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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Oct 11. 2021

"아이들에게 오답 노트 쓸 기회를 주세요."

작업 치료사 함형광을 만나 장애아동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 물어봤다.

이 인터뷰는 소셜 브랜드 <옐토>와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함형광 작업 치료사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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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라면 무릇 전문성을 띠고 인터뷰이의 말에 곧장 맞받아치며, ‘아, 이거 말씀하시는 거죠?’ 하며 핵심을 꿰뚫어야 하는데, 그를 만나러 간 나는 마치 교수님을 뵈러 간 학부생처럼 깨달음만 얻고 와 수업료를 내야 하는 건 아닌지 싶어 이 인터뷰를 여러분께 논문처럼 내밀어 본다.


넥슨 어린이 재활병원에서 아이들에겐 설리번처럼, 보호자에겐 홈즈처럼 근무하고 있는 함형광 작업 치료사를 만나 조세호처럼 궁금한 것들을 다 물어봤다.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을 디자인하다. 삶을 재구성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작업 치료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함형광이라고 합니다.


작업 치료사라는 직업은 어떤 일을 하나요? ‘작업’이라고 한글로 표현되어 있어서 어색하긴 한데, 영어로는 ‘occupational therapist’라고 해요. ‘occupying’의 뜻을 보면,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다’라는 의미가 있거든요. 작업 치료라는 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채워주는 치료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활동’이라고 하는 개념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게, 개인이 생각했을 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놀이가 됐건 직업이 됐건 일상생활이 됐건-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직업이에요.


운영 중인 SNS(브런치)에서 본인을 ‘작업 치료사 디자이너’라고 하셨는데, 그런 의미에서 시간과 공간을 디자인한다고 하신 거군요. 되게 좋아하는 작업 치료 표현 중 하나인데, ‘삶을 디자인한다’라고 많이들 해요. 국내에선 의료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의료 기사 중의 한 명으로 작업 치료사가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해외에서는 지역 사회에서 소속되어 실질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작업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많이 하거든요. 디자인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뭔가 개입하진 않지만, 더 마음에 들게 해주는 것. 제가 추구하는 작업 치료가 아이의 삶을 재구성하고, 삶의 만족감을 높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멋지네요. 해외는 지역 사회에 녹아들어서 치료가 진행되지만, 한국은 병원에서 일하는 작업 치료사의 비중이 높다고요. 동아시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평균값이 지역사회에 속한 작업 치료사가 60~70%라면, 의료 기관 내에 있는 작업 치료사는 30~40% 정도 되는데요. 한국의 경우는 그게 반대예요. 병원에서 일하는 작업 치료사의 비율이(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포함해서) 60~70%. 그리고 여러 가지 이름의 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30%~40% 정도 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거로는 그렇습니다.


애석한 일이네요.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병원 생활을 하는 이들을 두고 ‘재활 난민’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서울에, 푸르메재단에서 일하시면서 전국의 아이들을 만나보셨을 것 같습니다. 특수학교도 그렇지만, 병원이나 센터와 같은 장애인을 케어해 줄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런 시스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그 시스템이라고 하는 게 의료 전달 체계라는 식으로 봤을 때, 많이 부족한 실정이 맞기는 해요. 실제로 오늘 아이들이 외래를 보고 등록하게 되면, 2년에서 3년 정도 기다려야 하는 외래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요. 입원납병동 경우에도, 반년 또는 일 년 후에 대기를 해야 하는 실정인 거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체계 중에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이 아이가 실제로 어떤 것에 참여할 수 있느냐로 퇴원을 시키는 게 아니라 입원의 기간을 정해 건강보험수가를 끊는다는 거예요.  병원에서는 3개월에서 4개월까지밖에 입원을 받아주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이 아이가 더 치료를 받을 기회들을 놓치게 되거든요.

이상적인 의료 전달 체계에서는 상급병원이라든지 재활병원, 이후에 이 아이가 회복이 아니라 더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요양시설 등으로 각각의 역할이 분류되어 있어야 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종합병원의 의존도가 워낙 높고 그에 맞춘 체계들이 다른 곳에도 적용이 되고 있다 보니 좀 더 난민처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되는 점은 난민처럼 돌아다니는 동안에 대기가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에는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의료기관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보니까 집에 있을 때 이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지역사회 시스템이 마련 안 돼 있어요.

