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죽지 말아달라고 누군지도 모를 이에게 울며 비는 밤
그녀는 내 눈앞에서 죽을 일이 없어 보였다. 그게 사랑의 이유였다. 그녀는 허세를 부리고 단단한 척을 했다. 비교하자면 어디서 군 복무를 했다느니 왕년에 술집 통유리를 주먹으로 깨부수었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외치는 아무개만큼이나 낯부끄러운 줄 모른 채.
물론 그녀는 남들보다 강인했다. 남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무시당할지언정 그녀는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걸친 무지의 갑옷, 그게 사랑의 계기였다. 그 사랑의 깊이는 그녀가 결백한 무지의 방패를 들고서 내뱉는 언어와 몸짓으로 더욱더, 더 깊이.
그러나 무지함은 계몽되는 법인지라, 부끄러움을 직면한 이브가 되어버린 그녀는 울었다. 가족들이 안 보는 사이 가구와 가구 사이, 그 틈 사이에 대가리를 처박고 죽어버리는 실내 동물처럼 그녀도 커튼이나 이불 안에서 울었다. 그녀의 눈물. 사랑의 동굴에 아주 느지막하게 떨어져 퍼지는 물결, 소용돌이. 그녀가 죽을 것 같이 굴어도 패인 가슴은 올라올 겨를이 없고. 어째서인지 눈물은 이 사랑을 더 강화시키는 재료가 되어버려 숨 막히게 껴안아 위로하고 싶게 만들어 어디서든 죽지 말아 달라 누군지도 모를 이에게 울며 비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