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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Nov 15. 2023

과정

2023.10.29.


아직 가을이다. 낮의 찬란한 햇살을 보고 있으면 그 햇살 속에, 이 가을 속에 조금 더 몸을 담그고 있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든다. 아직은 가을, 주말을 온전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은 결혼식이 있었는데, 튼튼이를 데리고 함께 갔다. 우리는 또 버스 여행을 했는데, 이번에는 가니를 탔다.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한남동에서 내렸다. 그리고 택시를 갈아 타고 식장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이라 식사를 하면서 결혼식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차례 차례 나오는 음식을 맛나게 먹고, 나는 스테이크 먹으면서 와인도 한 잔 하고, 우리는 기분 좋게 식장을 나왔다. 결혼식장에 전시된 꽃을 가져가도 좋다고 해서 꽃도 한아름 품에 품고, 느릿느릿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그런데 정류장을 향해 가는 길이 온통 가을이었다. 


  "엄마, 씨투 타자!" 


씨투는 타요에 나오는 2층 버스다. 서울에 온 김에 서울 투어 버스를 한 번 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근처에 정류장이 있었다. 정류장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튼튼이는 내 가방에서 볼펜 하나를 찾더니 티슈 한장을 꺼내서 벤치에 펼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서울 시티투어 버스는 예매를 하지 않으면 탈 수 없고, 버스 비용이 무려 21,000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씨투는 다음에 타기로 했지만 튼튼이도 나도 실망하지 않았다. 




장충단 공원을 지나 장충먹자 골목에 들어섰다. 태극당 간판이 보였다. 


튼튼이는 이 근처에 있는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걷고 있는 길들이 튼튼이가 뱃속에 있을 때 차를 타고 무수히 지났던 길이었다. 28주부터 조산기가 있어서 병원 가는 길은, 늘 걱정이 가득했다.


그날도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튼튼이가 조금만 더 건강하게 뱃속에서 잘 지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출산 때까지 누워만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내 다리에는 이미 근육이 거의 없었고, 병원에 가는 날이 유일하게 걸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때 태극당 간판을 보았다. 남편이 빵을 먹겠냐고 물었고, 우리는 잠깐 내려 빵 몇 개를 샀다. 집에 가는 길에 빵 하나를 뜯어 먹었는데, 그날의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빵을 먹자 뱃속에 튼튼이가 막 움직였던 기억은 난다. 


여섯 살 튼튼이와 태극당 안으로 들어갔다.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오는데, 튼튼이와 함께 이 빵집에 왔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오늘은 에버랜드에 갔다. 

예상대로 사람이 많았고, 나는 놀이공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를 유혹하는 무수한 가게들도 별로고,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별로다. 너무나도 상업적인 공간이라 언제나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튼튼이는 에버랜드를 참 좋아하고, 나무도 참 좋아했었다(그리고 남편도 좋아하는 것 같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갔고, 종종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참 좋았다.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가족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 과정 속에서 함께 하는 것. 그게 참 좋았다. 


나무는 에버랜드에 갈 때마다 골대에 농구공을 넣으면 인형을 주는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늘, 번번이 돈만 버렸는데, 오늘! 골을 성공 시켰다. 너무나 거대한, 인형의 탈을 썼지만 사실은 안에 커다란 공이 든, 약간은 희한한 것을 상품으로 받았는데, (너무 커서 에버랜드를 돌아다니는 내내 짐이었지만) 나무도 기뻤고, 골인한 순간에 우리 셋도 소리를 질렀다. 



나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해내야지. 무엇이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벌써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는데, 이루어 놓은 게 없다고 자책했던 시간도 많았다. 그런데 어제, 오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저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들. 그 과정들.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해내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 보내는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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