 

어려운 부분이 많네요. 내가 원하는 병원에서 원하는 기간만큼 치료를 받는 것도 자기 결정권의 일부잖아요. 그런 상황을 보시면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자기 결정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제 직업과 연결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작업이라고 하는 게 주체가 가진 개인적인 의미이자 선호도인데, 그게 자기 결정 권리인 거죠. 나아가 생존에 대한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일반적으로 감기에 걸렸다고 했을 때, 이 병원에 갈 수도 있고 저 병원에 갈 수도 있는데 어린이 재활을 하는 병원은 많지 않다 보니, 내가 원하는 병원을 선택할 권리보다 나를 받아주는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그렇게까지밖에 할 수 없는 것도 자기 결정권에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 결정권이라는 개념의 범위가 아무래도 포괄적이죠.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의 미션 중 하나가 “어린이와 가족의 자기 결정권과 참여를 존중한다.”이더라고요. 여기서 자기 결정권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어떤 걸 선택할 수 있다는 건지 궁금합니다. 와, 이거 되게 면접 같은데 (웃음) 제가 느끼는 저희 병원의 비전과 미션에서의 자기 결정권이라고 한다면, 건강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권리. 저희 병원에는 여러 과가 있어서 치료를 선택할 수 있고, 어떤 과를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권리도 있어요. 그런 게 저희 병원에 미션이지 않을까요? (웃음)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기 의료진들이 아이가 힘들게 치료받는 걸 원치 않아해요. 아이이기 때문에 어른과 달리 “건강해지니까 이거 얼른 해야 해.”라기보다는 “이거 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데. 어때, 해볼래?” 이런 식으로 응원해줘서 아이들이 웃으면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직업 만족도가 높습니다.




그들에게는 두 종류의 클라이언트가 있다.

 

아이의 자기 결정권이라고 하는 건 장애라는 특수성을 제외하고도 보호자의 동의하에서 이뤄지곤 하잖아요. 치료가 보호자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거라면, 선생님은 작업 치료사로서 치료 방법을 선택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하시게 될 텐데, 그런 부분에서 아이들을 존중하시는 걸까요? ‘클라이언트’라고 했을 때, 아이가 있고 보호자가 있잖아요. 아이는 ‘client individual’(클라이언트 개인)이라면, 이 아이에게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보호자라고 보는데요. 클라이언트의 확장된 범위에서 봤을 때, ‘client constellation’(클라이언트 무리)이라고 해서 이 아이와 작업적인 연계를 갖는 대상에서의 보호자를 포함시켜요. 여기서 아이의 자기 결정권을 봤을 때는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긴 해요.

아이의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치료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한번 물어봐 주는 건데, 그 대답이 언어가 아닐 수도 있고 행동일 수도 있고 표정일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보호자는 전문가가 아니고 날 때부터 장애아동의 보호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의 자기 결정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알아내야 하는지 모르실 수 있거든요. 저희가 그런 부분을 캐치해서 차이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도 작업 치료에서 다뤄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아이의 어떤 행동을 관찰하고, 실제로 이 아이가 하고 싶구나, 하고 싶지 않구나-하는 것들을 전문 기술로 체크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채고 보호자에게 그에 대해 안내하는 것도 저희 치료실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onstellation : (관련 있는 생각·사물·사람들의) 무리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직업이네요.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아이의 보호자께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색칠 공부를 잘 못 해서 색칠 공부 연습을 요청하신다면, 적어도 이 아이가 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 번 더 물어봐 준다는 거죠. 색연필이 마음에 안 들어요, 물감으로 그리고 싶어요, 손바닥으로 찍고 싶어요. 등 다르게 갈 수 있는 거죠. 획일화된 교육 방법보다는 개개인에 맞춰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디자인해주는 것이 작업 치료실에서의 역할인 거죠.


