 연차 소진'이라는 희생으로 대응될 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원이 된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