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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Oct 25. 2020

유니버스, 유니버셜 러브

우리가 살아갈 지도 모르는 시공간 속, 네가 꿈꾸는 사랑은 뭐야?


우리가 살아갈 지도 모르는 시공간 속, 네가 꿈꾸는 것에 대해 말해줘.





1.

그 누구도 달리지 않는 미래를 생각해. 친구들은 언제나 내 생각에 회의적이지만, 미래는 공평할 거야. WALL-E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야. 우린 모두들 동일한 기계 위에 누워서 놀고, 먹고, 사랑할 거야. 지구의 황폐화는 와닿지 않을 테고,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모든 인류의 다리가 퇴화되어있고, 거기서 나의 신체가 어떤 문제가 되겠니. 음료수를 마시면서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 나누고 싶어. 모두가 통제당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 내가 가지 못할 공간은 너도 갈 수 없는 공간인 세계.


그 누구도 달리지 않는 곳, 그 누구도 수영하지 않는 곳. 그래서 우습지 않은 나를 생각해.







2.

인류의 신체를 빌어 태어나는 인류가 없어진 시대에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할까? 궁금하지 않니. 네 생식 기능이 농담거리로 오르는 술자리도 없고, 육아 휴직을 낼 일도 없겠지. 난임 센터는 사라질 테고, 결혼과 이혼의 원인이 아이가 되는 경우도 없어지겠지. 그건 좋다.


그래도, 결혼 제도는 남아있을 것 같아. AI 로봇이 인간 수보다 많아져도 '인간이랑 살아야지!'하면서, 등짝 때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고. 인간 혼자 살아도 문제없는 세상에서도 우린 사랑을 하 는 거겠지? 그 시대가 되면, 더 절절한 사랑을 할까? 더 쉬운 사랑을 할까? 아, 아무튼 난 섹스 로봇이 판치는 SF 세계관은 질색이야. 하하. 그래도 우리 아이는 키우자. 그 누구의 신체도 빌어서 태어나지 않을 우리의 아이를. 그리고 그건 튼튼한 강아지면 좋겠어.







3.

외계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겼으면 좋겠어. 그곳의 나는 단순히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이상하지도 않은 그저 단순한 인류애적 사랑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권사님이 나를 받아주셨으면 해. 용서받지 않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어. 원죄만을 지니고 그것만을 용서받고 싶어. 그의 보편적인 사랑의 범위가 더욱더 좁아지고 더욱 넓어졌으면 해. 지적 생명체와의 사랑은 감히 상상도 못 할 권사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그곳에 속해있을 나를 생각해. 그의 선별적 인류애 속에서 구원받고 청년부 친구들과 손을 잡고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


인간과 외계인이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 그게 조금 이상한 사회가 있으면 좋겠어 .








4.

우리 집 고양이, 키토가 우주 리서치 회사 태양계 지구 지부 소속 직원이라는 게 밝혀지는 거지. 그래. 우리가 알고 있는 갤럽 조사 연구소 말이야. 키토는 고양이의 육체는 계속 바꿔왔지만, 그의 눈과 털색은 언제나 같았을 거야. 그의 취향은 확고하거든. 매번 똑같은 외형으로 커스터마이징하지만, 때때로 모색의 조합을 바꿨을 것으로 추정돼. 초록색 눈, 검은색에 흰 양말의 신사. 그게 이번의 키토였지. 자기가 지금껏 지구에서 고양이로 지내면서, 이렇게 발바닥을 많이 내어준 적이 없다나. 그래서, 다음번에는 양말을 신을 생각이 없대. 내어준 적도 별로 없으면서.  


키토에 대해서 더 설명해보자면, 18세기 영국에서 첫 지구 생태 조사에 참여하게 되었대. 그러니까, 키토는 이미 200살이 넘은 셈이지. 정확히 몇 년도에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대. 지구력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몰랐다나. 베테랑 조사원인 그는 21세부터 30세 사이의 수도권에 혼자 거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주거환경 실태 조사에 나왔고, 나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대. 리서치 대상에게 조사한다고 말도 안 하고, 주거 환경 안으로 들어와서 얻어가는 자료가 불법인 것 같지만, 우주에서는 어찌어찌 되는 일인가 봐.


키토에게 있어서, 나는 좋은 표본이었대. 사회적 동물이라면서, 허구한 날 집에 틀어박혀서 사람도 안 만나는 게 자기 구역을 지키는 자기 종족을 닮았다나.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사교성이 없어 보이지도 않은데, 10년 동안 애인이 없는 것도 특이점으로 적어두었대. 아마 다른 조사원들도 나 같은 사람들을 만났을 거야. 인간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이야. 그리고, 연애하지 않는 사람도.


그리고 그가 하던 조사는 내가 서른을 맞이하면서 끝이 났지. 다행인 건, 그가 한국식 나이에 빠삭했다는 거야. 내 나이 만 30세, 생일이 지난겨울에 임무를 끝내줘서 고마워. 우주로 복귀하라는 신호에도 꿋꿋이 버텨줘서 고마워. 보고서를 쓰고 난 후, 다시 리서치하러 와줘라. 이번에는 '한국 수도권에서 사는 미혼 여성의 삶 전반에 대한 심층 조사' 같은 걸로 와줘라. 네가 다시 나를 표본으로 삼으러 올 때까지 기다릴게. 다음 임무도 나와 함께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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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우주 속 보편적 사랑을 꿈꾸며
유니버스, 유니버셜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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