의사소통이 어려운 친구의 경우에는 보호자 의견을 우선시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이 위주로 이뤄지겠군요. 제가 추구하는 작업 치료의 방향은 그렇습니다. 아이의 자기 결정’권’이라고 하는 권리 말고, ‘자기 결정 이론’이라고 하는 배경이 있어요. 이거는 이론이기에 권리와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아이의 어떠한 자기 결정을 위해 학습을 하기 시작할 때, 외재적 요인과 내재적 요인이 모두 영향을 받게 되거든요. 아이가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주장을 할 때-지금은 수업 중인데 스마트폰을 하고 싶어요. 와 같은- 이거는 자기 결정 권리가 아니잖아요. 잘못된 부분이 있을 때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한 번 더 물어봐 줄 수 있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보호자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클라이언트라는 개념 내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배제시키지는 않아요. 결국 아이가 지내야 하는 사회적인 환경은 보호자거든요. 이 둘의 시간적 공간적인 부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치료를 저희가 제공하는 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충돌은 있습니다마는 보호자가 반드시 맞는다는 의견을 하지도 않고, 아이가 반드시 맞다는 말을 하지도 않고, 객관화된 자료를 통해서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하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많네요. 아이가 어떤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권리는 아니지만 그들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합니다. 특히 미운 네 살, 질풍노도의 청소년들. (웃음) 미운 네 살. (웃음) 그렇죠. 모든 아이가 항상 웃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이가 우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고, 아이가 하고 싶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 치료에서 바라보는 작업 치료의 효과는 2가지로 파악을 하거든요. 작업 수행 능력과 작업 경험 능력인데, 작업 수행은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작업 경험은 ‘occupational experience’라고 해서, ‘하고 싶냐, 하고 싶지 않냐’를 뜻해요. 예를 들면, 예전에 아이에게 기타를 배우는 게 즐거운 경험이었다면 다시 해보고 싶어 할 거예요. 하지만, 손가락이 아팠다면 하고 싶지 않을 거고요. 작업 수행으로는 가능하지만, 좋은 기억이 아니었으니까 ‘하지 않을래’의 상태가 되는 거죠. 이 아이가 지금 시점에서 이걸 하기 싫은 이유가 분명 이전의 작업 경험에서 기반했을 거예요. 그러면 저희는 어떤 작업 경험에서 기반했을까? 힘들었다면 왜 힘들었을까? 장애에서 비롯된 걸까? 환경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같은 것들 것 분석하죠. 글쓰기를 해야 하는 학년기 친구들을 예시로 들자면, 아이가 글을 쓰지 않는 이유가 글씨를 이쁘게 쓰고 싶은데 밉게 써진다면, 이 아이의 치료 목표는 예쁘게 쓰는 게 되는 거고요. 펜을 잡는 동안 힘이 들어서 손이 아프다는 아이의 치료 목표는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연필을 잡는 방법을 훈련하게 되는 것이 되겠죠. 단순히 ‘글 쓰는 게 재미가 없어요.’라고 한다면,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거나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쓴다거나. 좋아할 수 있는 활동들로 변환해서 치료하게 됩니다.




나아가는 아이들에게 졸업장을 주는 직업

되게 탐정 같네요. (웃음) 행동에 이유를 찾고,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거잖아요. 되게 재미있는 직업이에요. WHY를 찾는 직업이라고도 해요.


아이마다 일일이 수행 목표를 알려주는 건가요? 네. 수행 목표는 개인마다 다르니까요.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좋아하진 않을 수도 있거든요.


즐겁게 하는 것에 대해 집중한다고 말씀해주셔서 이해가 가지만, 사실 이건 치료잖아요. 치료는 즐겁지 않고, 나아지려고 하는 거니까. 이런 부분은 생각도  하고 있었어요. 나아진다고 하는 정의가   필요할  같아요. 병원에서는 ICF *으로 건강을 바라보는데요.  사람이 건강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기준을 3단계로 분류해요.  아이의 어떤 신체 기능과 관련된 부분,  아이가 어떤 것을 하고 있는가-하는 활동과 관련된 부분 그리고, 이러한 것들로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참여하고 있는가. 작업 치료는 신체 기능도 다루지만, 활동과 참여에 대한 부분을 통해 ‘아이의 활동량이 늘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놀아요.’ 이런 현상이 ‘나아졌다라고 하는 영역이 되는 거죠.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혹시 보호자가 우리 아이가 심각하지 않은 것 같으니,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경험해 본 적도 있으실까요? 많죠. 많은데, 그걸 결정하신 거잖아요. 그거에 대해서는 ‘치료를 더 받으셔야 해요.’하고 이야기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치료 지속 여부에 대해서는 병원 내 의사 선생님들께서 진행해 주시고 계세요. 보호자께서 그렇게 얘기하셨다면, 저희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분명 있는 거고, 생존의 문제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없다면 붙잡아서 하진 않아요.


