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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Feb 05. 2022

겨울은 지났고, 남은 계절은 어떡하지?

나는 잘 살게. 너도 잘 살아. 술을 마시며, 춤을 추며.

너를 계속 사랑하기로, 나는 계속 슬퍼하기로. 다짐을 하니 길었던 겨울이 짧아졌다. 겨울까지만 슬퍼하기로  나는  계절이 춥디 추워서 언제 끝나나 했더니 이제는 마주한 생의 길이에 막막해졌다.


수원시엔 눈이 왔다. 입춘이었다. 나는 반사판같은 투명 아크릴판을 앞에 두고 상담사 선생님께 말했다. 친구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노라고. 과거 회상에서 벗어나 현재에서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노라고. 그리하여, 이제 납골당에 가보고 싶어졌다고.


선생님은 물었다.

"친구한테 어떤 말을 해요?"

내가 답했다.

"나는 잘 살아. 나는 잘 살고 있어."

선생님은 다시 물었다.

"잘 산다고 말하는데 왜 울어요."


네가 죽고 생긴 변화 중 하나는 성공에 대한 욕심이었다. 잘 살겠다는,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일기의 막줄에는 다짐들을 우겨넣었다. 성공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왜 울지. 나는 왜 너한테 하는 말이 생의 의지일까. 모르겠는데, 모르겠는데....


"저는 잘 살 건데, 친구도 잘 살았으면 해서요. 저승에서도 친구들이랑 잘 살 수 있잖아요."

"무당이 친구가 술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노잣돈을 많이 줘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술 마시며 저승에서 친구들도 사귀어야 하니까."


우리를 버려두고, 자긴 저승에서 친구 사귀고 논다고? 화가 나서 노잣돈 못 주겠다고 짜증을 냈었다. 결국엔 지갑에 있던 현금을 털었지만서도 어쩜 신나게 춤을 추며 술을 마시니.


녹아내리는 눈처럼, 화는 질퍽해지고. 봄의 시작에서 피어나는 깨달음은 너와 나의 시간은 틀어졌으며 내가 할 일은 이 곳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고 너의 할 일은 그 곳에서 잘 살아내는 것.


인스타를 보다 너와 함께 여행을 갔던 날의 피드를 보았다. 휴가를 내지 못한 너는 하루 늦게 왔는데, 내가 떠나는 날에 너는 이렇게 카톡을 보내왔다.


-즐거워? 사진 좀 보내줘.

-아직 가는 중이야. 차 안에서 무슨 재미를 찾냐.

-(지친 모습의 셀카)

-내가 없어서 그래.


그러게. 네가 없는 봄은 어떡하지. 네가 없는 가을은, 네가 없는 2월과 4월은 어떡하지. 7월은, 9월은 어떡하지. 네가 재미의 해결책이면, 네가 있어야지. 대안은 내가 찾아야 하는 거지?


"전에 말했지만, 전 얘를 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막 이렇게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거든요. 다만, 언제나 서로가 부르면 만나던 사이였고... 삶의 일부였어요. 얘가 죽었다는 건 알겠는데, 진짜. 알겠는데, 부르면 올 것 같아요. '야, 나와.'하면, 언제든 이 동네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얘 카톡 사진도 나고, 이번 겨울에도 만났었는데... 남은 계절들은 어쩌죠? 그게 너무 크게 다가와요. 앞으로 어떡하지?"


네가 없는 너의 생일파티를 납골당에서 하기로 했다. 이 무슨 예능 프로같은 일인지. 뼛가루도 너로 쳐야할까. 나이를 먹지 않을 너와 계속 살아갈 나. 요가 3개월 치를 등록했다.


슬픔은 나아지질 않으니, 거대한 해일처럼 다가오는 계절에도 단단하게 타다아사나로 뿌리 내려야지. 굳건한 산 자세로 서서 건강하게 살아야지.












널 향한 모든 편지가 다짐인 겨울을 보내며.

도무지 납골당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으니 생일초라도 프린트해서 갈 K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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