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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Apr 16. 2021

[AFRO 인터뷰]#2-1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거지

앞으로 나아가는 자, 권용애와의 인터뷰 (1부)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는 만났다.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과의 인터뷰,

AFRO




앞으로 나아가는 자, 권용애


그와 나는 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한 학번 차이가 난다. 2년 연속으로 휴학을 했던 나와 그가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서로 얼굴만 아는 우리가 친해져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이유는 바로, 그가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함께 듣던 전공 강의에서 그를 붙잡고 "안녕, 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라고 말을 걸었고, 우리는 선후배 사이로 시작해 조교와 늦깎이 4학년으로 학교 생활을 함께 마무리했다. 


놀랍게도(?) 우리 사이에 로맨스는 없었다. 송은이와 영철이 같은 사이랄까. 아마 이 인터뷰는 내가 그를 사랑해서 이렇게 길어진 것 같다. 물론, 사귈 순 없다.


그는 인터뷰 전에 '내게 인터뷰할 게 있을까?'라고 물었고, 나는 '스토리 없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답했다. 인터뷰 정리본을 받은 그는 '앞으로 안 나가고 회피만 하는데?'라면서 ㅋㅋㅋ를 남발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게 그의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그의 물음에 대한 내 대답을 여기에 적어볼까 한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의 나아감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지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불확실성과 불안정의 기로에서 

수많은 물음과 말줄임표가 붙는 답을 하는 이는 나아가는 방법을 알아내고 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한다는 회피는 

부정도 긍정도 아니기에

비 확신과 신중함 사이 질문 같은 대답은 더 나은 방향으로의 길잡이가 된다


북극성이 된 대답은 밤이 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

캄캄한 밤에 우리는 별을 보기 위해 깨어있다


어느 식으로든 나아가고 있는 그를 함께 만나보자.

그리고, 이 인터뷰는 총 2부작으로 구성되었다. 






들어가면서


곽 : 본인을 뭐라고 소개하고 싶은가?

권 : 방구석 백수 1년 1개월 차, 스물여섯 살 권용애입니다.

곽 : …? 정말 그렇게 소개되고 싶은지?

권 : 그럼 뭐라고 하는가. 방구석 백수. 줄이면 멋있다. 방.백.




방구석 백수, 줄여서 방백.



곽 : 그럼 방구석 백수 기간 동안 어떤 멋있는 일은 했는가?

권 : 멋진 일? 그런 건 없고 놀았다. 신나게. 왜냐면, 나는 나한테 놀 시간이 줘 본 적이 없다. 휴학도 해본 적 없고, 그다음에 (졸업하자마자) 조교로 일을 했으니까…. 5년을 다이렉트로 학교에서만 지내서 내가 놀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근데 그냥 놀았다.


곽 : 노는 건 그냥 노는 거다. 생각하면서 놀면 노는 게 아니다. 아주 좋은 시간 보낸 것 같다.

권 : 행복했었다.


곽 : 왜 과거형인가? 더 이상의 방.백 생활은 없는 건가?

권 : 이제 슬슬 조금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곽 : 누구에게서 오는 압박감인가?

권 : 엄마? 아빠는 더 놀아도 된다고 하는데…. 엄마도 엄마고 나 자신도 그렇다. 주변에 친구들을 보면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이제 슬슬해야 하지 않을까….


곽 :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많이 놀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압박이 생겨서 준비를 하는 건가.

권 : 좀 더 놀아도 될 것 같은데 압박이 생겼다. 


곽 : 나는 휴학을 2년 하지 않았나. 당신도 1년 더 놀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권 : 그게 문제다. 졸업하고 노는 것과 졸업 전에 노는 건 다르니까. 그리고 등록금을 내주는 건 부모님이니까.


곽 : 효녀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며 살아왔나?

권 : 나는 집에서 제일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밑에 동생이 두 명 있는데, 말을 잘 안 듣는다.




회피형 인간에게도 데드라인은 있다.


곽 : 말을 잘 듣는 K-장녀로서,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권 : 기대를 좀 그만해라? 기대가 많다. 우리 아빤 내가 아직도 천잰 줄 안다. 뭐든 할 줄 아는 줄 안다. 거의 다 하는데 다 깔짝깔짝, 그러니까 깊게 다 들어가지 못하는 수준인데….


곽 : 대단한 거다. 거의 다 못하는 사람도 많다. 아, 아버지가 천재 대접을 해줘서 맨날 영재 출신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건가?

권 : 영재…? 앞에 수식어를 붙여달라. 슈.퍼.영.재.라고. 12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영재로 살았다.