의사를 거친 후에 재활하러 오는 걸 생각 못 했네요. 센터는 또 다를 수도 있겠지만. 보호자가 괜찮다고 느낀다면, 그게 치료의 완성, 졸업이라고 느끼지 않을까요. 좋은 것 같은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졸업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저는 치료가 평생의 숙원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졸업이라고 하는 거 되게 좋네요. 개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기는 해요. 재활 난민이라고들 스스로 표현하시기도 하고, 아이들도 종결할 시기, 퇴원할 시기가 오면 ‘다른 병원 가요.’라고 얘기하는데, 저는 끝날 때마다, 저랑 이야기가 가능한 친구나 혹은 보호자에게 ‘ 어, 이제 졸업하고 가시는 거네요.’ 이렇게 표현하는 편이에요. 적어도 제 치료에서의 세션에서의 치료는 이미 끝났고, 다음 이 아이가 다시 오게 되면 그때는 또 새로운 활동을 하게 되거든요. 그 아이의 시간은 변했으니까. 애들은 되게 좋아해요. 종이 접기나 A4용지로 졸업장 같은 거 만들어주면 되게 소중하게 가져가요. 집에 가서 버려두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제 앞에서는 되게 좋아합니다.


만들어서 다 주시는 건가요? 다 드리지는 못하고. 병원에서 보다 활동의 기회를 드리고자 집중 작업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 프로그램은 회기가 정해져 있다 보니, 그 활동 끝날 때는 항상 드리는 편이에요. ‘이제 종결이네요.’ 하고 아쉬워하시면, ‘아니요. 지금 졸업하시고 가는 건데요.’ 하죠. 아이들은 신나 하면서 다른 기관으로 연결돼 가고요.


애들이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상급 학교로 가는 느낌이겠네요. 그렇겠네요. ‘넌 나의 작품이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해요. 학교 가서 누가 너 괴롭히면, ‘나는 선생님의 작품이니까 뭐라고 하지 말라고 해라.’라고 이야기해주죠.


디자이너의 세계관에 어울리는 표현이네요. 그런 이상한 세계관에 빠져 사는 사람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좋은 곳인 것 같아요.(웃음)





작업 치료사가 키우면 안 되는 두 마리의 강아지


그 세계관 속, 키워선 안 되는 강아지(犬)가 두 마리 있다. 바로 편견과 선입견이다.-라는 글을 쓰셨었죠. 자기 결정권은 모두에게 있어요. 다만, 어른의 자기 결정권은 성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켜지는 부분이 있죠. 그런데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의 자기 결정권이라고 하면, ‘어린데 네가 뭘 알아’라는 표현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거기에 병원 방문하는 장애가 있는 어린이. 어린이라는 계층에 장애라는 또 다른 소외 계층이 붙게 되면, ‘장애까지 가진 어린 네가 뭘 알아.’로 가버리거든요. 치료사의 입장에서는 신체 기능이 아니라 뭘 하고 있는지 안 하는지, 활동에 대해 봐야 하는데 이 친구가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는 이유를 장애 때문이라고 답을 내려놓으면, 탐정과 같은 일을 못 하게 되는 거예요. 답을 내려놓고 그쪽을 훈련을 하기 때문에. 이 아이가 젓가락질하지 못하는 이유는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손가락 훈련만 하게 돼요. 그런데, 젓가락에 붙어있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 음식이 먹기 싫어서 일수도 있는데. 편견으로 치료하게 되면 불필요한 치료를 하게 되는 거죠.

장애라는 것은 하나의 특성이잖아요. 제가 안경을 쓰고 있다고 해서, 저한테 ‘안경!’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이 아이가 다운 증후군이 있다고 해서 다운 증후군이라 부르지 않아야 하는 게 맞는 거고요. 실습 오는 학생들에게 ‘이 아이는 어떤 것 같아요?’라는 질문을 하면, ‘이 아이는 다운 증후군 같습니다.’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럼 저는 그걸 틀렸다고 얘기해요. 이 아이는 이름이 있잖아요. 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한 번도 물어본 적도 없이 진단명으로만 아이를 판단해버리는 거는 되게 위험한 행동인 거죠.


편견이라고 하는 건 데이터만 보는 것도 선입견일 수도 있겠네요.

IQ 검사를 한다고 가정하면, IQ 점수가 낮다고 해서 이 아이가 모든 것을 모를 것이냐? 아니라는 거죠. 이 아이가 검사 전에 캔디를 떨어트려서 검사하기 싫었을 수도 있고요. 물론, 그런 것까지 해서 검사들이 만들지지만, 그 아이의 수치화된 것들을 맹신할 필요는 없는 거죠.


치료 제공자도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하겠지만, 치료 대상자와 보호자도 마찬가지겠네요.

