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덕분에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쓸 공간이 생기니 또 마구마구 사심이 생겨 이런저런그런 온갖 이야기들을 썼다. 그러다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왔다. 이유인즉슨, 3월 이후 편두통의 어마무시한 폭탄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편두통의 빈도가 너무 잦아져서 앱으로 두통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두통의 증상과 전후 사전을 기록하는 것이 나에게도, 또 편두통으로 고통 받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편두통은 보통 여름에 심해진다. 장마철도 힘들고 무더위도 힘들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 장마가 오지 않고 있다. 1-2월은 편두통이 거의 오지 않았는데 아마도 방학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체력과 편두통의 발생 빈도가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것 같다.
3월부터 두통이 잦아졌다. 예년에는 특정 시즌(여름 장마철, 무더위, 혹은 무리한 기간)에는 빈도가 높았지만 한두 달씩 두통이 오지 않은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3월 첫주를 시작으로 거의 매주 한 번씩 두통이 오고 있다. 3월의 큰 변화는 학교를 옮긴 것이고 운전을 하면서 출퇴근 거리가 현저하게 짧아졌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업무도 작년에 비해 수월해지고, 모든 것이 좋아졌는데 편두통의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4월에는 정말 매주 두통이 오다가 네 번째 주에는 사흘이나 두통이 계속되었다. 4월의 마지막 날도 두통으로 마무리. 5월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뛰기 시작했는데 역시 체력의 한계와 이런저런 궁색한 이유로 규칙적으로 달리지는 못하고 있다.
5월은 세 번째 주까지 두통이 없다가 네 번째 주에 무려 사흘 연속으로 강도 높은 두통이 왔다. 25일에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여행지에서는 괜찮았다. 그런데 여행 후 화요일, 아니나 다를까 강도가 높은 두통이 왔다.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조증상이 있는 두통의 빈도 역시 높아져서 또다시 두려운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그래서 6월 1일에 마지막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끊었다. 그리고 더불어, 운전도 끊었다. 운전? 운전이랑 편두통이랑 뭔 상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운전을 할 때는 늘 운전 중에 갑자기 시각이 훼손되는 전조증상이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있었다. 운전을 잘하지도 못하는지라 운전 중 몸은 편했지만 정신은 힘들었는데 운전을 끊고 나자 마음 한켠이 편안해졌다.
6월 2일에 편두통이 왔으나 약은 먹지 않았다. 아침에 두통이 와서 잠을 자고 났더니 좀 나아졌다. 커피와 운전을 끊고, 되도록 무리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6월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역시나 삶을 굴곡 없이 유지하기란 쉽지가 않다. 출장도 종종 있었고,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의 세례를 받으며 대중교통으로 퇴근하는 길은 역시 만만치가 않다.
어제 밤에 또 전조증상이 나타났다. 남편이 퇴근하고 이제 아이들을 재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띠링! 또 앞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튼튼이를 남편에게 맡기도 황급히 자러 갔다. 두통이 조금씩 느껴졌지만 꾹 참고 자기로 했다. 아침이 되고, 약하게 두통이 있었지만 견딜만 했다. 지금도 여전히 약하게 머리가 아프지만 견딜만 하다.
커피를 끊는 것이 무척 힘들었는데, 또 살아야겠다 생각하니 참아진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내 삶에서 마지막 편두통은 언제일까. 삶의 많은 것들은 그것이 마지막일 때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이제는 편두통과 잘 싸우고 싶다는 마음보다 편두통을 잘 달래서 되도록이면 나오지 않게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