곽 : 과학 영재였던 걸로 안다. 하지만 문과로 진학했다고 들었다.

권 : 수학을 도저히 못하겠더라. 과학도 계산을 해야 하는데…. 수학을 좋아하고 잘했으면 이과를 갔을 텐데…. 그래서 말하고 싶은 건 난 회피형이다. 그렇다. 나는 회피형 인재다.


곽 : 회피형 인재? 슈퍼 영재에서 회피형 인재가 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권 : 공부를 해야지, 해야지- 하는데 안 하고 쭉 미루는 거? 미루다가 꿈에서 공부를 한다. 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시간과 걱정이다. 그 두 개가 날 강제로 앞으로 나아간다.


곽 : 그래도 어떻게 해낸다. 꿈에서라도 공부를 한다. 스트레스받지 않는가?

권 : 근데 아침에 일어나서 안 한다.


곽 : 하지 않는 행동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별개지 않나.

권 : 나는 원래 꿈을 많이 꾼다. 그리고, 꿈속에서 꿈이라는 걸 알고 있다. 꿈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아 이건 꿈이야.' 하면 공부가…. 간헐적 회피형 인재라고 하자.


곽 : 점점 수식어구가 많아진다. 할 일에 대한 회피 말고, 인간관계에서의 회피 경험도 말해줄 수 있나?

권 : 먼저 연락을 잘 안 한다. 


곽 : 언제부터 자신이 회피형임을 인식했는가?

권 : 언제부터 인식했다라…, 고등학교?


곽 :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고쳐야겠다 싶었나- 아니면, 난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나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되었나? 자기 자신에 대한 긍·부정이 이뤄졌을 것 같은데.

권 : 글쎄. 어차피 고쳐지지 않을 거니까. 막 바꾸겠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나쁜 건 아니니까.


곽 : 마음가짐이 글러먹었다. 어차피 고쳐지지 않을 거라니. 진정한 회피다. (웃음)

권 : 나 스스로 회피형이라는 거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거지.


곽 : 나는 직진형이라 그런 걸 잘 못한다. 나도 배워야 하는데.

권 : 맞다. 나는 당신 같은 직진형은 처음 봤다. (웃음) 식당에서 가서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오면 얘기를 한다. 하지만 수저에 뭐가 묻어있으면 그냥 바꾸거나, 내가 떨궈서 더러워졌으니 바꿔달라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닌가?


곽 : 그건 회피보다는 눈치 아닌가?

권 : 남들 눈치도 많이 본다. 왜냐면 K-장녀기 때문이다. 집에서 치킨을 시키면 항상 닭다리를 양보했다. 어느 순간 보니까, 엄마가 닭다리를 먹지 않는 걸 봤기 때문이다. 엄마한테도 닭다리를 먹여주고 싶어서, 그 뒤로 다리는 엄마한테 주고 날개를 먹기 시작했다.


곽 : 기본적으로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라고 했는데, 요즘의 고민들은 뭔가?

권 : 취직. 아직까지도 감이 안 온다. 회피형이니까. (웃음) 아직 미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통장 잔고가 남아있다. 그 금액이 나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가면 그 시간이 다가오는 거다. 결정할 시간이. 그리고, 키우는 강아지에 대한 걱정이 부쩍 늘었다. 11년을 살아서 그런지, 올해부터 건강이 걱정된다. 털색도 변한 것 같고. 엉덩이 근육도 빠진 것 같고…. 사실 잘 구분이 되진 않는다. 먹는 건 여전히 귀신같이 알고 달려든다.


2021년, 11살이 된 뽀리






놀면 뭐하니


다음 웹툰 <유부녀의 탄생> 시즌6 8화 중

곽 : 요즘에 운동을 하는 걸로 안다.

권 : 어느 날 갑자기 핸드폰으로 모든 콘텐츠를 소비했다고 느꼈다.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봤던 것들이 나왔다. '더 이상 안 되겠다. 나태의 끝판왕이구나.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뭐부터 할까 했더니, 운동이었다. 그래서 집 앞 하천을 갔다. 그런데 너무 놀란 게, 하천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나만 빼고 다들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가 '미생'인데, 거기에 그런 대사가 있다."일단 체력을 길러야 한다." 최근 보는 웹툰, <유부녀의 탄생>에도 이 대사가 나왔다.


