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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Aug 04. 2023

여름의 기억2

야채 크래커와 옥수수 사이,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첫째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졸업해서 공동육아 방과후도 졸업을 하고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고,

둘째는 한창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둘째의 어린이집에는 몇 개의 소모임이 있는데, 그 중 몇몇 아마(아빠와 엄마의 줄임말)들과 글쓰기 모임을 한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키워드를 정해서 글을 쓰고,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 달 키워드는 '음식'이었다. 음식. 어떤 글을 쓸까 고민을 하다가 나는 내가 음식에는 진심이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을 먹든 대개는 맛있고, 무엇을 먹든 배만 부르면 되는 타입. 사실 나는 음식의 즐거움을 아직까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의 기억, 두번째는 음식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 같은 어떤 일이, 정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진을 많이 봐서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음식’이라는 키워드를 받아 들고 나는 ‘내 인생의 음식’을 찾아보기로 했다. 몇 일 동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먹지만, 내 인생의 음식이라는 문구가 이다지도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초록색 야채 크래커. 이름이 야채 크래커였던 걸로 기억한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과자를 좋아했는데, 그 중 원픽은 야채 크래커였다(나무를 임신하기 전까지 나는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다. 과자마저도 야채가 좋았던 어린이). 어떠한 연유로 아빠와 나는 단 둘이 지리산을 종주하고 있었다. 사진 속 내 손에는 항상 야채 크래커가 들려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 


 

지리산에서 찍은 대부분의 사진 속에서 나는 야채 크래커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폭포도 지났고, 돌이 많은 산길도 하염없이 걸었는데 산을 아주 좋아했던 아빠는 여섯 살이었던 나를 업고, 들고 지리산 길을 걸었다. 우리가 지리산을 온전히 종주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자주 칭얼댔을 것이고, 엄마와 오빠의 안부가 궁금했던 그때 그 마음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빠와 내가 단 둘이 지리산을 여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아빠와 함께한 지리산 여행’ 이란 문구가 어울릴 만큼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아빠와 엄마가 몹시 싸웠고, 아빠는 참지 못해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무엇 때문인지 아빠를 따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내가 아빠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지리산으로 향했다. 둘째 날이었는지 셋째 날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는 내게 물었다. 그때 우리는 침대가 있는 숙소에서 잤는데 (당시 나에게는 침대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침대가 있는 세상의 모든 숙소를 사랑했다) 아빠는 여기서 하루 더 자고 싶은지 아니면 남해 외할머니 댁으로 가서 엄마와 오빠를 만나고 싶은지 물었다. 침대에서 자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지만, 당연히 그 마음을 엄마와 오빠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이겼다. 




우리는 남해에서 만났고, 아빠와 엄마는 화해를 했고, 할머니가 바로 따서 쪄주셨던 옥수수를 먹으며 여름날을 함께 했다. 그 옥수수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의 음식은 옥수수인 것 같다. 옥수수가 내 인생의 음식이라니. 내가 썼지만 어딘가 면구스럽다. 그런데 나는 옥수수를 정말 좋아한다. 밭에서 따서 바로 쪄먹는 옥수수의 맛은, 어떠한 인위적인 느낌도 포함되지 않은 달콤함과 고소함과 담백함과 쫀쫀함이 뒤섞인,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을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은 맛이다. 그 여름 옥수수가 그랬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외할머니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남해 외할머니댁에서 아빠와 엄마와 오빠와 함께 먹는 옥수수. 먹고 또 먹고, 너무 먹어서 설사를 했었다. 그래도 또 먹었다. 너무 오래 전이지만 그 여름의 열기와 바람과 냄새가, 지금도 아스라하게 느껴진다.   



  그때 옥수수를 쪄주셨던 할머니는 튼튼이가 태어나던 해에 돌아가셨다. 튼튼이의 사진을 보내드렸지만 튼튼이를 만나지는 못하셨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준 사람은, 언제나 할머니였다. 그때 야채 크래커를 사주고 나를 업고 지리산을 걸었던 아빠는 이제 나보다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할아버지가 되어서 암투병 중이다. 이제는 내가 아빠를 가뿐하게 업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아빠를 볼 때마다 마음이 쪼그라든다. 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가족이 일순위인 우리 엄마는 얼마 전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셨다. 사실, 엄마와 추억이 담긴 음식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는 올해도 텃밭에서 옥수수를 키운다. 내가 좋아하니까. 더 늦기 전에 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많이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자주 더 많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오래 오래 기억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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