네, 되게. 저는 안 그러셔도 된다고 말씀은 드려요. 본인이 조심해야 하고, 챙겨줘야 하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장애를 가진 아이의 보호자를 처음 하다 보니, 뭐든지 보호해주고 낫게 해줘야 한다고 많이들 생각하시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아이가 커가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정말 위험한 게 아니라면 일단 해보자. 그래도 안 된다면 일단은 아이 탓하지 말고 환경 탓하고 사회 탓하라고 말씀드리거든요. 이 아이가 못 걸어서 학교를 못 가는 게 아니고, 학교에 경사로가 없고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못 가는 거다. 아이를 나무랄 게 아니라, 학교에 그런 거 만들어 주지 않은 걸 나무라는 게 먼저라고.

 

보호자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은 뭘까요? ’ 얘는 못 할 거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저희가 처음 아이와 보호자를 만나면 검사를 하는데, 일상생활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하게 돼요. ‘혼자서 뭘 해봤나요?’라고 하면, ‘아마 못할 거예요.’ 혹은 ‘안 시켜봤어요’라는 답변을 하세요. ‘혹시 혼자서 젓가락이나 포크 써봤을까요?’, ‘위험할까 봐 안 줘봤어요.’ 그러시는데, 사실 그런 젓가락이랑 포크는 위험하게 쓰면 누구든 위험한 건데. 한 번도 경험해 보지도 않은, 상태인 거죠. 위험하지 않은 데도 모르는 거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거고.

종종 드리는 말씀이긴 한데, ‘이 아이는 학교에 가고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아직 이거 몰라서 못 가요.’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학교를 왜 몰라서 못 가요?’ 몰라서 못 갈 것 같으면 왜 다니냐고. 못 할 거다.라는 편견, 선입견이 가장 많으시고. 저는 일단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의견이에요.


클라이언트 개인인 장애 아동이 의사 표현으로써 ‘하고 싶지 않다, 하겠다’라고 해서 치료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던 적이 있으신가요? 네, 자주 있는 일인 것 같긴 해요. 치료의 방향성에서 봤을 때, 꼭 필요한 치료인데 힘들어서 하기 싫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면 시기를 조정하는 식인 거죠. 그 시기가 반드시 오늘 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해야 한다면 이 아이가 억지로, 수동적으로 하는 치료를 선호하지는 않아요. 아이에게 이 활동이 개인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보호자를 치료에 참여시키면서 격려하기도 하죠. 그런데, 거부하는 경우에는 힘들거나 스스로가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라 그런 경우에는 아이에게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편이에요. 싫다고 하는 부분을 잘게 쪼개서, 조금씩 해낼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양치하기가 싫다. 그러면 화장실 불만 키게 하고, 이는 제가 닦아주는 식. 내일은 치약 짜는 것까지만 한다던가. 이렇게 세분화해서 치료의 방향을 수정하기도 하죠. 30분짜리 운동이지만, 오늘은 5분, 다음에는 10분. 이렇게 성공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부분에서 수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모든 아이가 활동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이가 싫은 것을 하게끔 만드는 상황이 아니라 반대로 특정 활동만 하고 싶어 하는 상황은 없었나요? 그것도 빈번합니다. 그런데, 작업 치료라는 부분에서의 활동은 목표가 될 수도 있고, 방법이 될 수도 있어요. 신체 발달이 수행 목표인 아이가 블록 쌓기만 원하는 건 문제 되진 않아요. 블록 쌓기는 운동 발달과 인지 반달에 도움을 수단이거든요. 그런데, 블록 쌓기의 수준 이상인 아이가 선생님이 주는 건 싫고, 다른 것만 하길 원한다면 치료 목표는 이 아이가 이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되게 유동적으로 바뀌겠네요? 계속 바꿔야 해요. 하지만 뼈대는 가지고 있되, 아까 말씀드렸던 작업 수행이라고 하는 부분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작업 참여라고 하는 부분이…. 근데, 이거 너무 전공처럼 가는 것 같은데. (웃음)

 

저는 인터넷을 봐도 모르는 부분이 많은 분야다 보니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수행하는 것’에만 집중했거든요. 수행이 곧 참여라고 생각했는데, ‘참여’에는 행위자의 의지가 담겨야 한다는 걸 깨우쳐 주셨어요. 여기서 말하는 참여는 ‘Participation’ 보다는 ‘Engagement’라고 표현을 해요. Engagement는 조금 더 사회적으로 이 아이가 함께 하는, 그런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게 작업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죠.

