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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나 Mar 18. 2022

나는 벚꽃이 아프다

평화로운 죽음


그는 목수다.

그의 손은 그 어떤 손보다 거칠었지만 그 어떤 손보다 포근했다.

상처를 받을지언정 주지는 않았고 고통을 받을지언정 나누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하라는 일을 했다.

듣고자 하는 말보다 들리는 말만 들었다.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자신을 돌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미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람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버지는 4월 29일, 벚꽃이 만발하는 사이에 암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러고 보니 23년이 지나가고 있다. 2022년인 올해에 벚꽃 개화 시기가 서울의 기준으로는 4월 2일이라는데, 점점 지구가 더워지고 있기는 한가보다.


7살인 나에게 호스피스 병동은 꽤나 삭막했다. 각종 의약품과 소독약이 뒤섞인 특유의 병원 냄새, 약간 더운 듯하며 답답한 공기와 온통 하얀색이었던 공간은 어린이가 오래 머물기 힘들었다. 그렇다 보니 내 관심에서 아버지의 옆자리가, 창문 너머 만발한 벚꽃에 뒤처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벚꽃이 아프다.

병실 창문에서 벚꽃이 보이지 않았더라면, 내가 애정 표현에 후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면 덜 후회했을까.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가정에 이런 불행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공허한 후회와 과녁 없는 자책은 내 청소년기를 물들였다.


나는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었고 병실도 답답하겠다, 틈만 나면 벚꽃잎을 잡으러 나갔다. 바보 같이 아버지가 얼른 나아서 놀이동산에 같이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버지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년이었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서 아프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사람이 병에 걸림으로 인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아버지가 당연히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단 15분이었다. 처음으로 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했고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라지는 데에 단 15분이었다.


아이들은 정말로 죽음을 예지 하는 것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친할머니에게 매점에 가자고 졸라댔다. 덕분에 할머니가 나에게, 자식을 먼저 떠나는 장면을 목도하는 것을 막아준 효녀라고 이야기한다. 그때가 생각난다. 그냥 갑자기 이유 없이 매점이 가고 싶었고 그냥 할머니랑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매점에 가니까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오래도록 서성거렸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식구들에 둘러싸여 임종을 맞이하고 있었다.


돌아왔을 때에 병실 문 앞에 아버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식구들이 서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들이 저렇게 아버지를 둘러싸고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작은엄마고 이모고 다 와서 모여있을까, 친가와 외가가 모여있는 광경을 처음 봤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가려는데 사촌 오빠가 나를 강제로 막을 때 깨달았다.


아, 나는 이제 앞으로 영원히 아버지에게 닿을 수가 없구나.



달과 벚꽃



장례식장으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시원하게 엉엉 울었던 때가 그때뿐이라는 걸 알았다면, 더 크게 더 오래 울었을 텐데. 나중에 엄마가 그때를 회상하면서 “너 그때 되게 이상했어. 조그마한 게 뭘 안다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운구차에서 내내 울었어.”라고 말했다. 엄마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뭘 아는 아이였다.


울다가 지쳐서 엄마의 무릎에 누워있을 때 “작은 딸은 어리니까 아무것도 몰라서 다행이네”라는 말을 들었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이 한 문장이 나를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게 할 줄은, 이 한 문장에 내가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 존재라고 학습할 줄은, 떠나간 아버지를 끝도 없이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이 의미가 없기에 더욱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 사이 그에 대한 기억은 더욱더 미화되고 안 좋은 기억은 희미해져 갔으니까. 죽음은 때때로 객관성을 잃는다.


주변의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었다면 ‘힘내라’는 말이나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해주는 것은 안타깝게도 견뎌야 하는 위로가 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오는 아픔만큼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괜찮아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고, 아무리 괜찮아지려고 해도 괜찮아지지 않으니까 그냥 마음껏 슬퍼하고, 죽을 것 같이 아프면 그대로 아파하고 추억하고 밥은 잘 챙겨 먹으라고 말해주는 것이 낫다. 나는 괜찮은 척하느라 더 많이 고통스러웠고 23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가 아프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우는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7년밖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저 사람들은 50년 넘게 함께했으면서 왜 슬퍼하고 왜 우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아픔에는 무게가 없어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고통스럽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 시간이 1년이던 100년이던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그들과의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유일하게 내 기분을 진심으로 배려해 주었고 인생의 첫 번째 친구였다. 나는 유난히 사회성이 없었고 예민했다. 그래서인지, 유치원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아버지의 목공소에서 노는 것이 재미있었고 집 안에서도 도태되는 듯한 쓸쓸함을 느꼈다. 어떠한 공동체에서 어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나를 스파르타 방식으로 키우신 셈이다. 작별이 부르는 아픔을 배우기도 전에 죽음이 부른 고통을 가르쳤다. 평생 줄 사랑을 7년 안에 모두 쏟아붓고 느닷없이 떠났다. 그리움이 지속되면 미움이 되던가, 나는 점점 그를 미워했고 정신적으로 강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큰 오해가 하나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고민을 터놓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인 줄 착각하며 23년을 살았다.


그와 같이 살면 그와 같이 불행해질 것이기에 반대되는 인생을 살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피는 못 속인다. 내 눈에 그의 눈이 있어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내 손에는 그가 가진 능력이 들려있어서 그의 생을 이어받았음을 증명한다. 그를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미워했지만 그를 사랑했던 만큼 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점차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고 피우고 싶으면 피웠다. 아버지는 술이 무슨 맛이냐고 물으면 뿌요 소다 맛이라고 했고 담배에서 무슨 맛이 나냐고 물으면 피자 맛이 난다고 했다. 그 사이 자신의 몸이 그 지경까지 망가지는 줄 도 몰랐겠지. 자기 관리라는 단어는 그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와 같은 남자는 싫다.


내 인생을 함께할 반려는 세상이 무어라 말해도 주관이 뚜렷해서 자신만의 꿈을 갖는 사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행하는 사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이 마음에 드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듯이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서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며 내 마지막을 지켜줄 것 같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기를.


그리고 나와 함께 무너지지 않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 내 감정의 기복이 지각과 맨틀을 지나 핵까지 뚫고 가도 언제나 지각 위에서 날씨가 좋다며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 어디로 튄 지 모르는 나를 찾아주는 사람. 사실은 그런 아버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를. 이번 소원만큼은 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바라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나는 병실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볼 권리를 강제로 잃었다. 그래서 집안 어른들의 만류에도 기어이 입관식에 참여했다. 내 시야에 어른들의 다리가 무질서한 기둥을 만들었고 아버지의 얼굴이 겨우 보였다.  비록 깡 마르고 핏기 없이 창백했지만 슬프지 않고 아파 보이지 않았다. 온화하고 평안해 보였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그 표정을 하고 죽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시간이 아픔을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시간에 비례하여 조금 무뎌지기는 한다. 사랑했던 기억은 새로운 사랑을 하면서 계속 살아가라고 등을 떠민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후회들은 오늘 해야 할 말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당장 하라고 말한다.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했고 밤에는 자고 싶어서 눈을 감고 아침에는 그저 눈을 뜰 수 있으매 감사한 삶을 가르쳤다.


이제 나도 벚꽃이 아름답고, 봄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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