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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Aug 19. 2021

나이별 내가 선망해오던 것들

제티에서 노스페이스, 유학 그리고,한남 더 힐.

초등학생 때, 200원짜리 제티 가루를 들고 있는 친구들을 선망했어. 흰 우유에 갈색 가루를 타 먹는 친구들. 제티를 소유한 아이도 자신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걸 안다는 듯 으스댔어. 어떨 때는 1/3 정도 남겨서 친한 친구에게 주기도 했지. 그 시절 내 선망은 200원짜리였어. 때때로 나는 용돈을 모아 제티를 사서 흰 우유에 타 먹었지. 떡볶이를 사 먹지 않으면, 아이스크림을 사 먹지 않으면, 아폴로를 사 먹지 않으면 됐어. 그런 날이 있어서 자주 부러워하진 않았어.




중학생 때, 노스페이스 바막 입은 동갑내기들을 동경했어. 조르고 졸라서 바람막이를 얻게 되었지만, 그건 노스페이스는 아니었어. 아빠 친구가 선물로 준 빈폴 카라티 두 개를 들고 매장에 딱 하나 남아있던 S 사이즈 바람막이로 교환하는 수밖에 없었지. 음울한 표정을 지었던 거, 아직도 기억해. 엄마랑 언니는 딱이라면서 사라고 했었지. 나도 내 친구들도 빈폴을 몰랐어. 그리고 모두들 XL 사이즈의 노스페이스, 그게 아니라면 아디다스 저지를 입고 있던 시절이었지. S 사이즈는 내게 너무 꽉 껴서 지퍼를 다 올리고 움직이기가 불편했어. 가을이 지나서는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동경했고. 물론 여전히 나는 노스페이스를 가지지 못했어. 대신 부끄럽지 않은, 갠쇼에서 유행하는 겉옷을 입으며 그 시절을 보냈어. 어쨌건 친구들과 커플룩을 꾸릴 수 있었지.




고등학생 때, 사촌 언니를 부러워했어. 주 2회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단과 과외를 받던 언니는 성적이 오르지 않아 예체능으로 갈아타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 수능이 다가오고, 그녀는 내게 불안에 떨면서 말했어.

"인 서울 못하면 아빠가 동남아로 어학연수 보내버린대. 너무 싫어. 어떻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부러워했을 뿐이었지.

"언니 가게 되면 나도 데려가라."

그렇게 말했고,

"그래! 그러자. 당연히 허락하실 거야."

라고 말하던 언니는 인 서울은 못했지만, 원하던 대로 떠나진 않았지. 다행이라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던 언니를 보며 난 좀 아쉬워했어. 이모부가 보냈으면, 나도 덤으로 갈 수 있었는데. 그건 정말 기정사실이었거든. 나는 EBS 수능특강을 풀고, 야자를 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지.




대학생 때, 부모님이 주신 차를 몰고 다니는 동기를, 학교 앞 넓은 오피스텔의 전셋값을 부모님이 대주셨다는 동기를 부러워했어. 별거 아닌 듯,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동기의 모습이 나완 다른 세상에 사는구나. 알바를 살면서 해 본 적 없다는 공기업 사원과 정수기 앞에서 체리 아이스티를 마시며 내 알바 개수를 세보았어.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구나. 자취는 하고 싶고 돈은 모자랐던 나는 원룸에서 3명이서 살았어. 사실, 그래. 난 알바도 친구들과 함께한 자취도 즐거웠어. 그게 나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지금도 없어. 다만, 내 경험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삶을 사는 자가 내 옆에 있다는 게 묘했어. 꾸준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난 내 입 모양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어. 삐죽인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내려가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 앙다문 입술의 움직임. 여전히 어떤 표정을 지으며 저들을 떠올려야 할 지 모르겠어.




경기도에 사는 내가 친구와 놀려고 한남동에 있다는 블루보틀을 갔어. 이태원역부터 한강진역까지 돌아다니면서 마주한 여러 아파트들을 보며 감탄할 수 밖에 없었어. 저기가 바로 그 아파트? 저기에 BTS가 산대. 두산 회장이 산대. 최고가가 82억이라는 저 아파트는 노력으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정확히는 운칠기삼이 아니고서야 얻을 수 없는 걸 깨달았지. 넓고 깨끗한 도로와 외관. 우와. 이젠 계층이 뚜렷하게 보이는 듯 해. 아, 맞아. 중산층이라는 거 말이야. 의사나 변호사,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거라면서? 말하자면, A-~B+의 사람들. 난 지금까지 내가 중산층에 속해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네이버 지식백과를 보니 2010년에 정의 내리길 "‘대졸로 서비스업에 근무하는 40대 맞벌이’ 가구"*를 중산층으로 하기로 했대. 우리 부모님은 50대에 대졸도 아니고 서비스업도 아닌데. 나랑 언니는 대졸이지만 20대이고 멀쑥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 말이야. 그럼 난 어디 있는 걸까. 뭐, 경기도에 있지. 서울에 살 날이 있으려나. 신림이나 서울대입구 말고 말이야. 잘 모르겠네. 제주도가 아닌 이상 내려가지만 않으면 좋겠어. 그런 점에서 요즘 내가 가진 주식이 죄다 하락장이야. 쯧. 그래도 다음 달엔 외주 건 계약금이 오를 테니 치킨 사 먹어야겠어. 고급스러운 검정 부직포에 담겨오는 푸라닭을 말이야.








*「한국 중산층의 구조적 변화」(김동열, 『경제주평』, 현대경제연구소, 2011.8.29) 중 일부 발췌





덧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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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망과 부러움, 질시는 그들을 미워하게 만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 상황이 부러웠을 뿐이다. 나는 제티 먹던 친구들과 잘 놀았고, 사촌 언니를 미워하지 않았고, 차를 얻어타면 기뻐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묘하다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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