그래서 다시 미생을 보며 그 대사를 찾아보게 되었다. 뭔가 내 상황하고 맞는 것 같았다. 나태함과 우울함이 땀을 흘리니까 조금은 사라지게 됐다. 뿌듯하기도 했다. 뭔가 하긴 했다. 어쩔 때는 핸드폰에 찍히는 걸음 수가 하루에 50걸음 내외로 나오더라. 방에만 있고 화장실만 가면 30걸음도 안 나올 거다. 그런데 걷고 뛰고 이런 걸 하다 보니, 어느새 하루에 2만보를 넘기도 했다. 그게 너무 뿌듯했다.


곽 : 사실 나도 그 걸음수를 체크하곤 하는데, 자전거는 걸음수로 안쳐주더라. 그럴 때 막 화가 나더라. 걸어야 하나. (웃음)

권 : 결과가 나오면 뿌듯하다. 그리고 걷다 보면, 다른 길로 갈 때가 있다. 재밌더라.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길들을 가니까, 안 보였던 게 보인다. 꾸준히 달리고 있다. 여행 가서도 뛰었다. 대신 주말은 쉰다.




꾸준히 좋아하는 것 

그가 스물한 살 때 만든 홍보 콘텐츠. 중국과 일본에도 많이 팔았다고 한다.

곽 : 요즘엔 운동을 꾸준히 한다면, 학창 시절부터 DVD와 블루레이를 모으며 꾸준히 드라마 덕질을 하는 걸로 안다.

권 : 고등학교 2학년 때 산 <굿닥터> DVD가 시작이었다. 부모님 몰래 샀다. 고등학생이 사기엔 좀 비싸고, 부모님이 보시기엔 쓸모없는 제품 같아서 친구네로 배송시켜서 물건을 받았다. 학교 사물함에 2주 정도 뒀다가 집으로 가져왔다. 가격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12만 1천 원. 그때부터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드라마 W 같은 경우에는 직접 홍보도 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갈 콘텐츠를 디자인했다.


곽 : 열정이 대단하다. 그러면, 이런 걸 만드는 커뮤니티가 따로 있을 텐데 활동을 열심히 했을 것 같다.

권 : 그렇진 않았다. 소심해서. 인터넷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가…. 별로 안 좋아한다. 익명이어도 좀 그렇더라.


곽 : 그럼 익명이 아니면?

권 : 그건 더더욱 그렇다. 나를 바깥에 표현하고 싶지 않다.


곽 : 그럼 인터넷 세상뿐만 아니라 현실 세상에서도 드러내지 않는 사람 아닌가.

권 : 왜, 그런 거 있지 않는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잘못되는 사람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냥 구경하는 정도가 적당하다.  


곽 : 블루레이나 DVD를 사고 모으는 것에 매력은 뭔지 알려달라.

권 : 장점을 말하자면, 일단 영구 소장. 그리고 몰랐던 드라마 속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매력이 크다. 코멘터리나 인터뷰가 생각보다 재밌다. 특전을 무시할 수도 없고. 굿즈는 다 가져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코멘터리도 진짜 재밌다. 감독과 배우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얘긴데도 흥미롭다. 사실, 구매하고 드라마 본편은 잘 안 본다. 영상 플랫폼에서 볼 수 있으니까.


곽 : 아하. 본편을 안 보나?

권 : 왜냐면 귀찮다. 보는 건 <굿닥터> 정도? 그건 진짜 많이 봤다. 대사도 외웠었고. 거짓말 안 하고 통으로 백 번은 봤다. 그래서 공부를 안 했다. 그거 본방 하는 날은 야자 끝나고 달렸다. 왜냐면 난 성실한 사람이니까. 핸드폰 DMB로 보면서 왔다.


곽 : 그럼 최근에 구매하고 싶은 드라마가 있는가?

권 : <런 온>이라는 드라마를 좀 고민했다. 지금도 모집하나….? 그런데 그렇게까지 매력이 크진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넷플릭스로 다시 보기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은 정도? 사실 구매욕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원체 넷플릭스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이 워낙 잘되어있다 보니까. 그리고 유튜브로 비하인드 씬과 NG 장면을 공개해서 굳이…? 돈이 없기도 하다. 그래서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하나둘씩 모아볼까 한다. 드라마보다 싸기도 하고, 2만 원에서 5만 원 정도 한다.





AFRO MUSEUM (앞으로 박물관)*

작품명 : 선택의 시간 (Time to choose)

작가 노트  : 이것도 저것도 좋지만, 아이스크림이 다 녹기 전에 선택을 해야해요. 그래도, 아이스크림이 내 손에 있다는 건 위안이 되죠! 



*AFRO MUSEUM(으로 박물관)은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만난 후, 생각나는 이미지를 그려 전시합니다.









 [AFRO 인터뷰] #2-2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거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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