많이들 병원에서 작업 수행 증진과 작업 기능 증진을 기대하시는데, 실질적으로 저희는 그것만 다루지는 않고, 작업 경험으로 인해서 하지 않는 것 또한 다루게 되는 거죠. 해서, 아이가 A만 하려고 한다면, A를 하지 않게 한다는 작업 참여를 새로운 목표로 설정합니다.





아이들도 유행을 알고, 재미를 안다.


작업 치료 관련해서 흥미로운 도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흔하게 보이는 블록 놀이 세트도 있지만, 처음 보는 실루엣의 물건들도 있더라고요. 몇 가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대부분 다 좋아해요. 어린이 작업 치료의 목표는 놀이기 때문에 시중에서 파는 장난감인 경우들도 굉장히 많아요.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슬라임이나 피젯 스피너 혹은 팝 잇도 치료적 도구로 사용합니다.


유행을 따라, 바로 치료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어요. 왜냐면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하는 직업이 그 아이의 시간에 들어가는 거니까요.


신기하네요. 저는 비싼 것들로만 치료가 이루어질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일상적인 것들로 충분히 가능하군요. 비싸다고 표현이 되는 것은 이제 훈련 도구보다는 보조 도구들. 연필 잡기 도구라던가. 아니면 흔히 많이 하시는 에디슨 젓가락이나 요즘 보이는 누워서 책 보는 안경, 다 보조 도구에서 시작이 된 거거든요. 양말 신기 보조도구나 그리고 리쳐(reacher)라고 해서 장례식장에 가면 총 쏴서 신발 정리하는 집게 같은 게 있어요. 그것도 작업 치료 도구예요. 개인적으로 저는 안구 마우스를 제일 좋아해요.

 

아이 트래커 말씀하시는 걸까요? 네. 컴퓨터는 하고 싶은데, 내 몸을 못 움직여서 컴퓨터를 못 한다. 마우스를 잡을 수 없다. 그럼 눈으로 하자. 약간 이런 느낌으로 가는 거고, 시리도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역시. 요즘 애들, IT 사랑하죠. 시리를 좋아할지는 몰랐네요. 그런 거 되게 좋아해요. 그리고, 저도 모르는 도구들이 굉장히 많은데, 보조 도구 정보를 알아보고 병원에 들이는 것도 작업 치료사들이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결정권에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무심코 무시하는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 나는 엄마니까. 나는 선생님이니까. 내가 말하는 게 옳고, 내가 하는 것들은 무조건 도움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이한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게 제일 중요하고, 가장 우선시되어야 해요. 아이에게 틀릴 기회를 주세요. 아이는 틀려보고, 그거에 대해서 스스로 반문해보면서 새로운 발견을 학습하는 게 중요한데, 그 기회를 뺏어 버리게 되는 거거든요.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왜 오답 노트를 강조를 하셨는지 이제는 이해하잖아요.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어떤 장애 아이들을 치료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저는 그냥 아이들을 치료하는 거고,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게 장애라는 부분인 거죠. 그런 표현들도 무심코 하게 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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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자주 무지가 부끄럽다. 시선을 돌리면 마주하는 타인의 삶에 빈번하게 놀라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에서 수원 가는 내내 몸서리쳤다. 약자의 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는, 선하다는 칭찬들을 받았다.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궁금증을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개념人'뽕을 놔주는 사회에 취하기엔 수치가 컸다. 비장애인으로서 무지의 특권을 맘껏 누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인터뷰하게 되었다는 자기 합리화는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인터뷰어로도, 21세기 다양성의 시대에 사는 청년으로도 낙제점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다수의 얕은 다정함을 잊으려 차가운 보리차를 마셨다. 인터뷰이에게 그리고 사회에 신세를 저버린 것 같았다. 누군가 나의 특권을 감내하지 않았으면. 화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병원을 졸업하는 아이들을 상상하며 나 또한 선생님께 상장 하나를 받고 마리라 다짐해본다.






*옐토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지우는 매거진'을 만들어 텀블벅에서 오픈할 예정입니다.

장애 아동의 자기 결정권을 주제로 한 이 인터뷰도 삽입될 텐데요. 원고도 디자인도 더 바뀌지 않을까 싶네요. 스스로 알아서 했기 때문에. 희희,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사담은 여기서 떨어보겠습니다.





그리고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의 기부 링크인데, 한번 확인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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